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혀사장의 서고 May 23. 2018

현대차 노조는 왜 매년 파업을 할까?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 서평

 현대차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던 것은 '파업'이었다. 조금 더 나아가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요구하며 회사를 압박하는 '귀족노조' 정도? 친구들이 하나 둘 회사에 취직하고, 후배들도 취직을 시작하는 시기가 되다 보니 노조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싹 사라진 지 오래지만 내가 처음으로 언론에서 접한 노조인 현대차 노조에 대한 반감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기만 했었다. 도대체 회사는 왜 이들을 방치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갔었다. 그래서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 책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를 집었었다. 어디 한 번 현대차 노조를 방어해보라는 오만한 심정으로. 그리고 무참히 반성했다. 현대차 내의 역사적 연원은 물론이고 한국 노동시장의 특수성이 낳은 안타까운 현상 중 하나일 뿐, 그네들이라고 유독 특출 나게 악마적인 집단은 아니었다.





 이 책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는 박태주 교수가 썼다.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노동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사회적 참여도 꽤 활발하게 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몇 년 전 현대차 노사 합의에 의해 꾸려졌던 노사자문위원회/노사전문위원회에 다년간 참여하면서, 현대차 내부의 노사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신 모양인데 그 경험이 오롯이 책에 녹아있다. 거기다 단순히 현대차의 노사관계만이 아니라, 한국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문제를 비교적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그 가치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책 전체 내용을 옮기기는 능력도, 지면도 부족하니 인상 깊었던 대목 몇 가지만 옮겨보려 한다.



현대차 노조는 왜 파업을 하는가?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이거였는데, 답은 의외로 허망했다. 현대차 노사관계 자체가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파업이 노사 양측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 합의된 쇼와 같은 현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여 서다. 


 첫 번째는 노사관계의 측면이다. 


 노조 집행부는 현실적으로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 파업을 하지 않고 요구안이 타결되면 '더 받아낼 수 있었는데 적당히 타협을 했다'는 비난을 받아 다음 선거 시에 집행부가 교체된다. 이미 노조원의 대부분이 파업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기 때문에 사쿠라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적당히 밀고 당기다가 유명무실한 파업을 진행하고, 그 덕분에 회사로부터 양보를 받아내는 모양새가 노조 집행부 입장에선 최선이다. 실제로 한 번은 회사 측에서 노조 요구안에 근접하는 것을 덜컥 제안해버리자 되려 노조 집행부 측에서 몰래 이를 물러달라고 요구하는 촌극까지 벌어졌었단다. 협상력 높은 '강성노조'를 유지하려다 보니 생긴 비극인 셈이다.



 반대로 회사 측은 어떨까? 그런데 이쪽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사측에게 현대차 노조는 궤멸시켜야 할 대상이지,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래서 사측에서도 노무담당 임원들이 쉽사리 협상을 받지를 못 한다. 파업도 없이 요구안을 들어주면 '퍼주기'를 했다는 비난을 받고 사내 정치에 의해 보직에서 밀려날 수도 있으며, 좀 더 본질적으로 파업 자체가 사라지면 노무 담당 임원의 머릿수도 같이 줄어든다. 현대차는 유일하게 노무담당 부회장이 존재하는 기업인데, 기업 전체의 이익 관점에서 보자면 노조 분쇄가 최선이겠지만 노무 담당자들이 토사구팽의 고사를 모를 리는 없다. 보수정당 정치인들과 북한과의 관계 같은 셈이다.



 두 번째는 파업의 실제적 피해 측면이다.


 보통 파업 얘기가 나오면 사측만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 역시도 일정 부분 피해를 입는다. 파업 시에는 노동활동을 진행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임금도 지불되지 않고, 이는 노동자의 소득감소로 귀결된다. 물론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해서 오는 고통보다, 파업으로 인해 사측이 입는 여타의 손해가 훨씬 더 큰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협상이 가능한 것이지만 파업이 정례화된다면 노동자들 입장에서도 좋을 일은 없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는 어떻게 파업을 십 수년째 이어가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노측이나 사측이나 양측 모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은 사측 측면. 생산의 차질이 발생하는데 왜 피해가 경미하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가실 텐데, 비밀은 재고와 특근에 있다. 현대차의 생산능력이 증대되면서 현재도 대부분의 차량은 재고가 꽤나 쌓여있다. 생산한 지 얼마 안 된 신차면 몰라, 파업이 이어진다고 해서 비축된 재고가 동이 날 가능성은 없다. 곳간도 계속 빼쓰면 축나지 않겠냐고? 그간 현대차 노조가 진행한 대부분의 파업은 생산 전반이 중단되는 전면파업이 아니라 부분파업이었다. 피차 의례적으로 하는 파업인 거 알고, 노조 측에서도 굳이 생산능력에 중대한 차질을 줄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매출은 판매를 통해서 나타난다. 판매는 재고분으로도 충분하니 매출 타격도 없는 데다, 어떤 측면에서는 재고량 소진의 효과도 있다. 게다가 부족분은 기한을 맞춰 물량을 채우기로 노조와 합의를 하니, 혹시나 물량이 모자랄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피해는 있지만 감수할 만하다는 얘기다.



