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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Jun 04. 2018

츠타야는 우리나라 음반 시장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일주일 간의 도쿄 여행기 – 1) 다이칸야마 츠타야 T-SITE

체력과 성향 탓에 도장 깨기식 여행을 못한다. 한 곳에 최소 일주일은 머무는 것이 여행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의 결말은 늘 극과 극이다. 얼른 한국에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거나. 어느 쪽이건 비극이다.     


이번 일주일간의 도쿄 여행 후기는 명백히 후자가 되겠다. 친구들은 서울이랑 똑같아, 막상 할 거 없던데, 라며 걱정 섞인 충고를 보냈었지만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 느낄 정도로 귀국이 아쉬웠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츠타야 T-SITE다.     


일본인에게 익숙한 츠타야는 왼쪽. 오른쪽이 내가 간 다이칸야마 츠타야 T-SITE. 고급미 낭낭하다.

일본엔 ‘츠타야’라는 유명 체인 대여점이 있다. 음반 CD는 물론 비디오, DVD, 게임까지 렌탈 가능한 곳이다. 우리 어렸을 적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던 일종의 만화방 같은 존재다. 그 츠타야가 고급화 전략으로 만든 것이 바로 다이칸야마 츠타야 T-SITE다.     


츠타야 T-SITE는 이미 한국에서 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 미래의 서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극찬을 받는 서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혁명적인 서점 카테고라이징 방식 때문인데 –일반적으로 생산자에게 분류가 편리한 작가/년도/장르 식 분류가 아니라 자동차/디자인/여행같이 소비자 위주의 라이프스타일로 분류해놓는 식- 애당초 나는 서적이 아닌 음반에 목적이 있었다.     

MUSIC 이미 내 시야는 우측 상단에 멈춰있다 MUSIC

음반 코너로 들어가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건 온 벽을 가득 채운 음반의 개수가 아닌 음반 큐레이팅 방식이었다. 음악에 대한 뚜렷한 취향이 없는 사람도 이곳에선 취향을 가져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렇다.

엘튼 존의 섹션으로 가면 <엘튼 존의 良き後輩(좋은 후배) – 피아노가 사랑한 록/싱어 2명>으로 빌리 조엘과 벤 폴즈를 소개해준다. 빌리 조엘은 그렇다 쳐도 벤 폴즈를 언급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이 둘의 음악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벤 폴즈에겐 영광일 수도 설명엔 그 둘의 공통점까지 친절히 설명해준다.     

 

눈치보느라 제대로 못찍음. 찍는 데에 의의를 둔다.
눈치보느라 제대로 못찍음. 찍는 데에 의의를 둔다.

제이팝도 다르지 않다. 호시노 겐의 섹션에는 호시노 겐의 앨범뿐만 아니라 호시노 겐이 작업한 앨범과 호시노 겐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추천드리는 앨범 코너가 차례로 나열되어 있다. 마인드맵처럼 호시노 겐에서 다양한 아티스트로 당신의 취향을 넓게 펼쳐나갈 수 있다.     


엉엉 내가 얼마전까지 여기있었는데 엉엉

게다가 이 모든 음반은 바로 청취가 가능하다. 사람이 붐비지 않는 한 좋아하는 음반을 마음껏 골라 들으면 된다. 음반 청취하는 테이블에는 노트북과 핸드폰, 메모와 같은 소위 음악 감상을 방해할만한 행위를 지양해달라는 정중한 안내문도 있다. 반나절을 그곳에 있다 너무 갖고 싶은 음반이 생겨 직원에게 구매의사를 밝혔는데 온니 렌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 렌탈이요?      


앨범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아쉬움 잔뜩 묻은 발걸음으로 숙소에 돌아가는 길, 렌탈이라는 단어가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나라에선 츠타야 같은 서비스가 가능할까? 몇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다.      


1. 데이터베이스의 문제 – 넷플릭스와 츠타야의 시작점

렌탈을 하게 하려면 먼저 원하는 음반을 찾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츠타야 T-SITE의 큐레이팅 방식이 렌탈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이 큐레이팅 방식이 유효하게 작용하는 데에는 역시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와 츠타야는 지향점이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로 갈렸을 뿐이지 시작점은 거의 동일하다. 넷플릭스도 오프라인으로 DVD를 대여해주던 업체였고 이는 츠타야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유지하고 있는 알고리즘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하나 이들이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취향 저격의 완벽한 큐레이팅이 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츠타야는 13만 장의 음반을 보유하고 있고 등록된 회원만 6000만 명에 달한다.      


츠타야는 음반 큐레이팅 또한 각 장르에서 오랫동안 관심을 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있으니 대중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 모든 세심한 노력이 모여 소비자의 취향을 구축하게 하고 렌탈이나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빅데이터가 없을까?

있고 없고를 떠나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에 정착된 ‘렌탈’의 형태다.

