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자신있어?” - 2

by 하나



같이 밤을 세웠어도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건 오늘이 처음

게다가 고작 몇 시간


몇 번의 플러팅이

장난인지, 진심인지 헷갈리던 순간마다

묻고 싶은 말을 몇 번이고 삼켰다


'너, 자신있어?’



술은 조금씩 깨 가고



수수께끼 같은 이 누나의 집까지 호기롭게 들어왔지만

말했듯이,

번듯한 살림살이도 없는 이 집엔


뻔뻔히 ‘얘기나 하자’ 하고 앉을만한 쇼파도, 의자도, 침대도 없다


‘그냥’ 이라는 이유로 들어서고

‘피곤하니까’ 라는 핑계로 앉고

‘푹신하니까’ 라며 편하게 몸을 뉘이는

....



서로 암묵적 동의하에

차례대로 순서를 밟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니가 기대한 건 어떤 배경이었을까?


내가 말했지?

이제 어떡할래?



.....




당황했을테지만

찰나에 스캔을 마치자마자 취한척

한쪽 벽에 붙여 놓은 내 침구 위에 얼른 누워버린 이 친구


“아 죽을거 같애. 너무 피곤해”


클럽 자체대회를 마치자마차 밤새 이어진 회식부터

밤을 새고 들어온 집이었다

적당한 핑계였다




매일 혼자 잠드는 내 침구에

아무 거리낌 없이 누워 넓은 등을 보이는 남자라니.....




당장 저 이불속에 들어가

섹시한 넓은 등에 얼굴을 파묻고 비비고 싶었다

내 남자에게라면 당연하듯이


사실은 너보다 내가 더




너는 잠이 드는 척 어설픈 연기를 시전하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잠이 들지는 않을 걸 뻔히 아는 나까지

모른척 옆에 나란히 누워 공범이 될 순 없었다


‘너도 내가 좋은거야?’


확실하지 않은 이 시점이 맘에 걸렸다




.......




2년 전 어려운 시기,

형편에 보태 쓰라고 보내준 아빠의 100만원

생활비로 써버리고 나면

다 큰 딸의 독립을 바라보는 아빠의 저린 마음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것 같았다


난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의자를 사야겠다


글을 쓸 때 앉을 의자

가만히 앉아 생각을 정리해줄 의자

나를 쉬게 해줄 의자


아빠의 저린 마음과 맞바꾼 100만원짜리 의자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온 하겐다즈를 먹으면서 시간을 벌어보았다


‘하아....쟤를 어떻게 해야되지?’

‘쟤 지금 자기가 뭘 하고 있는건지 알기는 알고 저러는 걸까?’

‘서른 여섯이, 마냥 어리다고 다 용서받을 나이가 아닌데

어쩌려고 저러지?’



에라 모르겠다...

하기엔 마음에 자꾸 뭔가 걸렸다



10년 전,

그때의 11살 어린 그 녀석은 20대였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까진 없었다



지금은

‘나랑 조금만 놀다가 놓아줄게’를 시전할 수 있던 그 때가 아니었다



얘가 지금 나를 만나도 되나

결혼도 하고 싶다고 했고

아이도 너무 이쁘다고 했잖아


그럼 지금은....

나는 아닌데.....



아이스크림 한통을 다 먹을때까지

결정은 쉽게 나지 않았다



“빨리 와. 같이 자. 너도 피곤하잖아”



진즉에 잠이 다 깬 니가

부러 졸린 목소리를 연기하며 나를 부른다



이게 맞는거야?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이렇게 자게 되는게 맞는거야?

요즘 애들은 이런건가?


아니면


얘 지금 내가 쉬운가?



20대에도 해본 적 없는 밤샘을 했으니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어디까지 실갱이를 할거란 말인가

이미 아침이었다



아...다 모르겠었다

이성의 마비는 체력이었다



.....




매트리스 두께는 7cm, 사이즈는 S .

