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부츠

백구두가 아닙니다.

by 남배추

어렸을 때 TV를 틀 때면, 머리카락에 찐득하게 무스를 꼼꼼히 바른 아저씨가 나오곤 했다. 그는 앞머리 한올만 이마 쪽으로 내려서는 빨갛고 노란 꽃무늬셔츠에 白구두를 신은 모습으로 다리를 연씬 흔들어 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의 이마에는 아저씨의 앞머리 한올 같은 줄이 가로로 길게, 그것도 여러 개 이어져 눈살을 찌푸리곤 했었다.


'아, 촌스럽다.'


그래서 수많은 구두를 사면서도 절대로 하얀색만큼은 사지 않았었다. 나는 절대 그 아저씨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빨래하고 구두를 닦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는 하얀색이 주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백구두가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른들이 모든 걸 당장 다 안다는 듯 장담하지 말라고 했던가 보다. 내 마음이 이렇게 바뀌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나의 그 어릴 적 다짐과는 상관없이, 같은 백구두를 여러 개 쟁여 놓으려고까지 했었다. 그래서 이 백구두가 조금 더러워졌을 때에는 구두에 대한 감사의식을 짧게 행하고는 고이 보내드릴 계획이었다. 나에겐 새로운 여벌의 백구두가 있었으니.


하지만, 나는 여벌을 사지 않았다.

여벌이 생김과 동시에 짜 그라 들듯 식어버리는 불꽃처럼 관심도 함께 사라지는 나의 오묘한 마음에 더불어,

그냥 소중한 건 하나일 때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소중한 건 단 하나만 가지고 싶다.


이게 여물어질까, 때가 탈까 마음이 조마하면서도

이 하나가 없었으면 어찌할 뻔했냐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런 소중함을 느끼면서 한 번씩 어루만져주게 하는 애틋함이 좋다.


소중한 게 생기면

하나로 족한 법이다.


그리하여 난 현재 가장 좋아라 하는 하얀 부츠가 하나이다. 그리고 아끼는 이 부츠를 비 올 때만 신고 있다. 비 오는 날 하얀 가죽부츠라니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아이러니하게도 비 오는 날에 하얀색 비닐우산과 깔맞춤을 하면, 어느새 내가 런웨이의 모델이라도 된 마냥 신이 난다.


멀리서도 보이는 비 오는 날의 백부츠여사.


비가 오면 더 화려해져야 하는 법이다.


내일 오랜만에 비가 온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씨는 집안에서 책을 읽을 때나 커피를 마실 때만 좋아하지만, 하얀 부츠가 있기에 나쁘지 않다.

서랍장 안에 꽁꽁 숨어 있던 집순이 하얀 부츠가 집 밖을 나가는 소중한 순간이 곧 온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