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할 거리는 좀 꼰대 입장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 입장에서 볼 때, 과연 공부가 재미있거나 좋아서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과연 있기는 할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공부가 재미있거나 좋아서 하는 아이들이 꽤나 있을 수도 있지만, 중학교 이후부터는 매우 희박할 것이다.
대부분의 말 잘 듣는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바람과 요구에 착한 마음으로 따르는 경우일 것인데, 그러다가도 사춘기를 전후로 어긋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이유로 고등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아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우선, 여전히 부모님 말씀 잘 따르고, 똑똑한 아이들이 상위권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고, 드물지만 자기 주관에 따라 능동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가끔 있고(일찍 철이 든 경우), 아무 생각 없이 공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잘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경우가 있겠지만 이쯤 하고. 이처럼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들조차도 사실 대부분은 부모님들이 공부를 강조하는 그 진짜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거의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바라는 경우가 바로 자기 주관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가 아닐까? 하지만, 이는 현실에선 매우 찾아보기 힘든 경우이다. 그렇다면 초등학교부터 중학생까지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들과 대화하고, 때로는 야단치며 아이들을 훈육하는데 자기 자식들이 주관을 갖고 능동적으로 공부하기를 바라며 훈육을 한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말이다. 슬프게도 이러한 훈육이 다 통하는 것도 아님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에 현장에서 수업할 때 - 주로 중학생 아이들 대상으로 - 부모님들이 왜 공부를 강조하는 지를 진솔하게 설명해 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그 답을 못 찾다가 나와의 대화에서 눈을 크게 뜨며 답을 찾는 아이들이 있다. 아무래도 제삼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모양이다. 물론, 그렇게 답을 찾는다고 해서 그 즉시 모두가 주관적으로 공부하도록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변화의 단초는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선,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를 잘 하건 못하건 공부를 하는 목적의식이 없다. 그 목적의식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야기하던 내용을 학생과의 대화형식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 너희들 공부는 왜 하니? 공부 재미있어? 좋아?
- 에이, 샘 무슨 말이에요. 좋아서 하는 아이가 어디 있다고. 그냥 하는 거죠. 다들 하니까.
- 부모님들은 뭐라고 하셔?
- 공부해야 좋은 대학 가고, 좋은 대학 가야 좋은 직장 잡고 잘 산대요.
- 맞네. 그럼 공부 안 하면 다 못 사는 건가? 그건 아닐 텐데.
- 그렇겠죠. 연예인들도 공부 안 했던 사람들 많던데. 그래도 돈도 잘 벌고.
- 운동선수는? 손흥민 연봉이 대체 얼마야? 어마무시하지? 프로 선수들도 그렇고.
- 프로게이머도 돈 엄청 번대요. 게임해서 돈 버니까 얼마나 좋아.
- 자. 그럼 왜 다들 공부하라고 하는 걸까?
- 그러게요. 공부보다 재미있고, 좋은 것도 많을 텐데.
- 그 이유가 뭔지 알려줄까? 그럼 앞으로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아?
- 그 이유가 확실하다면 알려주세요~
- 그건 바로, 확률이야. 확률.
- 확률이요? 무슨...?
- 자 본인이 축구를 좋아하고 잘한다고 가정해 봐.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면 말이야, 프로축구선수정도는 되어야 직업으로 삼고, 먹고사는데 지장 없겠지? 그 확률이 얼마나 될까?
- 으음... 글쎄요... 엄청 낮을 거 같아요.
- 그렇다면 본인이 노래를 잘해서 가수를 하고 싶어. 가수를 해서 먹고 살만 한 위치가 될 확률은? 혹은 연기를 하고 싶어서 배우가 되는 연습을 하고 배우로 성공할 확률은?
- 그것도...
- 하루에 발표되는 신곡이 평균 몇 곡이나 될까? ChatGPT에 물어보면 100곡 가까이 된다고 하네. 아마 최소한 50곡은 넘을 거다. 그중에 음원수익으로 먹고살 정도가 될 확률? 어마무시하게 낮을 거야. 그 사람들이 신곡을 대충 만들지는 않을 거야. 엄청난 노력을 해서 발표하겠지만, 잊히는 곡이 대부분이라는 말이야.
- 헐...
- 미술에 소질이 있어서 화가가 될 확률은? 아니, 화가는 될 수 있지만, 화가를 직업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확률을 말하는 거야.
- 헐...
- 샘이 너무 부정적으로만 말하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꿈을 가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야. 꿈을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사는 거 너무 좋지. 그런데, 이게 경제활동하고 연결을 짓게 되면 얘기가 많이 달라져. 이런 현실을 아직 너희들은 잘 모를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래서 어른들이 알려줘야 하는 거고. 너희 부모님들은 이런 상황들을 모두 살면서 경험해 보신 거야. 그래서 본인의 자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강조하시는 거지. 그게 가장 확률이 높다는 것을 몸소 체험을 통해 알고 계시는 거야.