187cm 거인 한 명과

‘165cm에 45kg’ 이 당연히 아닌, 나와

함께 눕기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이즈



그런데 참 희한하지

좁지 않았다



이 친절한 거인이 모로 누워 준 덕에 나는 편하게 등을 대고 누울 수 있었다



30초 였을까? 1분?



내 숨소리가 너무 큰가, 적당한가

스스로 검열할 때쯤,


서로가 느끼는 정적이 길다 싶을 때 쯤


이 친구는 나를 향해 몸을 돌려 누웠다



‘어머! 얘 어쩌려구?’



놀라서 고개를 돌려봤지만

다시 정적



아니 이렇게 계속 끊어가는거야?

모션 플레이 찍는거야 뭐야?



이제는 이럴거면 그냥 확실히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그냥 잘거야 말거야


플레이를 할건지

아니라면, 나도 편하게 포기하고 자던지 하게


나도 슬쩍 이 친구를 향해 옆으로 누웠다


아직도 모른척하며

내 허리에 얹는 손길이 밉지 않았다


‘그래 이 정도는....’


이렇게 누군가 안아주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1분?




당연히 손은 내 등으로 미끄러졌고,

그와 동시에 나를 훅~



내가 좋아하는 이 친구의 섬유유연제 냄새에 얼굴이 파묻혔다


‘음.... 가까이 맡으니까 더 좋아’


아찔한 그 순면 코튼 향에 취하는 동안

손은 더 미끄러져 말캉한 내 엉덩이를 꽉 움켜쥐는 바람에


‘헉’


가뿐 숨을 들켰다


놀라는 사이

옷 위를 스치던 손길은 어느새 옷 안으로 들어와 맨살을 스치고 있었다



‘아...’



그 손을 한번은 뿌리쳐야 했다


호흡이 흐트러졌지만

짐짓 평이한 척



“그냥 자.

코 자.

편하게”



말과 다르게

목소리는

오히려 가쁜 숨에 낮게 떨렸다


덕분에

이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몸의 스팟 곳곳을 노렸다



막아내는 나의 손을 당연히 이겨내고,

나도 못 이긴 척 져주고

한번은 이겨냈다가


조금은 느끼고

다시금 막아내길 수차례



아래를 향하는 이 친구의 손목을

단단히 잡았다



너 어쩌려구 그래

나 안 볼거야?



벽을 향해 나를 조금씩 밀어내더니

기어이 완력을 사용하는 이 친구에게

아까부터 속으로 하던 말을 뱉었다






너 자신있어?





여러, 다수의 의미였다.


너 지금 ’내 현실을 감당할 자신‘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우리 둘의 나이차

같은 클럽에서 운동하는 사이

지금의 내 경제적 상황까지

너는 다 보았지 않냐는 항변이었다



아니라고 치자

가벼운 만남이라고 치자

원나잇이라고 치자



나는 너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데

남자 경험이 없을 순수한 스무살이 아니란 것쯤을 알 터



이게 진짜 원나잇 일거라면,

어떤 말도 없이 이렇게 밀어붙이는거면,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너 ’정말 자신이 있어야‘ 할거야!


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잠시 멈춘 그의 손길이

대답하는 듯,

순응하는 듯,

말은 없었다


하지만 곧

실망하려는 찰나,


어린 거인의 손은 내가 원하는 스팟을 찾았고

그 실갱이는 조금씩 격해졌다


"

아니 너 어쩌려구? 클럽에서 너 나 계속 봐야되는데 괜찮겠어?

아니 하지 말라구


아니

아무 말도 없이 지금 이거 무슨 뜻인데



조금은 긴 정적


낮은 목소리





.....좋아서




깊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땐 너무나 무심한 한 마디였다



말 한마디에 얼마나 무게를 싣는 사람인지


그때는 무심해 보였던 그 한마디가,

사실은 그 친구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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