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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Jan 14. 2019

아프리카는 왜 여전히 가난할까?

남아공 대사가 번역한 아프리카 빈곤의 이유

 로버트 게스트 저, <아프리카 :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을 읽었다. 조금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자들이 쓴 책들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대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깊이를 담보하면서도 술술 잘 읽히는 문장으로 쓴 책이 많았기 때문인데, 이 두 가지가 교양서에 있어서는 가장 큰 덕목 아닌가? 전문적으로 연구를 하는 학자가 대중적인 글도 잘 쓴다면 참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꽤 드문 편이고, 그렇다고 관련 분야 연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전공서적을 읽는 것은 무리다. 그 둘의 간극을 메워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언론이고, 그런 일에 특화된 언론인이 쓴 글이니 참 잘 읽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로버트 게스트는 《이코노미스트》의 특파원이다. 세계 곳곳을 다녔지만 아프리카 생활을 꽤 오래 했었고, 그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아프리카는 왜 가난하며, 그 지역의 실상은 어떠할까? 이를 르포기사의 형식을 빌어서 쓴 책이고 기자의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워낙 유려해서 굉장히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책은 역자도 조금 특별한 분이다. 역자인 김은수 대사는 직업 외교관으로 쭉 활동하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한국 대사로 활동을 했었고, 이 경험을 계기로 아프리카를 한국에 알리고자 이 책을 일일이 주석을 달아 번역을 했다. 그냥 이 정도면 믿고 봐야 되는 책이다.




 책은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아프리카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라 보이는 것들을 총 9개의 챕터로 나눠서 서술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후진적인 정치 문화, 아프리카의 자원을 둘러싼 갈등, 아프리카의 종족 정치, 아프리카의 에이즈 문제, 아프리카에 대한 해외원조, 아프리카와 자유무역 등등 피상적으로 봐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문제들을 경제지 기자의 냉철한 눈으로 정말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가령 에이즈 문제를 보자. 통계로만 보던 수치가 아니라, 그가 직접 보고 겪었던 아프리카의 개별 사례들은 훨씬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에이즈 고아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부모가 모두 에이즈로 사망하고 남은 고아들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는 한 부류의 사람들이 더 있다. 전통적인 아프리카 사회에서 기대되던 봉양은커녕 자식들의 죽음으로 인해 손자들에 대한 양육 책임마저 떠맡은 노인들이다. 아프리카 여성들이 매일 5km를 걸어서 물을 길어 간다던 것 들어보셨는가? 그걸 비교적 건장한 성인 여성이 아니라 노인들이 감당해야만 한다. 통계로는 담기 힘든 얘기다.


아프리카에서는 먼 우물로 물을 길으러 다니는 일이 많다. 출처 : Water Wells for Africa


 물론 책이 이런 지엽적인 사례들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 기자답게, 그는 아프리카에 더 많은 자본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부실한 토지제도로 인해 본인들이 소유한 토지의 주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길도 막아버린다. 자기 자본을 바탕으로 자생적 산업 구축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다국적 기업이 아프리카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을 두고 ‘노동 착취’라는 비난이 일자, 그런 열악한 일자리도 사라지고 해외의 직접투자도 감소하게 됐다. 자기 자본을 이용한 산업 발전도 불가능하고, 해외자본의 유입도 막히자 결국은 대규모 실업만 남았다. 서방 국가 좌파들의 생각과는 달리 ‘노동 착취’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다국적 기업 사무실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는 것이 아프리카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해외 원조는 어떨까? 이 역시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자본 유입의 한 형태이고, 미국이 전후 유럽을 복구했듯 아프리카 역시도 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원조를 받는다면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그런데 아프리카에는 이미 마셜플랜(미국의 전후 유럽 복구지원)에 해당하는 금액의 6배가 투입되었음에도, 어떤 나라는 원조를 받기 전보다 훨씬 더 가난해졌다. 독재정권이 원조금을 이용해서 정권유지를 위한 선심성 복지정책을 펴고, 진즉 퇴출되었어야 하는 그릇된 경제정책을 계속 유지하며 남는 돈은 계속 착복하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의 독재자였던 사니 아바차는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매일 100만 달러 이상을 국고에서 빼갔다. 총액이 무려 20억 달러. 그리고 그 돈을 다시 본인 친척들에게 뿌리는 방식으로 나이지리아 상류층에 지지집단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이니 해외 원조도 줄어들었고, 아프리카는 점점 더 가난해졌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대륙에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지 않을까?


내전에 동원된 아프리카 남성들. 출처 : 이코노미스트


 물론 천연자원은 있다. 그렇지만 다이아몬드가 됐건, 석유가 됐건 간에 그게 전 국토에 고르게 분포하는 나라는 없다. 그런 지역 이권을 노리고 부족 갈등이 개입하게 된다. 아프리카는 식민지  시기에 확정된 국경을 토대로 독립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한 국가 내에 여러 부족이 공존하고 있다. 한국의 지역갈등은 애교 수준으로 아프리카는 부족주의(?)가 강하고, 여기에 천연자원이라는 막대한 이권이 걸리자 이들은 내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내전도 시작은 독재자들이다. 부족 감정을 악화시켜 본인의 정권유지를 도모하다가, 결국은 억압받던 부족이 인접국의 사주를 받거나 아프리카 외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내전이 일어난다. 반군이 천연자원이라는 돈줄을 쥐고 있으니 내전은 장기전으로 치닫고, 국가는 붕괴 수준에 이르게 된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거시적 상황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환경단체들도 아프리카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개발도상국 정부가 정글 지역에 새로 도로를 놓는 것을 성공적으로 방해하고 있고, 이 결과 아프리카 항구도시와 농촌도시의 생필품 물가 차이는 30% 이상 벌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농촌 지역에서는 지역에서 재배한 물품들을 해외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산업이다. 생필품은 비싸게 사고, 본인들이 재배한 물품은 싸게 팔아야 물류비를 견디고 해외에서 팔릴 수가 있다. 물론 이런 결과는 환경단체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해외 선진국은 강력한 농업보조금 정책과 높은 농산물 관세를 통해 자국 농민들의 이익을 지켜주고 있고, 이는 해외 선진국 시민들은 물론 아프리카의 발전도 가로막게 된다. 아프리카가 자생적으로 발전해서 원조대상국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이런 보호주의적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2004년에 쓰인 책이고, 2009년에 번역된 책이니 지금은 거의 15년이 지난 아프리카의 과거다. 아마도 다른 더 좋은 책이 근래에 발간이 되었을 테고, 이 책도 현재는 절판 상태라 중고거래 외에는 구매할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아프리카 자료들을 찾아보며 비교했을 때, 저자가 지적한 문제들은 15년째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이 책을 읽으시고 최근의 업데이트를 찾아보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그리고 기회가 닿으신다면 이 책과 함께 <냉정한 이타주의자><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를 같이 읽으시길 추천드린다. 같이 보면 세 책에 대한 이해도가 같이 높아지실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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