- 공부가 확률이 높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 자, 아까 말한 운동선수, 가수, 배우, 음악가, 미술가 등등 이런 직업을 통해 평범한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살 수 있을 확률은 대충 봐도 1%도 안 돼. 거의 소수점이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공부는? 그냥 퉁쳐서 2등급 이상이면 괜찮다고 봤을 때, 11%야. 3등급까지 확대한다면 23%나 되는 거고. 아까에 비해 어마어마한 거지. 몇 십배 몇 백배 높은 거야. 2등급 혹은 3등급 이상 받아서 그에 맞는 대학 가고, 거기서도 그 정도로 노력해서 학점 잘 받아서 좋은 직장 구한다면 평범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는 확률이 10~20% 정도 된다고 할 수 있잖아. 그래서 공부하라고 하시는 거야. 인생의 여러 선택지 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야.
- 아. 그런 거구나. 그래도 공부는 재미없는데. 힘들고. 피곤하고.
- 물론, 인생을 확률로만 사는 것도 정답은 아니지. 근데, 운동선수, 가수, 배우들은 그저 재미있고, 힘들지 않을까? 지치지도 않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바보는 아니겠지?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성공한 운동선수, 가수 배우들도 엄청난 노력을 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거야. 설마 운으로 됐을까? 프로게이머는 그저 재미있기만 할까?
샘 고등학교 후배 중에 프로게이머가 있었어. 당시에는 일반 대기업 직장인들의 연봉 2배 이상 벌고 대회 순위권에라도 들면 억대 상금까지 받더라. 그 후배 얘기로는 그쪽도 장난 아냐. 처음엔 좋아하는 게임하고 돈도 많이 벌고 좋았는데, 일단 회사 소속이 되고, 대회 성적이란 게 들쑥날쑥 하니 스트레스 어마어마하고, 직업으로 게임을 하다 보니 재미보다는 의무감이 앞서고 한다는 거야. 무엇보다도 20대 후반이 되면 벌써 퇴물이라 은퇴를 생각해야 한대. 어릴 때 돈 많이 버니 씀씀이도 커지고 해서 결코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
- 와... 프로게이머...
- 프로 운동선수들이 왜 연봉이 많은지 알아? 그들은 선수생명이라는 게 있어서 20대 후반, 30대면 은퇴하잖아. 그럼 그 이후엔 뭐 해? 그들은 젊을 때, 요즘 말로 폼 좋을 때 반짝 돈 벌어서 남은 인생 사는 거나 마찬가지야. 물론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은 하겠지만, 평생 운동하던 사람들이라 세상 일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해.
- 아. 그래서 연봉이 많은 거군.
- 뭐, 반드시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래. 너희 부모님들은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것들을 다 보고 들은 게 있으니, 공부가 가장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시는 거고, 그러니 너희들에게 공부 잘하라고 강조하시는 거야. 이제 이해가 되냐? 물론, 어떤 분야에 특출 난 재능이 있다면 그쪽으로 가는 게 맞겠지.
- 근데,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요? 해봐야 되는 거 아닌가요?
- Excellent Question이야. 그게 바로 학교를 다녀야 하는 확실한 이유가 될 수 있지.
- ??
- 너희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에 대한 불만 가진 적 있지? 솔직히?
- 전 기술가정 너무 싫어요. 전 미술. 전 과학. 전 수학. ㅋㅋ.
- 바로 그거야.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이라는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고, 배워서 학생 본인들이 뭘 좋아하고, 적성이 뭔지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학교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대학은 12년간의 교육과정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분야를 매우 좁혀서 배울 수 있는 전공이라는 것이 있는 거잖아. 물론 전공과목만 배우는 것은 아니고, 교양과목이라는 것도 배우지만, 이는 본인들의 선택에 따른 거지. 그리고, 대학원이라는 곳에 가게 된다면 더 좁은 분야를 선택해서 더 깊게 배우는 거지. 그러니까, 중고등학교에서는 이거 저거 다 열심히 배워보고 나서 판단하라는 거야.
해봤더니, 수학은 나랑 안 맞아. 그럼 수학 평생 안 하는 전공을 선택하면 되는 거지. 다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좋든 싫든 수학은 해야 하는 과정이니까, 수학공부 좀 할까? 이제?
써놓고 나니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수업시간에 아주 가끔, 말로 하다 보면 얼마 안 걸리는 내용이다. 이야기를 다 들은 아이들은 사뭇 눈빛이 달라지는 경우를 종종 봤었다. 물론, 그게 오래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생각할 공간 조금은 생겼으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