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 오는 새로움, 시티팝의 매력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중2병의 아류, 소위 ‘너 이 노래 알아?’ 병에 걸려 근거 없이 대중가요를 극혐 하고 남들이 모르는 곡을 찾는 데 병적인 집착을 보였던 나. 지금은 대중가요라고 칭하는 곡들이 얼마나 수준 높고 대중과 인디를 나누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실시간 차트와 영혼 없는 스밍에 의존하는 것이 지루할 때가 있다. 적어도 예전에는 검색도 엄청하고 취향에 맞는 노래를 찾을 때마다 희열도 느꼈었는데.
2013년 쇼미 더 머니 시즌 2의 불씨가 대한민국을 휩쓸며 전국이 '드롭 더 빝'을 했다. 그것의 열기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난 내가 힙합에 적응하지 못하는 편향된 취향의 슬픈 포유류인 것을 통감하고 걷던 락길을 계속 걷게 되는데 이제 그마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 요즘 푹 빠진 장르가 있다. 바로 시티팝이다.
시티팝이 뭔데?라고 호기심을 보이는 지인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면 뭐야 일본어냐, 하는 질색팔색의 얼굴을 자주 마주한다. 그러나 일본 음악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제이팝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채로우며 어마어마한 실력자들이 많다는 것을. 애니 주제가를 시작으로 내가 일본 음악을 본격적으로 찾아 듣기 시작한 것은 17살 때부터다. 우리나라 음원 사이트엔 없는 느낌의 일본곡을 발견할 때면 낡은 아이리버 엠피쓰리에 노래를 일일이 녹음해서 저장하고 다녔다. 내가 일본 노래를 듣고 있다고 하면 ‘오타쿠네’ 하는 조소의 반응은 늘 따라온다. 예전엔 그게 참 싫어서 가사도 흥얼거리지 못하고 숨어서 몰래 들었다. 이렇게 좋은 노래들을 듣지도 않아보려 하다니! 청국장이 정말 맛있는데 먹어보지도 않고 코와 입을 틀어막는 사람을 안타깝게 쳐다봐야 하는 마음이랄까. 청국장 맛있잖아, 얘들아. 이것도 그렇다니깐!
시티팝은 7~80년대 일본의 대성장으로 풍요로웠던 버블 시기에 태어난 장르다. 시티라는 이름답게 도시적인 느낌이 강하다.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지만 전체적으로 그것을 관통하는 것은 여유로움이다. 이 여유로움이란 결국 시티팝이 신스팝이나 훵크, 어반재즈의 융합으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일맥상통할 것 같다. 베이스 사운드가 유독 도드라지고 코러스의 화려한 사용과 일본 가수 특유의 바이브레이션 강한 보컬이 특징이다.
올해 봄인가. 좋아하는 디제이의 사운드 클라우드 liked 목록을 보다가 일본어로 쓰인 노래가 있길래 무심코 들었다. 카도마츠 토시키(角松敏生)의 '첫사랑(初恋)'이었다. 카도마츠 토시키는 80년대 시티팝의 대부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처음부터 진짜를 만난 거다. 듣자마자 느껴지는 '여유 그루브'에 웃음이 터졌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장르다. 음악 한 곡이 책상에 스탠드 하나 덜렁 켜진 내 방을 단숨에 하와이의 해변가로 보내버리고 만다.
그 시티팝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윤종신이 7월 말 낸 'Welcome Summer'도 시티팝인데 이번 여름 가장 많이 들은 곡 중 하나다. 일위 가수로 요즘 한창 경사신데, 기쁘지만 이 노래로 뜨셨으면 더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빈지노가 입대 전 발표한 재지팩트의 '하루 종일'도 방금 언급한 카도마츠 토시키가 프로듀싱해 유명해진 Anri의 'Last Summer Whisper'를 샘플링한 곡이다. 원곡도 원곡 나름대로 새로우니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얼마 전 새 음반을 낸 케이지의 '플라네타리움'이란 곡도 시티팝 장르라고 한다. 사실 작년부터 디제이들 사이에선 시티팝이 유행한 지 이미 꽤 되었다. 그들의 믹싱을 잘 들어보면 시티팝이 꼭 등장한다. 요즘은 카페에 있다가 시티팝이 흘러나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직원에게 이 노래 무슨 노래냐고 물어보는 날이 잦아졌다. 설레는 일이다.
시티팝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나라 80년대 음악도 생각해보게 된다. 좋아하는 디제이가 일본의 디제이와 인터뷰한 글을 읽었는데 아직도 일본에서는 일본의 옛날 음악을 디깅 하고 즐기며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시티팝의 국내 유행과 더불어 우리나라 8,90년대 음악도 다시 재조명될 수 있을까. 한국의 옛날 음악은 촌스럽다는 편견은 한 곡도 제대로 안 들어보고 하는 말이다. 가사도 재치 있고 리듬도 탄력적이고 그 세대가 아닌데도 느껴지는 그 시절에 대한 묘한 향수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서 공유할 수 있는 민족적 '흥'이 있다. 최근에 놀러 간 록 페스티벌에서 한 디제이가 플레잉을 했는데, 미적지근했던 스테이지를 후끈 달궜던 건 듀스의 '여름 안에서'가 나오자마자였다. 주말엔 집에서 김수철의 '젊은 그대'를 무심코 틀었는데 어느새 온 가족이 흥이 올라 젊은 그대 잠 깨어 오라를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젊은이도 엄빠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그 시절 그 음악이 왜 홍대나 이태원에선 나올 수 없을까. 촌스러워서? 힙하지 않아서?
누군가가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냐 겨울이냐 물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겨울이라 대답했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그렇게나 기록적으로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끝나가는 게 아쉽다. 뜨거운 여름을 여름답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 시티팝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시티팝 또 없나 찾아보고, 들으면서 가사 찾아보고, 내적 댄스 추고.. 내 여름방학은 이게 전부였다. 남들처럼 피서는 못 갔지만 달팽이관만큼은 하와이 두 달 보내줬으니 이걸로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