너무 아픈 2020년을 보내며......
연말연시가 될 때마다 마침내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깨끗한 새해가 다가온다는 설렘이 마음에 자리한다. 곳곳에서 기분 좋게 울려 퍼지는 캐럴, 오랜만에 만나는 좋은 사람들과의 모임,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마음의 선물들, 밝고 행복한 에너지가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른 연말이 찾아왔다. 온 나라, 전 세계에 늘어가는 확진자 수만큼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기 때문이다. 급기야 올해 산타는 크리스마스에 못 오고 자가격리 14일 후인 내년 1월 8일쯤 오신다는 우스개 소리가 돌아다닌다. 2020년은 망했다든가 송두리째 도둑맞은 것 같다는 표현들도 자주 쓴다. 2020년을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은 사람들 중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분명 나의 2020년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시작되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졸업 후 자기 아빠의 모교에 입학하였고 나도 오랜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일을 하겠다고 투지를 밝히고 있었다. 비록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강타했지만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고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건강히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룬 것이 많지 않고 가진 것은 초라했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적어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올여름 나는 나의 사랑하는 큰아들을 잃었다. 건강했던 아들은 7월 27일 월요일 아침 내 방으로 걸어오다가 쓰러져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여느 아침처럼 눈이 뜨자마자 나에게 오고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내 방에서 충전 중인 본인의 스마트폰을 가지러 오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잠시 내 옆에 누워 기지개를 켜는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것이 나는 참 행복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에게 그런 행복한 아침은 허락되지 않았다. 죽었다는 말이 끔찍이도 싫어서 하늘로 떠났다, 하늘로 유학 갔다, 주님 곁으로 갔다…... 온갖 아름다운 표현으로 우회했지만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아들의 관을 골랐고 한 줌밖에 안 되는 아들의 유골을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으며 아들의 사망 신고까지 마쳤으니깐......
세계 여행, 노래 만들기, 부자 되기, 유튜브 성공, 여자 친구 만들기, 성당 반주자 되기, 스카이 다이빙, 스쿠버 다이빙, 그림 잘 그리기, 좋은 대학 가기를 꿈꾸던 만 열세 살 아들이었다. 평범한 또래 아이들처럼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고 유튜브와 틱톡에 편집한 영상 올리기, 바닷가 모래 놀이와 천체 망원경으로 보름달 보는 것을 즐겼으며, 데리버거, 당면 많은 갈비탕, 게토레이 블루, 초콜릿 머핀, 맥 앤 치즈, 아무 토핑이 없는 담백한 치즈피자와 짬뽕을 좋아했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스마트폰과 랩탑을 선물 받고 잔뜩 신이 났던 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아들은 본인이 좋아했던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무한한 가능성과 무궁무진한 미래를 반납한 채 너무 서둘러 하늘로 떠나버렸다.
2020년은 유독 나에게 너무 끔찍하고 처절한 해였다. 드라마로 만들면 시즌 3까지는 무난히 제작 가능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올여름 나에게 일어난 일에 비하면 전부 코웃음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수준이다. 아들이 떠난 후 매일 나만의 애도와 추모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지만 여전히 나는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렇게 나에게는 너무 모질고 잔인했던 2020년이 끝나간다. 2020년의 끝자락, 2021년의 문턱에서 아직도 내가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행복한 미래를 꿈꿔도 괜찮은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남은 세월, 이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들이 그리운 만큼 아들 없이 살아갈 날들이 억울한 만큼 남은 시간을 소중히 잘 보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언제까지 미안하고 슬픈 마음만 부여잡고 눈물 흘리 수는 없다. 내 착한 아들, 내 귀한 아들은 분명 내가 행복하기만을 바랄 것이다. 내 슬픔과 눈물의 원인이 본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 좋다는 천국에서도 우울할지 모른다. 내 아들 서준이의 13년 일평생이 나에게 고스란히 기쁨과 행복으로 기억되듯이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남고 싶다.
올 한 해 지독하게 힘들었던 시간들, 큰 버티목이 되어준 고마운 이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위로를 건네는 것마저 상처가 될까 마음 졸이며 걱정했다는 그들의 마음은 편지, 전화, 메시지, 문자, 좋아요, 덧글, 맛있는 음식으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진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 위로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음을, 그 마음들로 조심스레 2021년을 기다리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을 때, 내가 뭔가를 해줄 수 있을 때, 마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뒤돌아보는 것조차 힘겨운 2020년을 마무리하며 그저 작은 소망이 있다면 고마운 사람들이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