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성인용 SF-판타지 단편 애니메이션 모음집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1을 내놨습니다. '성인용'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답게, 폭력 수위와 성적 묘사가 많이 등장하지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슬래셔 무비나 포르노와는 다르게 그리 거슬릴 정도는 아닙니다.
시즌 1에는 총 18개의 에피소드가 공개되었고, 일부 마음에 안 드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모두 나름대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다섯 가지를 꼽아 간단히 평을 남겨보려 합니다. 특별히 스포일러는 없으니 그냥 편하게 읽으셔도 무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디테일한 상상들을 좋아라 합니다.
만약 거대한 지하도시가 생긴다면, 거기도 지역 뉴스 방송 시간에 일기예보 방송을 할지 따위의 것들을 따져보길 좋아한다는 말이죠.
이 에피소드는 내용이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이런 디테일한 현실성이 무척이나 높아 꽤 흥미롭게 봤습니다. 그리고 한국 한정으로 최근의 어떤 사건이 연상되어 더더욱 현실성이 높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지만,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굳이 평을 붙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그냥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감각적인 변주로 인해, 여운이 좀 길게 남았던 작품입니다. 예전에 포스팅 한 적 있는 최제훈 작가의 다른 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읽은 것이 기억나서 더 좋았습니다.
신화 속 존재를 SF에 이렇게 구현하는 작품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전설 속의 구미호와 중국에 반환되지 않은 대안 역사로서의 미래도시 홍콩을 섞으면 뭐가 나올까요? 정말 기대해보셔도 좋습니다.
애니메이션은 꽤나 다층적인 주제의식을 보여주는데,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민족주의가 등장함에도 전혀 구리지가 않습니다. 민족주의를 이렇게 녹여낸다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UBD 하나는 기억하겠습니다)
첫 에피소드였고, 보자마자 반했습니다. 폭력적 수위가 굉장히 높고, 성적인 묘사도 높은 수준이지만 저는 이와 같은 형태가 진정한 ‘디지털 시대’라 생각합니다. 같은 시즌의 지마 블루(ZIMA BLUE) 에피소드는 SF의 탈을 쓴 철학-예술이지만, 무적의 소니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외양으로 감춘 리얼 SF라는 느낌이었달까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무한한 복제 가능성입니다. 데이터 그대로 몇 번이든 온전한 형태로 복제할 수 있다면, 종교적 가르침에 기대지 않더라도 영원할 수 있지 않을까요?
18개의 에피소드 중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주여행 시대의 진정한 비극을 이렇게 담아낼 줄이야.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인식’이란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 극 자체를 한 번 더 흔들어 버리는 것에서 재차 반해버렸습니다. 비극 속의 비극, 아니 어쩌면 비극 속의 구원일까요? 잔혹한 우주 속의 비극을 유려한 영상으로 감상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다섯 가지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러브, 데스 + 로봇>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시즌 2 제작만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