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해 걸어간 거인

[순례노트3-⑫] 인제 백담사와 『님의 침묵』 100년

by 동욱

11월 중순 설악산 하늘은 파란색이었다.

11월 백담사에서 본 하늘

구름이 지나갈 법도 한데 거짓말처럼 한 점도 없다. 파란 하늘을 달리 묘사할 단어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말그대로 맑고 파란색이다.

11월 백담사에서 본 하늘

백담사 가는 길.

가을은 이미 절정을 지났고 초겨울 내음이 났다. 알록달록 빛깔을 뽐내던 단풍들은 낙엽으로 바뀌었다.

백담사 일주문. 내설악 백담사 현판이 걸려있다 (25.11.10. 촬영)

국립공원 공식 블로그에 11월 6일 올라온 일주문 앞 사진을 보면 별천지같은 단풍이 순례자를 맞이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제행무상을 실감케 한다.

늦가을 백담사 일주문(출처:국립공원공식블로그, 25.11.6)

아쉬움을 뒤로하고 좁은 숲길을 걷다보니 붉은 단풍잎을 간직한 나무 한 그루가 순례자의 마음을 위로한다.

백담사 일주문 지나 오세암 가는 산길

10분쯤 걸었을까.

백담사에서 오세암 가는 길 옆 계곡

시린 계곡물 소리가 순례자를 반겨준다.

백담사에서 계곡을 따라 오세암 방향으로 난 작은 산길을 걷다보니 100년 전 이맘때 이 길을 다녔을 거인이 떠올랐다.


그도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을까?

백담사에서 오세암 가는 산길

『님의 침묵』

「님의 침묵」시비. 백담사에서 오세암 가는 산길 입구에 있다.

시 88편을 탈고한 게 1925년 8월 29일 밤이니까 2025년 올해가 꼭 100년이다.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만해 한용운은 너무나 고맙게도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세상에 선보인다.


비록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지만, 일제 강점기 저항과 희망을 노래하며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님의 침묵』은 2026년 출간 100주년을 맞는다.

만해 한용운,『님의 침묵』(인제 만해문학박물관 전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님의 침묵」>

젊은 시절의 만해 한용운(출처:세계일보)

만해 한용운(1879~1944).


10대 후반이던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가 수년간 머무르며 불교 경전은 물론 다양한 서양 근대 사상을 공부했다. 1905년 백담사에서 수계를 받고 승려가 됐다.

만해 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인제 만해문학박물관 전시)

30대 초반인 1910년에 백담사에서 ‘낡은 것을 일소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불교를 개혁해야 한다’는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해 1913년 펴냈다.


이듬해인 1914년에는 불교 대중화를 위해 팔만대장경에서 400개가 넘는 인용구를 가려 뽑아 『불교대전』을 펴낸 대사상가다. (참고: 사찰순례자의 노트3-⑧ 만이천봉! 무양하냐 금강산아. 너의 님을 아느냐-고성 건봉사)

만해 한용운,『불교대전』(인제 만해문학박물관 전시)

만해가 오세암에 묵을 때였다.


“정사년(1917년) 12월 3일 밤 10시경 좌선 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 무슨 물건을 떨구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던 마음이 갑자기 풀렸다.”며 시 한 수를 지었다

“사나이 이르는 곳 모두 다 고향인데 (男兒到處是故鄕 남아도처시고향)

몇 사람이나 오래 나그네 마음 지녔던가.(幾人長在客愁中 기인장재객수중)

한 마디 외쳐서 우주를 갈파함에 (一聲喝破三千界 일성갈파삼천계)

눈 속의 복숭아 꽃 붉게붉게 나부낀다. (雪裡桃花片片飛 설리도화편편비)”

만해 한용운 오도송 (인제 만해문학박물관 전시)

만해 한용운의 오도송(悟道頌)으로 평가되는 한시다.