     

2. 권리를 렌탈 하느냐 콘텐츠 자체를 렌탈 하느냐의 차이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렌탈을 하는가? 도서관의 책을 빌리는 행위로써의 렌탈을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우리는 매일 렌탈을 하고 산다. 나는 우리나라의 렌탈 방식이 ‘권리’를 렌탈하는 형태로 정착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트리밍권, VOD 시청권, 웹툰 이용권이 그 예다. 무형의 권리를 렌탈하고 그 기간 동안 원하는 콘텐츠를 맘껏 소비한다. 이때 그 콘텐츠 또한 데이터 수용 위주의 렌탈이기에 역시 무형이며 즉각적 소비가 가능하다.   

내 렌탈(및 연체)라이프의 시작이었던 만화방. 지금은 시간제다. 마찬가지로 시간이라는 권리를 구매하는 것.

일본은 상대적으로 옛(?)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음반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본이라는 점을 봐서도 그러하다. 아직까지 오프라인 지점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는 곳이기에 콘텐츠를 직접 소유하는 것이 익숙하다. 도시 한복판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레코드 타워만 봐도 그렇다. 스타를 소비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 아이돌 아라시는 어떤 음원 사이트에서도 아라시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 팬이 그들의 음악을 들으려면 음반을 무조건 사야 한다.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 이들의 방식은 어떻게 보면 올드하지만 한 편으론 아티스트에게 수익이 올바로 돌아가는 정상적 구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틈새 오빠들 영업. 이제 슬슬 내한 좀 하자. 캔드릭 라마도 온다는데..(?)

애당초 내게 음반 렌탈이라는 말의 조합은 참 생소하게 다가온다. 난 소위 MP3 세대로 음악이란 렌탈하는 것이 아닌 소유하는 것이었다.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넘나들며 디깅 하고 다운로드하면 되는. 따라서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일정 기간 물건을 소유하는 렌탈이 음악으로 이어질 리가 없었다. 음반을 구매하는 경우는 그 앨범이 ‘소장 가치’가 있는 경우였다. ‘명반이거나 특정 가수의 엄청난 팬이거나’같이 어떤 의미가 있을 때 말곤 음반이란 멀고도 먼 것이다. 우리나라 음반시장의 존속에 대한 많은 부정적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도 딱 이때쯤으로 기억한다.     

ㄱ나니? 불법다운로드의 산물이었던 그 때 그 곳..


3.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와 스트라디움에 대해

사실 우리나라에도 T-SITE처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비슷한 공간이 있다. 대표적으로 한남동의 스트라디움과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가 이에 해당한다.    

  

엄근진 돋는 스트라디움. 음악보단 사운드 자체를 중시한다.

그러나 스트라디움은 작년 초 경영난으로 폐관하고 말았다. 그들은 대관 위주의 사업으로 전환할 것을 예고하며 완전한 폐관이 아님을 밝혔다. 스트라디움 폐관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내 생각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 번째는 이들의 타겟팅이 너무 ‘음질’ 자체에 치우쳐 있었다는 점. 물론 아이리버가 만들었으니 차원이 다른 음질을 체험하게 하는 취지는 좋았으나 기실 음악보다 음질을 우선시하는 리스너가 전문가 말고 얼마나 될까 하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고객 취향 저격의 음반 큐레이팅이 곁들여진 고급 음질의 체험이었다면 결과가 좀 달라졌으려나.


두 번째는 지나친 장르 고급화 전략이다. 건너편의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 비해 클래식 음악 위주의 음감회나 강연은 일반인의 진입 장벽을 높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경험상 어려운 건 받아들여지느냐 마느냐를 떠나 무관심해지기 쉽다. 딱히 내 얘기라서 그러는게 아니다.

물론 내가 무지한 탓도 있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스트라디움 공식 홈페이지에는 음악과 패션을 접목해 다시 재오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두 가지 단어로는 잘 상상이 가지 않지만 어찌 됐건 재밌었으면 좋겠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는 안타깝게도 내가 현대카드 회원이 아닌지라 (짜증)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주변에 그 흔하다는 현카 회원도 없음. 쩔수 없이 수많은 블로그를 뒤져본 결과 연도별로 엘피를 구비해두었더라. 재밌는 건 그곳을 다녀온 블로거들 대부분이 매우 대중적인 음악가들의 노래를 듣고 왔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마룬 파이브, 에드 시런, 장기하 등등이었다. 물론 대중적인 뮤지션이 취향일 수 있으나 중요한 건 이들의 재방문 가능성이다. 지금 당장 음원사이트로 쉽게 즐길 수 있는 뮤지션들을 왜 굳이 그곳까지 가서 LP판을 돌리려 하겠는가. 결국 체험형으로 그치고 말게 되는 위험이 있다. 그러니 현대카드는 얼른 저를 채용하라(?)          


다이칸야마 츠타야 T-SITE의 음악공간이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무엇보다 일본 특유의 음악 시장적 특성-폐쇄적이며 오프라인 음반 시장이 아직 가능하며 방대한 빅데이터의 보유-를 잘 녹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이방인이기 때문이 이 공간이 더더욱 특별히 느껴졌을 수도 있고. 츠타야 T-SITE를 우리나라로 그대로 가져온다고 가정했을 때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우린 이미 너무 스트리밍인걸. 다만 공간이 주는 매력과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넓은 음악 지식들이 좀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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