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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llax Feb 21. 2020

흑백사진노트 14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비록 시력은 좋지 않지만 안경을 사용하면 충분히 사물을 알아볼 수 있다는 당연함에 별생각 없이 지냈는데 누군가의 질문 덕분에 얕았던 생각 속으로 급하게 깊이가 생겨나던 순간이었습니다.




약속 장소에 조금 이르게 도착하여 지니고 있던 카메라를 꺼내 주변을 기웃거리던 중 어느 건물 앞 바닥으로 비춰진 빛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사람이 지나는 모습을 담아봐야지라고 생각의 그림을 그리고는 약속시간까지의 여유를 다시 확인하고는 기다리며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뭘 보고 계세요?'라는 누군가의 질문이 등 뒤에서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어떤 할아버지의 질문이었죠. 제가 어슬렁거리며 그 빛을 보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어렴풋이 지켜보다 궁금하여 물었다 했습니다. 그래서 설명을 해 드리니 '그런 게 보이다니 부럽네요. 난 얼마 전부터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다 희미하게 보여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어요.' 그 말씀에 괜히 죄송스러워졌습니다.


1.3 크롭 카메라, 75mm, F3.4, 1/3000, ISO 160


나이가 든다는 건 시간을 꾸준히 쓰고 있다는 것이며 이 몸은 일회용이라 점점 낡아져 간다는 걸 새삼 느끼는 말씀이라 상대적으로 어린 제가 숙연해졌던 겁니다. 저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눈도 점점 더 침침해질 거며 기력도 쇠해지겠죠. 요즘 바이러스 때문에 매일이 소동인데 예전보다 더 관심이 커지는 것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져 가는 몸에 대한 본능이라 여겨집니다.



결국 그 빛 속으로 누군가 들어와 사람을 기록했고 약속했던 사람도 만났었습니다. 시간은 있는 듯 없는 듯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에게 공평하게 모든 걸 주고 있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그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수시로 나를 살피고 하나뿐이며 한 번뿐인 이 몸과 삶을 살아있는 동안 가치 있게 만들 방향을 세워야겠습니다. 오늘도 건강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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