 다음은 노조의 경우. 매년 그렇게 파업을 하면 파업 기간만큼 임금이 삭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노조원들이 노동운동에 미친 광신도들이 아닌 이상에야 그걸 달가이 여길 이유는 없다. 그런데 이렇게 빠진 부족분은 다 벌충이 된다. 특근/잔업을 통해 사측과 합의된 물량 보존을 진행하면 추가 수당이 나온다. 정규 노동 시간 외에 진행하는 작업이니 당연한 거긴 한데, 추가 수당이 지급되므로 파업으로 인한 손실분은 꽤나 벌충이 된다. 게다가 사측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장려금’이 지급이 된다. 파업 기간에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려다 보니 그런 명칭이 붙은 것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파업 기간에 손실된 임금을 사측에서 보조해주는 셈이다. 결국 노조 입장에서는 별다른 피해가 없다. 그래서 파업은 정례화된다. 


   

현대차 노조는 정말 귀족노조 인가?



 사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생각이 많이 바뀌었던 것이 이 부분이었다. 웬만한 화이트 컬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고임금은 물론이고, 복리후생까지 다른 회사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제삼자가 보기에는 과다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걸핏하면 파업을 해대는 이들에게는 ‘귀족노조’라는 칭호가 너무 적절해 보였으니까. 



 그렇지만 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했다. 회사 사정은 아랑곳 않고 고임금만 외친다던 귀족들의 통상 임금은 전체 임금의 30%를 밑돌았다. 그 악랄한 ‘귀족노조’의 실체는 임금의 70%가 성과급과 상여금, 시간 외 수당으로 채워진 house nigger에 불과했다. 회사의 상황이 나빠지면 해당 임금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고임금으로 귀족 소리를 듣던 현대차 생산직들은 몰락 귀족으로 전락한다. 현대차의 고성장에 기대어 있는 일시적 현상일 따름이지, 우연적 요소에 기반해 평생 놀고먹는 귀족이라 불리긴 좀 곤란하다는 얘기다.



 물론 그네들의 생산성이 해외 공장에 비해서 말도 안 되게 낮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낮은 생산성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임금을 받는 것 역시도 사실이다. 게다가 house nigger와 동일하게, 그들은 회사 내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보단 그들의 피를 빨아 회사와 나눠 갖기를 선택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노동자 중 그나마 나은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는 이기적 행태일 보일 뿐, 현대차가 사내하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있을 때 벌자’는 그들의 태도가 그토록 부당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현재 한국 노동법 상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에는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다. 유일한 다른 대안은 해당 공정을 하청업체에 도급을 주는 것인데, 현대차는 ‘사내하청’이라는 기이한 방식으로 법망을 회피했었다. 하청 업체에서 파견 온 노동자임에도 실질적으로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일한 공정에 투입되며, 정규직 노동자들 이상의 업무 강도를 감당해야만 했었다. 게다가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연차도, 병가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으며 사내하청 노동자가 문제제기를 하면 아예 해당 업체와의 계약을 종료하는 방식으로 편법 해고를 진행했다. 대법원 판결에 의해 위와 같은 사내하청 방식이 부당하다고 결론 났지만 현대차는 이를 묵살하고 기존의 사내 하청 방식을 바꾸지 않고 버텼다. 



 이런 상황에서 ‘귀족노조’를 해체하고, 적당히 어용노조로 대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높은 임금과 좋은 복리후생이 불법 파견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하청 업체 노동자의 임금 향상으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네들의 처지와 비슷하게 추락하게 만드는 하향평준화가 일어날 뿐이다. 법적 테두리 내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조직력이 강한 소위 강성노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을 뿐이지 그 비루한 보호막마저 걷어내면 그네들도 비슷한 꼴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현대차 노조는 귀족노조라기 보단, house nigger에 가깝다는 것이 개인적 판단이다.

