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눈으로 읽는 연애와 섹스
요즘은 관심 있는 분야의 좋은 책을 찾는 것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지만, 처음 독서를 시작했을 때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었다. 신문 등에 소개된 책을 찾아서 읽다가 집어던진 적도 꽤 많았고, 고매한 교수님들께서 ‘추천도서’라 이름붙인 케케묵은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으니까. 그러다 찾은 한 가지 방식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추천하는 책을 읽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들은 이 글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싶다). 마리나 애드셰이드의 책 <달러와 섹스>도 그런 식으로 처음 접하게 됐다. 무려 등단작이 <섹스과외>인 경영학과 출신 소설가가 추천주신 책이면 믿고 읽을 수 있을 거고, 그 예상은 아주 정확히 적중했다. 정말 재밌는 책이다.
어느덧 친척 어르신이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넌지시 선 자리를 주선하실 나이가 되니, 주변에도 결혼을 한 사람들이 꽤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곁에서 그네들을 지켜본 바로는, 결혼은 정말 현실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는 시점에서의 식장 위치, 예물, 하객 규모는 물론이고 결혼 후에는 가사 노동을 어떻게 나누는지 까지도 협상 테이블에 오르곤 했다. 시아버지의 지원으로 집을 마련한 친구들은 소소한 시댁 행사에도 자주 불려 다녔으며, 최고의 신붓감으로 꼽히는 여자 약사와 결혼한 남편 분들은 매일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버린다고도 들었다. 저자인 마리나 애드셰이드는 이런 현상들을 경제학자의 눈으로 풀어서 이 책을 썼다. 상투적으로 사용되는 ‘결혼시장’이란 용어를 말 그대로 ‘시장’으로 해석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가정 내 역할분담의 경계도 옅어진 편이긴 하지만 여전히 가사노동은 여성의 업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실제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가사노동에 집중했으니 그런 관념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면 여성들은 왜 남성들보다 가사노동에 더 열을 올린 걸까?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깔끔하고 섬세해서 가사노동에 더 적합하다고 속단하기엔 여자 형제가 있는 분들이 강력하게 반대를 하시리라 믿는다. 애드셰이드의 설명은 훨씬 명쾌하다.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던 것은 여성들이 가사노동에 특화되어서가 아니라, 남성이 육체노동에 있어서 강력한 비교우위를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당신이 노가다 건설현장에서 동일한 임금을 주고 누군가를 고용한다면 여성을 고용하겠나, 남성을 고용하겠나? 부부가 똑같이 매 주 52시간을 일한다면, 과거에는 남성이 본인의 52시간의 노동시간을 임금노동에 쏟는 것이 최적의 시간활용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여성들만 가사노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현대로 오며 사무직이나 서비스직 따위의 화이트칼라 직종이 늘어나자 임금노동에 있어 남성의 비교우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그 현상을 반영해 가사노동이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도 바뀌게 됐다. 집에서 밥하기 싫으면 당신이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올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하물며 맞벌이면.
이게 지루하다면 좀 더 재밌는 얘기들도 많다. 선진국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고등학생들의 성병 위험이 치솟고 있는 국가가 어딜까? 한국이라고 답하시면 자의식 과잉이 너무 심하신 것이고, 책에서 다루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 10대의 임신과 성병감염이 증가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것은 목사님들만이 아닌데, 재밌는 현상은 미국의 콘돔 사용률이 분명 예전보다 증가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대체 왜 미국 10대들은 전보다 더 성병에 많이 걸리고, 더 많이 임신을 하는 걸까? 좀 의외의 대답일 수 있지만 이건 소득 불평등 때문이다. 보수적 독자님이라면 찌푸린 눈살을 펴시고, 진보적 독자님이라면 반짝이는 기대를 거두기 바란다. 이건 그런 얘기가 아니거든.
간단한 수학을 한 번 해보자. 밤 11시 42분. 침대에 누웠는데도 오늘따라 출출함이 좀 심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집에 들어올 때 마침 떡볶이 포장마차가 보였었다. 잠깐 슬리퍼 신고 나가서 자꾸 생각나게 하는 맛없고 나쁜 음식을 먹고 싶은데, 마침 내일 오전에 프로필 사진 촬영이 있어서 며칠 째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쉬운 계산이다. 지금 떡볶이를 먹음으로서 얻는 효용이 10년 동안 여권사진에 들어갈 부은 얼굴로 인한 고통보다 크다면 떡볶이를 먹으면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참는 것이 맞다. 모든 행동이 항상 이런 계산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판단이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잖은가.
미국 고등학생들도 비슷한 판단을 한다. 내가 지금 섹스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용과, 지금 공부를 하면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안정적 삶을 포기하는 비용을 저울질을 하는 것이다. 대학가면 애인이 생긴다는 많은 선생님들의 말은 거짓 선동이었음이 밝혀졌지만, 미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음으로써 얻는 피해는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소득 수준, 미래 배우자의 수준, 정년, 건강 등등등. 고졸과 대졸자의 차이가 커지자, 예전보다 섹스에 참여하고 있는 고등학생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섹스하는 사람의 수 자체가 줄어든 것이니 성병과 임신도 줄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애드셰이드는 이 역시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한다. 모든 고등학생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애드셰이드의 방법론을 따라, 고등학생들을 대략 세 집단으로 나누어보자. 무조건 콘돔을 써야한다는 위험회피 집단, 상대에 따라 적당히 맞추는 위험중립 집단, 무조건 콘돔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위험애호 집단. 학교의 첫 번째 성병 보유자는 아마 위험애호 집단에서 발생했을 것이므로, 우선은 위험애호 집단 간에 빠르게 퍼지고, 그 이후에는 위험중립 집단으로 퍼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가 자유로운 교배가 가능한 멘델집단도 아니고, 각자의 연애/섹스 횟수에는 일정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위험중립 집단의 학생들이 위험회피 집단의 학생과만 주로 연애/섹스를 했다면 그 사람은 위험중립 집단임에도 성병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척 안타깝게도, 고졸자와 대졸자 사이의 불평등이 커지자 위험회피 집단이 가장 먼서 섹스시장을 떠나게 됐다. 애초에 ‘위험회피’ 집단이니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그러면 남은 것은 위험중립 집단과 위험애호 집단뿐이니, 예전에 비해 성병은 더 급속도로 퍼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책이 마냥 좋은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분야의 지식을 응용하는 응용학문의 일반적인 특성이긴 하지만 저자가 경제학자이다 보니 ‘진화심리학’을 꽤나 탄탄한 과학적 사실인 양 인용하는 경우가 꽤 잦다. 예컨대 여성이 배란기에 가까워지면 더 근육질의 남성을 찾게 된다는 식의 주장을 ‘여성은 더 강한 수컷의 유전자를 원한다’는 식의 진화심리학을 인용 한다던가 하는 부분들에서는 약간 뜨악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본인의 전문분야인 경제학적 관점을 이용한 연애와 섹스시장의 분석은 탁월하며, 이 책을 읽음으로서 얻을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실제로 연애나 섹스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관심 있는 분은 꼭 읽어보시길 추천 드린다. 개인적 별점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