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면서도 예민하지만 그에 반해 털털한

by 남배추

예전에 내가 귀를 생각해 본 시간이 있는지 따져본다면,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본들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들, 180도의 평면세계를 보여주는 거울은 눈코입이 들어있는 얼굴정면을 보여주며 우리의 눈은 그곳에 고정된다. 물론 머리가 헝클어졌는지 옷매무새가 어떤지 확인하기도 하지만, 정작 머리 옆에 살짝 붙어서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이 섬세한 구조물, 귀에 대해서 얼마나 찾아봤을까?

굳이 생각해 보자면 귀걸이를 할 때 정도는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그것도 귀 전체의 모습보다는 귀걸이를 할 때 귓불을 잡아당기고 마는 그런 정도의 눈에 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는 누구에게나 없어서는 안 될 감각기관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의 두 귀는 여전히 잔잔하면서도 어깨가 들썩이는 재즈를 듣고 있으니. 이러한 두 귀는 옆에 몰래 숨어있는 듯 자리 잡고 있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물론 가는 귀가 먹었다고 주변의 핀잔도 이따금 듣지만, 그건 내가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나이 듦의 과정이니 그 또한 열심히 살아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던 귀처럼 나 또한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을 이야기하자면, 어쩔 수 없이 라테는 말이야의 서두가 되고 말지만, 어찌 되었던 그 당시는 90년대로 각 반에 5~60명이 족히 있었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다다다닥 붙어있던 교실에서 나의 존재란 마치 얼굴을 틀어서 보지 않으면 거기 있었는지 조차 잊기 쉬운 귀와 같았다. 특히나 그 당시의 나는 평범한 얼굴에 적당한 성적을 가진 데다가 커다란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야말로 내가 있던 자리가 뻥하니 뚫려도 크나큰 위화감 없이 모든 것이 굴러갈 수밖에 없는 배경색 같다고나 해야 할까. 그러던 나도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잘 놀지만 공부는 잘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그 결과 보기 좋게 수능을 망해버렸다.


나의 두 귀도 청소년기의 나처럼 잠시 반항기에 있었던 시점이 있다. 2016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때, 갑자기 칼로 후벼 파는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프고 일주일이 지난 뒤, 입에서 짜장면이 그대로 뚝 떨어지는 일이 생겼고, 그렇게 나는 귀의 대상포진으로 인한 람세이헌트증후군 환자가 되고 말았다. 귀의 통증은 한동안 계속되었었는데 삼차신경통이라는 알 수 없는 언어로 규명된 통증은 삶의 질을 확연히 떨어뜨렸다.


나의 귀는 이런 식으로 내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말았는데, 그 경험이 꽤나 따끔한 나머지 그 뒤로는 이 새침한 귀가 행여나 또 아픈 일이 발생할까 봐 가끔씩 나의 귀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그렇게 살짝 들여다본 나의 귀는 굉장히 오밀조밀하게 생긴 편이다. 손바닥보다도 더 작고 귓불이 넓으면 부자가 된다던데 난 그런 팔자는 아닌지 손톱만 한 귓불이 살짝 달려있을 뿐이다. 그 사이로 조금이라도 내 존재를 드러내 보이겠다며 구멍을 연신 뚫기도 해서 그 작은 귓불에는 여러 개의 구멍자국이 남아있다. 조금 더 올라가 귓등으로 가자면 또 할 말이 많다. 나의 귀는 작고 연약하지만 어찌나 자기주장이 강한지 귓등에 피어싱을 했을 때에는 옳다 커니 피어싱 주변으로 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귀에 귀가 피어나는 형국이라니. 그래서 그에 질세라, 반대편에 피어싱을 잔뜩 해줬다. 이제 귀도 어느 정도 두 손을 든 상태인지 약간은 안정된 피어싱을 보며 괜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본다.


말썽도 참 많았지만, 머릿통의 적당한 부분에 알맞게 붙어있어서 별도의 성형수술도 필요 없는, 작디작은 내 귀가 마음에 든다. 여러 질병으로 인해 가는 귀가 먹고 말아 어느 정도는 못 알아듣고 넘겨버리기 일쑤이면서, 쿨한 척하다가 뒤로 넘어가서는 곡소리를 하는 이 귀는 눈코입이 안 달렸을 뿐이지 사람 같은 구석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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