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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Mar 15. 2019

경찰은 왜 유흥업자와 손을 잡는가

경찰이 고발한 <경찰의 민낯>

 요즘 경찰이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몇몇 연예인들의  범죄들이 밝혀지는 중에 '경찰총장'이 뒷배를 봐주고 있다는 카톡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성폭행과 마약, 몰래카메라 등의 충격적인 문제들이 드러나는 중에 경찰 직제에는 없는 '경찰총장'이라는 의문의 고위급 관계자가 얽혀있다는 주장은 연예인들의 성범죄 문제를 넘어 경찰 조직 자체에 대한 신뢰 문제로도 번지고 있다. 그런데 뭔가 참 익숙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장신중 저, <경찰의 민낯>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특별히 경찰 문제(문제가 있다는 것도 사실 잘 몰랐다)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었고,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대해서나 약간 관심을 갖고 있던 상태에서 추천을 받고 읽게 된 책인데, 읽는 내내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대체 한국이라는 국가는 어떻게 돼먹은 곳이기에, 국가의 치안담당 기관인 경찰을 이따위로 운영하고 방치했었단 말인가.

 

 

 나는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이란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거기엔 이런 장면이 하나 나온다. 정·관계와 검찰에 검은돈을 뿌려댄 최민식(극 중 최익현)은 경찰서에 연행되자마자 본인이 해당 경찰서의 서장과 아주 절친한 사이라며 일선 형사들을 겁박한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장면이 바로 그건데, 코믹하고 과장된 그의 연기 바로 다음 장면이 참 냉혹하다. 형사들은 경찰서 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도열하고 있고, 최민식의 돈을 받은 검사는 경찰서장에게 훈계를 하거든. 나는 이게 80년대의 부패한 공직사회를 잘 묘사한 시대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비교적 최근까지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경찰 조직은 저런 수모를 계속 감내해야만 했었다. 그즈음부터 최근까지도 저런 문제의 원인이 된 구조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장면 중 일부

 

 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한 경찰관이 자신이 몸 담은 조직을 바꾸기 위해 눈물 나게 싸운 투쟁의 기록이다. 책에서 서술된 것들만 보더라도, 경찰 조직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각종 부조리와 악폐습이 총집합된 곳이었다. 그런데 저자가 미처 책에 담지 못한 사소한 것들까지 합치면, 그간 경찰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운영되어 왔었겠는가. 가급적이면 직접 읽어보시길 바라는 마음에, 책에서 소개된 대표적인 구조적 문제들만 옮겨볼까 한다.  

 

 

 한동안 소방관의 처우에 대한 문제제기가 들불같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불 끄는 일을 하는 소방관이 방화 장갑을 직접 사비로 구매해서 쓴다니, 이게 말이 되냔 거였다. 나는 이게 그저 지방직 공무원이 가지는 한계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국가직 공무원인 경찰은 그 이상으로 막장이었다. 저자가 신입 경찰로 근무를 시작한 시절, 파출소장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파출소 운영비를 벌기 위해서 지역 유지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노래방 사장이나 유흥업소 사장 등을 ‘방범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하여 예산 협조를 받아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개인의 권력형 비리야 의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니 별 것 아니지 않으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이게 단순히 개인 비리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다. 마치 조선시대 아전들이 월급을 받지 않는 명예직이었던 것처럼, 파출소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예산도 부족해 저런 ‘협조’가 필수적이었다고 하더라고. 방범초소 페인트를 칠해야 하는데 예산은 안 내려오고, 결국은 ‘협조’를 받아서 도색을 하면 국가에서는 ‘예산 안 써도 잘한다’며 또 예산을 안 주는 그런 식. 구조적으로 부패가 생길 수밖에 없도록 국가가 조장한 셈인데, 현재에는 그런 기초적 예산은 어느 정도 확충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경찰관’은 타 부처나 지자체 행사에 돈도 못 받고 막 부려 먹히는 신세라고 한다. 아니 그럼 경찰 간부들은 대체 왜 그러냐는 의문이 들 텐데, 여기서 두 번째 문제인 ‘권위주의’와 ‘승진’ 문제가 나온다.

 

동료의 성폭력 피해에 도움을 주다 표적감찰을 당한 경찰관

 

 경찰 조직은 계급이 깡패라고 한다. 보통 계급이라고 생각하면 군대를 먼저들 떠올리실 텐데, 저자의 서술에 따르자면 경찰 조직은 군 나름의 합리성조차 존재하지 않는 권위적 계급주의의 산실이다. <경찰의식규칙> 제 4조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의식의 처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임석 상관에 대한 경례’가 가장 먼저 이루어진다고 한다. 내부 규정이라고만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일인데, 90년대까지는 일반 시민들까지 강제로 일으켜서 경례를 시켰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경찰의 이러한 권위주의가 유지되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규정대로 준수한다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찰의 근무조건과 ‘감찰’의 존재 때문이다. 예전 경찰은 주 60시간 이상을 근무했었다. 24시간을 근무한 후 다음날 하루가 비번인 형태의 2교대를 취했는데, 그 힘들다는 간호사 3교대 근무도 (명목상으론) 8시간 근무다. 명목상으로는 ‘대기’ 시간이 있지만, 인원이 적어 그 시간에 정말 대기를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CCTV로 녹화되는 그 모든 근무 시간 중에 잠깐이라도 졸면 감찰에서 징계를 맞으니, 권력자가 마음만 먹으면 찍어서 표적징계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하급자의 반론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경찰청장 이하 경찰들이 모두 수직적 위계를 구성하고, 인사권까지 쥐고 있으니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승진뿐이다. 그래서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경찰 간부의 수족이 된다. 그런 경찰 조직의 정점에 있는 경찰청장의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니, 경찰은 결코 권력에 대들 수 없다. 충청충성충성이다.

 

 

 책을 읽으며 포스트잇 플래그로 표시해둔 것만 거진 30개가 되지만, 더 적자니 글이 불필요하게 길어질 것 같기도 하고 이 책 한 권만 읽은 상태로 발언하기 곤란한 주제들(가령 수사권 조정)도 있어 이만 줄이려고 한다. 관련 문제에 관심 있으시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함. 개인적 별점은 ★★★☆. 그래도 ‘또라이’ 몇 명이 열심히 노력하면 바뀐다는 것도 알 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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