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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 Nov 24. 2019

어쩌다 을지로 #4

- 후보 찾기 : 합정역

잠실역에서 2호선을 타고, 합정역까지 머나먼 여행을 시작했다. 


오늘 계획한 코스는 합정 -> 충정로 -> 광화문 순이다. 미리 점찍어둔 오피스텔 몇 군데를 둘러보고 부동산에 들어가서 정확한 시세를 파악하는 것이 목표이다. 아울러 최대한 월세를 깎을 수 있으면 좋고. 

늦잠 자는 바람에 출발이 늦어졌지만, 나의 황금 같은 휴가를 최대한 절약하고자 오늘 하루 만에 후보지를 다 둘러보고 결정을 내릴 생각이다.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덧 합정역에 도착하였다.  


#합정  

나는 아직 미혼이고 약속도 많은 편이니, 정말 단순하게 홍대-합정-상수 라인에 집을 구하면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틀 동안 손품을 팔아보았는데 의외로 홍대나 합정 인근에 오피스텔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내가 브랜드 있는 오피스텔만 찾아봐서 그럴지도). 


어쨌든 합정역 역세권에는 단연 P오피스텔이 눈에 띄었는데 아파트와 같이 단지를 이루고 있는 점, 각종 편의 시설이 건물 내에 모두 위치한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교보문고도 있고, 스타벅스도 있고, 폴바셋도 있고, 햄버거 가게도 있고, 김밥집도 있다. 그리고 오피스텔 뒤편에는 힙한 가게들도 많다. 심지어 맞은편에는 마트와 영화관도 있다. 걸어서 5분도 안 걸린다. 그야말로 천혜의 환경이다. 


나는 혼자서도 정말 잘 노는 편인데, 쉴 때 가장 자주 하는 짓(?)이 서점 가서 책보거나, 카페 가서 책보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그런 면에서 P오피스텔은 거의 나를 위한 오피스텔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하지만 온라인으로 입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오늘 임장을 통해 꼼꼼히 따져봐야지. 

합정역 8번 출구로 나와서, 더방을 통해 미리 연락을 한 부동산에 들어가 인근 오피스텔에 대한 시세와 현재 나와 있는 매물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1달 내로 바로 입주가 가능한 매물 2개에 대해서 둘러보기로 결정하였다. 


"이야, 정말 전망이 좋네요!"

"그렇죠? 오랜만에 나온 로얄층이에요. 게다가 멀지만 한강도 보이고요." 


18층에 위치한 7.5평짜리 방을 들어선 순간 '깔끔하다'와 '좁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뇌리를 스쳤다.

현재 살고 있는 임차인이 방을 워낙 깔끔하게 써서 첫인상도 매우 좋았을뿐더러 무엇보다 경치가 아주 좋았다. 낮에도 이렇게 탁 트이고 시원한 뷰인데, 야경은 얼마나 이쁠까.


다 좋은데... 가격이 문제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90만 원.  

내가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동안, 부동산 사장님은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어가며 방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화장실 점검까지 마치고 다른 매물인 3층 방을 보러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은 구조가 똑같고, 남향인 점도  동일하였지만 뷰가 그리 좋지 않았다. 스트릿뷰라고 해야 하나?

외출하거나 쇼핑하러 왔다 갔다 할 때는 저층이 아무래도 더 편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입주청소를 할 거지만 임차인이 방을 조금 더럽게 쓰고 있는 점도 살짝 마음에 걸렸다.

대신 월세는 18층에 비하여 5만 원 저렴하였다. 연으로 환산하면 60만 원.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와서 상담의 시간을 가졌다. 관리비는 월 13만 원~15만 원 정도 나가고, 주차비는 월 5만 원이란다. 그렇다면 대략 월 110만 원 정도는 나가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월 110만 원이라... 관리비를 포함하여 월 85만 원 이하로 예산을 잡은 나로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금액이다. 1년에 1320만 원이 월세로 빠져나가는 셈인데, 이 돈이며 아이폰을 10대 살 수 있다.  


"음.. 솔직히 아까 처음 방문한 방은 너무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네요."

"아, 그럼요. 생각해보시고 연락 주세요."

"혹시... 집주인분께 보증금을 높이고 월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협의가 가능할까요?" 


내 질문을 듣자, 부동산 사장님이 알 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대답했다. 


"내 한 번 말을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워낙 인기가 많은 지역이라서… 어쨌든 빨리 연락을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잘 알겠다는 말과 함께 부동산을 나섰다. 인기가 많다고? 월세 110만 원짜리 오피스텔인데?

이야, 서울에 잘 사는 직장인들 정말 많구나. 그래도 아까 그 집은 10만 원만 깎아주면 단숨에 계약할 텐데...


헛된 기대와 함께 나는 발걸음을 다음 목적지인 충정로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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