시대정신을 꿰뚫어 본 깨우침의 노래로 우리 민족 앞에 우뚝 선 만해. 조국 독립을 1년여 앞둔 1944년 6월 입적할 때까지 그의 삶은 독립을 갈망하는 우리 민족사와 맞닿아 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으로서 독립 선언서를 직접 낭독했으며,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독립선언서의 행동강령인 ‘공약 삼장’을 썼다.

독립선언서. 공약삼장 부분 촬영 (인제 만해문학박물관 전시)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면서도 조선 독립이 왜 필요한 지 일본 검사에게 당당하게 설명했으며 ‘자유와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적 요구’를 ‘광명정대한 독립사상’으로 정립해 임시정부 수립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1927년엔 민족단일노선을 지지하며 신간회 창립위원으로 활약했고, 1932년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주도하기도 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의 묘비명을 쓴 만해는 당시 금서였던 단재의 『조선상고사』를 부도에 넣어 ‘단재탑’을 만들려다가 발각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다.

만해 한용운, 「조선청년에게」, 조선일보, 1929.1.1 (인제 만해문학박물관 전시)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을 벌이고 1943년 조선인학병출정에 반대하면서 한편으로는 유마경을 번역했다고 한다. 중생이 아프기에 내가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아파했다. 또 청년들에게는 매화의 정절을 닮으라고 역설했다. 만지풍설(萬地風雪) 차고 거친 뜰에 쌓인 눈, 찬바람에 아름다운 향기를 토하려는 매화, 주위가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 불우하다 슬프다 말하지 말고 눈보라 속에서 꽃피우는 매화의 정절을 닮으라 했다.”<전보삼,「화엄의 관점으로 본 만해사상 연구」,동국대 박사논문,2007,p.87>

백담사 불이문

만해의 족적은 백담사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만해의 흉상은 물론이고 그의 이름을 딴 만해당과 그를 기억하는 만해기념관도 건립돼 있다. (순례 당시 아쉽게도 만해기념관은 보수 공사중이었다.)

백담사 만해당과 만해 한용운 흉상

백담사 만해 흉상 옆에는 시집 『님의 침묵』가운데 한 편인 「나룻배와 행인」이라는 시를 새긴 시비가 서 있다.


왜 이 시를 골랐을까?

백담사 만해 한용운 흉상과 「나룻배와 행인」시비

금강경에는 부처님의 설법, 가르침조차도 중생구제와 해탈의 도구로 여겨야 한다는 경구가 있다.

“그러므로 응당 법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법 아닌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되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가 항상 말하기를, 너희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과 같은 줄 알아야 하느니라. 법도 오히려 응당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是故不應取法,不應取非法。以是義故,如來常說 汝等比丘,知我說法,如筏喩者,法尚應捨,何況非法)” <『금강반야바라밀경』 6.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뗏목을 이용해 강을 잘 건너 왔지만, 그 뗏목을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설 수는 없는 일. 소중한 도구였지만 더 큰 목적을 위해서 버려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이치라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 역시 해탈에 이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깨닫고 나면 거기에 집착하거나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한 은유다.

백담사 만해 한용운 흉상 근접

그럼에도 만해는 ‘해탈에 이르게 하고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한’ 바로 그 뗏목을 따스한 시선으로 챙기고 있다.


비록 중생은 ‘흙발로 짓밟고 물을 건너면 돌아보지도 않지만’ 그들이 올바른 길로 들어서기를 바라며 ‘날마다 낡아가며 기다리는’ 묵묵한 태도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백담사 「나룻배와 행인」시비 정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백담사 화엄실 전경

시「나룻배와 행인」을 새긴 건 만해의 깊은 뜻을 순례자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 아닐까 생각해보며 화엄실로 발길을 옮겼다.


만해가 집필공간으로 쓴 그 당시 화엄실은 비록 전쟁 통에 사라졌지만 공간은 그대로 일 것이라는 기대로 바라봤다.


그런데, 화엄실은 매우 굳게 닫혀 있었다.

