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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 스탁 Nov 09. 2023

이런 '루머'라면 사랑하지!

가을 남자에 이어 가을 여자 가수의 최애곡


루머??


이름이 이상해서 추천곡으로 떠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 후회했다, 내 취향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추천 알고리즘을 믿었어야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1970년대를 장악했던 남매 그룹 '카펜터스(Carpenters)'의 (고) 카렌 카펜터(1950 ~ 1983)가 부활한 것 같았고, 레트로한 음색은 마치 어린 시절 우유에 찍어 먹던 카스텔라처럼 포근하고 달달했다.


카펜터스 남매 (카렌 카펜터 좌, 리처드 카펜터 우)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데뷔 앨범을 듣고 카펜터스의 멤버이자 오빠인 리처드 카펜터(Ricard Carpenter)가 "데뷔를 축하한다. 당신의 노래는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진정한 음악이다."는 감동 어린 메시지를 보낸 일화를 읽고 '내 말이!' 라며 극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타임리스한 목소리, 루머  ⓒ thequietus By. Tony Stock


루머(RUMER / 본명. 사라 조이스, Sarah Joyce)는 영국인 가정의 딸이었지만 출생지는 특이하게도 파키스탄이다. 아버지는 세계적인 댐건설사의 수석 엔지니어로 수년간 해외파견을 해야 했던 터라 아예 가족을 데리고 이주를 한 것이었다. 거기서 태어난 그녀는 여덟 자녀 중 일곱째.. 헉..  



가혹한 출생의 비밀


그런데 자식을 여덟이나 낳은 금슬 좋아 보이는 이 부부는 영국으로 돌아온 뒤 이혼을 한다.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며 학교를 그만두고 드라마 공부와 밴드 활동을 하는 등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다. 그녀가 22살 되던 해이자 인디밴드 활동을 하던 2001년, 암을 앓고 있던 엄마로부터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을 듣는데, 바로 자신의 친부가 따로 있다는 것. 파키스탄에서 살던 집에 고용된 요리사와 엄마가 바람을 피웠고, 그가 진짜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엄마의 권유에 따라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친부를 찾았지만 그녀가 도착하기 3개월 전, 의문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결국 2003년 사망하는데, 그녀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한다. 파키스탄이라는 이국의 땅에서 살았던 경험, 어린 시절 오빠가 사준 기타를 독학하며 음악에 눈 떴던 일, 그리고 가슴 아픈 출생의 비밀.. 들이 루머의 음악 속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루머 데뷔 앨범 <Seasons of My Soul (2010)>


아픔을 따뜻함으로


그러나 결코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며, 성찰적이고, 위로를 주는 노래로 그녀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풍요롭고 아름다운 메시지를 준다. 10여 년의 긴 무명생활 끝에 발매한 데뷔 앨범 <Seasons of My Soul>은 판매량 200만 장을 넘겨 플래티넘(Platinum)을 기록했으며, 지금까지도 영국차트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고, 수많은 세계적 레전드 아티스트들의 초대를 받고 협연했다.


루머는 평상시에는 결코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다. 녹음실에선 스태프와 구분이 안 갈 정도라 한다. 그 소박함에 비해 그녀의 목소리는 차트순위나 판매량 따위로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다. 아래 소개된 노래들을 한 번 들어 보시면 알게 된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나의 시간을 맡기고, 일을 하든, 운전을 하든, 독서를 하든.. 곁에서 어깨를 토닥여주는 듯한 목소리에 위로받고 친구 삼으면 된다는 것을.


가을이 가기 전에 소개한 남자 그레고리 포터에 이어, 이 계절에 소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잠을 설친 그녀의 노래, 같이 들어 보시렵니까?


예명 '루머(RUMER)'는 그녀에게 큰 영감을 준 영국 작가 루머 고든(Rumer Godden, 1907 ~ 1998)의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포근하고 감미로운 시간 여행자 Rumer의 노래들


Slow - Rumer(2010)

Slow(2010)

데뷔앨범의 대표곡으로 그녀를 플래티넘 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정말 카펜터스의 인공지능 목소리 버전일까 싶을 정도로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묵직하고 허스키 한 루머만의 음색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2000년대에 발표된 곡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레트로 하다. 좋은 음악은 스타일과 상관없이 사랑받는다.



P.F. Sloan - Rumer(2012)

P.F. Sloan(2012)

그녀는 데뷔음반의 큰 성공 이후 레전드들의 곡들을 커버한 앨범 <Boys Don't Cry>를  발표했다. 명곡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의 프로듀서로 1970년대를 풍미한 가수 배리 맥과이어(Barry Maquire)를 기린 지미 웹(Jimmy Webb)의 노래 'P.F. Sloan'을 그녀만의 스타일로 리메이크했다. 한없이 부드럽고 노래를 듣는다기 보다는 그녀와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든다.



Travelin' Boy - Rumer(2012)

Travelin' Boy(2012)

역시 같은 앨범에서 내가 가장 끌리는 노래이다. 원곡 가수는 'Punch'라는 70년대에 짧게 활동한 그룹이지만 이 곡만큼은 수많은 가수들의 리메이크 버전이 있다. 루머의 구슬프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부르는 이곡은 원곡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좋다.



Authur's Theme - Rumer(2014)

Authur's Theme(2014)

소년 같은 목소리를 가진 이지 리스닝 팝의 전설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her Cross)의 명곡이다. 셀 수 없는 리메이크가 있고 영화음악으로도 쓰였으며 나에게 있어 '낭만'하면 떠오르는 노래다. '달과 뉴욕사이에서 떠돌고 있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아 너무하다 가사가.



Dangerous - Rumer(2015)

Dangerous(2015)

2015년 발표한 'Into Colour'앨범에 실린 곡으로 루머의 곡 중 몇 안 되는 템포가 빠른 곡이다. 로맨스 드라마느낌의 뮤직 비디오도 볼만하며, 넘실대는 파도를 매끄럽게 넘어가듯 그녀의 바이브레이션은 감미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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