 


현대차 노조의 현 상황은 계속 유지가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현 상황이 계속 유지되기는 힘들다. 낮은 생산성과 높은 임금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일시적 상태니까. 이걸 국내 상황에만 한정지어도 그럴 진데, 해외 공장이 끼어들면 문제는 좀 더 심각해진다. 차근차근 한 번 살펴보자.



 ‘편성효율(line of bala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100명이 해야 할 일을 실제로 몇 명이 수행하고 있는지를 비율로 계산한 값인데, 해외 공장이 대략 90% 선이고, 국내 공장은 고작 50% 선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국내에서는 50명이 할 일을 100명이 하고 있는데 비해, 해외에서는 90명이 할 일을 100명이 하고 있다는 말이다. 같은 물량을 생산하는데 해외 공장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이점도 있다. 해외 공장에는 노조도 없거든. 물론 노조가 없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상황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국내에서 강성 노조에 워낙 시달리던 현대차이니만큼 회사 차원에서 ‘노조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외 공장을 운영하다 보니 노조 조직에 대한 노동자들의 압력 자체도 무척이나 낮다. 



 이런 상황이니, 여타의 고려사항을 빼고 오로지 생산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국내 물량을 모두 해외로 돌리는 것이 다국적 기업인 현대차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노조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상황을 모를 리가 없고, 생산 물량이 해외로 빠지면 인원 감축이 올 것도 자명하기에 회사와 ‘국내 물량 보존’에 대한 협의에 이르게 된다. 해외에 공장을 얼마나 늘리건 간에 기존에 국내에서 생산하던 수준의 물량은 보존을 해달라는 얘기다.



 문제는 현대자동차의 호황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이 되냐는 점이다. 현대차가 최초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것은 IMF를 겪으면 서다. 기존까진 지속적으로 성장만 해왔기에 인원 감축이나 생산 축소에 대한 고려가 구태여 필요하지는 않았었고, 그 때문에 90년대 후반의 해고는 더더욱 처절했다. 그런데 지금도 별반 차이는 없다. 현대차는 물량중심주의의 성장 전략을 토대로 공격적으로 해외 공장 설립을 통해 생산을 늘려가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에 불황이 찾아오면 생산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는 국영기업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편성효율이 높은 해외 공장에 배정된 생산량과 편성효율은 물론이고 걸핏하면 파업을 일삼는 생산성 낮은 국내 공장에 배정된 생산량 중에 어느 것을 줄이는 것을 선호할지는 분명하고 그런 상황이 도래하면 노조와 맺은 물량 보존 협약은 종잇조각으로 전락할게 뻔하다. 파업을 하면 되지 않냐고? 그러면 그 물량도 같이 해외로 빼버리면 된다. 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노동자에게 집중된다면 결국은 노조도 굴복할 수밖에 없다. 세계화된 다국적 기업이 노동시장 간에도 경쟁을 강요하면, 노동자들은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노조도 결국 패배하게 되는 셈이다.



대안은 없을까?



 저자께서는 이런저런 대안들을 많이 제시를 한다.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측에서 굳이 그러한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는 전혀 보이지 않고, 반대로 노조 측에서 강하게 요구해야 할 사안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저자는 일관되게 ‘사측의 책임’을 말한다. 사측이 노조보다 훨씬 더 강자이니 양보를 하고 이들을 적극적인 경영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학자의 입바른 소리 외에 기업 입장에서 그게 어떤 이점이 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 바꿔 말해 기업 입장에선 그런 일을 벌일 이유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물론 세계화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국제 노동시장 간의 하향 경쟁을 한 명의 학자더러 모두 해결하라고 할 수는 없다. 좌파 진영조차 ‘연대’라는 두루뭉술한 전략 외에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별 수가 있겠나. 기업 내 노조가 승리하더라도, 정작 해당 기업이 세계의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패하면 노조의 승리는 의미를 잃는다. 직장 자체가 사라지게 생겼는데 근무여건이나 임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대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기업이 스스로 나서서 저런 전략을 취할 일은 결코 없을 테고, 결국은 그런 전략을 취하라는 민주적 압력을 가하는 과정이 필수불가결하다. 그와 동시에 해당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주의까지 해야 하니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긴 하지만 말이다. 최소한 저자께서 말하는 것들은 방향성의 측면에서 나름의 착안 정도는 제시하고 있으니, 한 번 정도는 읽어보시길 권한다. 특히나 필자처럼 노동 알못인 분들이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노동문제의 맛이라도 볼 수 있는 굉장히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 별점은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