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은 나의 눈에게 바치는 글

by 남배추



나에게 눈이란 정말 소중한 존재이다.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그만큼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지금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책을 읽으며 하루의 고단함을 조금 덜 수 있는 것도 나의 눈 덕분이다. 그런데 이런 눈의 소중함을 이제서야 느끼고 있다.


외면 상으로만 봤을 때, 나의 눈은 뭔가 특별할 것이 없다. 옆으로 길쭉한 것도 아니면서 얇게 저미듯이 속쌍꺼풀이 생긴 작은 눈이라 오해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누워서 TV를 보고 있으면, TV를 켜놓고 잔다고 혼난다던가.


'저 아직 보고 있는데요?'


어린 시절, 나의 눈은 그냥 기능만 있고, 미적감각은 전혀 없는 80년대의 가전제품 같은 것이었다.

10대 시절에는 안경을 쓰고 다녔어서 그 가전제품은 나름 액세서리를 가지고 있었고,

20대 시절에는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를 꼬박꼬박 바르고 다닌 부지런함의 상징이었으며,

30대 시절부터는 게으름병이 다시 도져서 오리지널 눈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다니다가,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야 눈의 고마운 기능을 새삼 느끼고 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여 가능하다면, 제니처럼 매혹적인 눈 혹은 눈망울이 밖으로 쏟아질 것 같은 커다란 눈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미에 대한 감각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나의 눈에도 한 차례 커다란 시련이 닥친 적이 있다.

눈에게 무슨 고난과 역경이 있겠냐고, 혹시 알레르기를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콧웃음을 치고 말 것이다. 그 경험은 바로 람세이헌트증후군이라는 안면마비였다.

람세이헌트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그날, 나의 눈은 항상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겠다는 굳은 일념을 지닌 눈처럼 절대 깜빡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눈꺼풀이 기능을 하지 않았던 것이기에 눈알을 까뒤집는 모습이 보였던 것을 미화시켜서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뇌가 눈에게 '당장 그 눈을 감으라' 명령을 한들,

너 따위 내가 들을쏘냐며 꼼짝도 않던 눈꺼풀.

평생 줏대 없이 산 내가 이런 지조 있는 눈꺼풀을 가지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잘 때마다 눈꺼풀을 테이핑으로 종이접기 하듯이 붙여서 닫아주며 나의 눈을 보호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눈은 피로함에 충혈되기 일쑤였다.


지금은 다행히 눈꺼풀이 어느 정도 뇌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물론 입을 움직이면 눈꺼풀도 뇌의 눈치를 보며 같이 움직이지만,,


그 뒤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일단 80년대 스타일 가전제품인 나의 눈은 눈꺼풀의 보호를 받으며 무사히 기능을 다 하고 있다.

짝짝짝


그래서 가족을 생각하는 가장의 마음처럼 이 눈들이 나이 듦에도 제 기능을 오래도록 유지하길 바란다.

당연한 것일지 몰라도,

지금 이렇게 머리를 멀리 모니터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글을 쓰고 있음에 감사하며

음표를 읽으면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나의 뇌와 눈과 손의 의사소통체계가 고맙고

조금이라도 책을 스스로 읽을 수 있음에 황홀하다.


책!!


이것은 눈으로 읽었을 때 가장 매혹적인 행위이다.

누군가는 읽어주는 오디오서비스도 있지 않느냐라고 말하지만,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각자의 속도를 가지게 된다.

어떤 구절에서 잠시 멈춰 서기도 하고,

어떤 구절에서는 망연자실에서 책을 덮기도 하다가

마음이 급해져서 중간 부분은 다 띄어 넘고 책의 끝을 뒤적이기도 한다.

이러한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같은 톤과 같은 스피드로 책을 읽어 내려간다면

난 그만 책에 대한 흥미를 바로 잃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보는 게 좋다.

아이가 뛰어노는 것과

파랗다고만 말하기에는 부족한 하늘을 바라보는 것과

책에 정갈한 폰트로 적힌 글들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특히나 바닥에 떨어진 아주 미세한 먼지를 주워 올렸을 때

내 눈의 기능에 감탄하고 만다.

아직도 이 정도로 잘 보인다고!!


물론 보고 싶지 않은 순간들도 있다.

그만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세상으로 멀어지고 싶은 순간들은

너무나 곳곳에 산재해서 어쩌면 저기 짜부라진 구석만이 나를 위로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날선 언어들과

뾰족한 얼굴들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우습게도

따스한 말들을 글로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기도 하니

항상 마음속으로 되새겨본다.


피아노음표를 두 눈으로 따라가면서 손가락에 뇌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일


책에 쓰인 폰트를 읽어 내려가며 300페이지 정도 안에 새겨진 작은 세상을 드넓게 펼쳐보는 일.


일단 두 가지만 집중해 보자고.

같은 소리를 가진 눈도 좋다. 그냥 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