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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Jun 09. 2019

구조와 의지, 우연이 만드는 역사

오항녕 <호모 히스토리쿠스>를 읽고

제가 역사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좀 특이합니다. 대학에서 역사 관련 교양 과목 하나를 수강한 적이 있었는데, 강의에서 들은 내용은 그동안 제가 역사라고 알고 있던 것들과 거리가 멀었거든요. 갑신정변이 몇 년에 일어났고, 어느 왕이 무슨 제도를 시행한 건 왕권 강화를 위해서였다는 식의 납작하게 박제된 내용이 아니라 논쟁적이고 다층적인 역사적 쟁점도 있다는 걸 정말 처음 알았습니다.      




예컨대 발해가 고구려의 후신이라고만 알았지, 지배층을 제외하곤 주민의 절대다수가 말갈인이었다는 사실은 교과서에서 배운 바가 없었거든요. 연표나 외우는 것이 역사학의 전부인 줄 알았던 저에게는 정말 충격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약대로 진학하며 역사와는 거의 아무런 접점이 없어졌고, 역사학은 약간의 흥미만 남긴 채 제 인생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다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좀 뜻밖일지도 모르지만 ‘생애구술사’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접한 다음입니다. 왕의 일대기도 아니고, 국가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의 일대기도 아닌 평범한 할머니의 삶을 전해 듣고 글로 정리한 ‘역사’라니,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역사 전반에 대한 개괄적 내용이 궁금해 교양서를 찾던 중, 오항녕 교수가 쓴 <호모 히스토리쿠스>를 읽게 됐습니다.     



구조와 의지그리고 우연     



책은 역사학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는 무엇인지,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는지, 역사는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짜임새 있게 전달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지적 충격을 받은 건 역사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역사를 다룬다는 글들을 이것저것 읽었지만, 그 전제가 되는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다룬 책은 처음 봤거든요. 오항녕 교수의 설명을 따르면, 사건은 구조와 의지 그리고 우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몇 년 전, 보건의료계에 무척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모 한의사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수만 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사이비 의학 정보를 유통하다 적발 됐거든요. 해당 카페에서 내놓은 ‘치료법’이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아이가 설사를 하면 숯가루를 먹이고, 화상을 입으면 화상 부위를 뜨거운 물에 담가야 하며, 아토피가 심해 얼굴이 짓무를 정도가 되어도 절대 약을 먹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모두 틀린 치료법이고, 해당 한의사는 결국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되었죠.     

'안아키' 카페에 올라왔던 아토피 아동들의 실제 사례


이를 구조와 의지, 우연으로 한 번 구분해보겠습니다. 해당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구조적 토대는 피해 부모들이 제대로 된 의학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는 점일 겁니다. 제대로 된 의학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임에도 저런 황당한 치료법이 통용되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대로 된 의학 정보에 접근하기 힘든 상황이니 인터넷에서 공개된 사이비 정보에 혹해서 자신의 자녀에게 해를 끼치는 위험한 의료행위를 맹신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단순히 의학 정보를 얻기 힘든 ‘구조’가 있었다고 해서, 저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여기에 해당 한의사의 ‘의지’가 끼어듭니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상황을 통해 추론할 따름이지만, 해당 한의사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주장한 ‘설사 치료비법’인 숯가루를 무척이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제조했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주장대로 숯가루가 설사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애초에 그 숯가루를 만드는 데 사용한 나무조차 야외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곰팡이가 잔뜩 핀 상태였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해당 한의사가 본인의 이윤 추구를 위해 저런 부정직한 주장을 한 것이라고 추정을 했습니다. 의료 정보에 대한 접근이 힘든 구조에, 이윤 추구라는 의지가 곁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역시 해당 사건의 발생을 설명하기에 충분치는 않습니다. 의료 정보에 대한 접근이 힘든 구조와 이를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가진 이가 결합한다고 해서 ‘안아키 사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저는 이 사건의 마지막 조건으로 하필이면 그가 ‘한의사 면허’라는 국가공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우연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저런 구조적 조건을 이해하고, 이를 악용한 이윤 추구 목적을 가진 사람은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안아키 사태’는 그런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한 이가 한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었을 뿐이죠. 실제로 해외에서는 ‘백신 음모론’을 펴는 의사도 있으니, 그가 의사 혹은 약사였어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겠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하필 한의사였던 것이죠. 저는 ‘안아키 사태’가 이렇게 발생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관심과 해석의 차이     



오항녕 교수는 책에서 ‘해석의 차이’라는 것을 꽤 심도 있게 설명합니다. 혹자는 이런 해석의 차이를 두고 역사학이 해석하는 사람의 자의에 따라 제멋대로 바뀌는 분야라 오해할 수도 있지만, 실은 해석 이전에 ‘관심의 차이’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안아키 사태’를 두고, 부모가 왜 저런 사이비 의학 정보를 맹신하게 되었는지에 더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심리상태 변화를 볼 수 있는 정보들을 우선적으로 취합해서 해당 사건을 해석하려 하겠지요. 반면에 다른 사람은 이를 인터넷을 통한 정보 확산의 사례로 보고, 이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해당 사건을 해석할 것입니다. 결과물은 다르지만 같은 사건에 대한 설명이고, 이 두 관점이 상충한다고 해서 ‘안아키 사태’라는 객관적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화제를 모았던 '독박육아'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저자는 ‘해석’을 위해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무척 부적절함을 이야기합니다. 예컨대 안아키 사태를 ‘독박육아’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맞벌이가 대부분인 젊은 부부에게서, 여성은 직장 업무를 병행하며 육아를 전담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긴 시간을 투자해 정확한 의료 정보를 찾을 여력이 없어,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이러한 해석은 독박육아라는 부정적인 현상으로 인해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독박육아가 단지 여성이 추가적인 부담을 지는 문제가 아니라, 자녀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문제적 현상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져 고무적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안아키 카페에 전업주부나 아빠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을 누락시키는 것은 곤란합니다. 해석 이전에 사실의 문제인 것이죠.     



역사는 현재이고있는 그대로 봐야     



저자는 책을 통해 이런 입장을 꾸준히 피력합니다. 역사는 국가의 역사와 같은 거대한 것이 아니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도 모두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 구요. 그리고 역사를 특정한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한다고 당부합니다. 역사를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격하시키지 말자는 것이죠.     




오항녕 교수는 본인의 주장을 본인의 책에서도 구체적으로 실현합니다. 단지 총론으로서의 역사나 역사 이론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인 ‘자유민주주의 건국이념 논쟁’이라던가, ‘사도세자에 대한 재평가 시도’, ‘국정교과서 논란’ 등을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차분히 소개합니다. 낡지 않은 역사에 ‘대한’ 책. 일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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