백담사 화엄실 정면

다른 이의 흔적 때문에 이런 저런 구설이 나오는 걸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일까? 문고리에 나무빗장을 야무지게(?) 질러 놓았다.


1988년 11월 23일 이곳에 유배 아닌 유배를 온 전직 대통령 전두환(1931~2021) 부부. 국회 청문회로 5공화국 비리가 드러나면서 여론이 들끓자 떠밀리듯 백담사 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화엄실에 묵었다.

경향신문,1988.11.23. 조선일보,1988.11.24. (츨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하지만 이들은 백담사행 1년을 맞아 커다란 행사를 갖는다. 호기심 어린 대중과 지지자들 2천여 명이 모여 야단법석을 펼친 것이다.


은둔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인파가 모였다는데, 전직 대통령은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속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업장소멸’을 주제로 강연도 했다.

경향신문,1989.11.23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전씨는 ‘불교란 종교라기보다는 마음 다스리는 법을 익히는 일종의 철학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여기 오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그동안 불공을 드리면서 마음을 다스리지 않았다면 화병을 얻었을 겁니다.’라고 했다. 전씨는 또 ‘절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백일기도를 마치고 나면 영화에서 보듯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통술이 생길 줄 알았다.’며 이따금 농담도 하는 여유를 보였다.”<동아일보.1989.11.23.석간 5면>


백담사 생활 1년 만에 진리를 깨달았다는 전직 대통령.

한평생 수행에도 ‘알 수 없다’고 한 만해와는 어떤 점이 달랐을까?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일부>

백담사 극락보전

1990년 12월 말까지 2년 남짓 백담사에 머문 전직 대통령은 1995년 제정된 5.18 특별법으로 무기징역이라는 속세의 단죄를 받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세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내다 ‘백담사행’ 33년 만인 2021년 11월 23일 세상을 떠난다.

백담사 극락보전 뒤 풍경

세상에 목소리 높이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승을 떠난 뒤 유골 쉴 곳조차 찾지 못한 권력자.


세속의 시선에서는 고단한 삶일 수 있지만 침묵 속에 스스로 떳떳하고 민족 앞에 맑게 살아온 거인.


너무나 비교되는 두 사람이 같은 공간을 공유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백담사 범종루

비록 다른 시간대이지만 같은 공간에 두 사람을 존재하게 한 건 부처님이 점지한 인연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인연을 맺게 한 건 부처님만이 아실 깊고 넓은 우주관 속에 그 어떤 진리와 교훈이 담겨있을 거라고 짐작만 해 볼 뿐이다.

백담계곡에서 바라본 백담사

백담사를 둘러보고 수심교 아래 냇가로 걸어 내려왔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돌탑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몇몇 순례자들은 돌을 고르고 골라 정성스레 탑을 쌓고있다.

백담사 수심교 아래 계곡

‘만불만탑’

순례자들이 소원 빌며 쌓은 '만불만탑'

가족의 건강과 행복, 합격과 취업, 재물, 소원 성취 같은 평범하고 혹은 세속적인 바람을 담고 있을 것이다.


비록 하찮아 보이는 돌멩이로 삐뚤빼뚤 쌓았지만 그 어떤 예술작품 못지않게 아름답고 멋지다.

백담사 앞 계곡. 순례자들이 쌓은 돌탑이 가득하다

중생의 염원을 간직한 채 햇빛과 바람, 눈비 속에서도 사계절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온 돌탑들.


그 모습이 경이롭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가 휩싸고 도는' 100년 전 거인처럼.

한용운 시조,「사랑」친필원고 (인제 만해문학박물관 전시)

“봄물보다 깊으니라

갈산(秋山)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한용운 시조,「사랑」, 권영민 엮음,『한용운 시전집 님의 침묵』, 문학사상, 2024, p.358> ///TOK///

*주) 인제 백담사 편으로 『사찰순례자의 노트3』을 마무리 한다. 네번째 사찰 순례자의 노트를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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