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포근한 저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만만하게 봤다.. 최근에 맡은 매장 리뉴얼 프로젝트를 말이다. 대충 했다거나, 리스크를 과소 평가했다는 게 아니다. 그냥 일이 많다. 난, "내가 마, 글도 쓰고 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토니플리] 매거진을 만들고 거의 2주가 넘게.. 음악 감상은커녕 일 끝나면 씻고... 일을 했다. 디자인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아직 할 일이 태산이지만, 기어이 오늘은 매장 사장님을 따라 실내 클라이밍 체험을 하고 아려오는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이러다 가을이 다 가버릴 거 같아서다. 가을이 가기 전에 이 남자를 소개하지 않는다면, 어찌 음악 매거진을 쓴다 하겠는가.
호빵맨.. 아니 소년처럼 순수한 외모와 독특한 모자패션.. 묵직하지만 한 없이 부드러운 저음.. 독보적 보컬의 그레고리 포터는 존재가 장르' 그 자체다. 아마도 21세기 가장 성공한 재즈 보컬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원래 미식축구 선수였으나 부상을 당해 그만두어야 했고, 어두운 시간들을 어머니의 독려로 극복할 수 있었다.
Sing, baby, sing!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노래를 권유했던 어머니는 그가 21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마저 "노래해, 아가, 노래를(Sing, baby, sing!)"였다. 어머니의 뜻을 따라 그는 요리사로 일하면서도 가스펠에서 소울뮤직, 재즈, 뮤지컬 등을 다양하게 경험하며 꾸준히 노력했다. 하지만 38세가 되고서야 겨우 데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기만성이 아니라 대기만성성성이었다. 2010년 데뷔앨범 <Water>는 순식간에 그를 그래미상 최우수 재즈 보컬 후보자로 등극시켰고, 유명 재즈 레이블 '블루 노트 레코드'로 이적한 후 발매한 앨범으로 무려 두 개의 그래미상 트로피를 거머쥔다.
그의 따뜻하고 묵직한 목소리는 전설의 재즈 가수 냇킹콜과 닮았다. 그레고리 포터는 생애동안 겨우 며칠간 함께한 아버지의 부재를 냇킹콜의 음악으로 메꾸었다고 고백한다. 한 인터뷰에서 '넷킹콜은 나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렇다 결핍과 상실이 꼭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 본능에 집착하지 않는 다면 우리의 영혼은 스스로를 치유하며 생존하며 나아가게 만든다.
그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들은 이름 앞에 언제나 '영혼을 울리는'이라는 말을 붙인다. 서로 수식어를 베끼는 게 아니라, 이 말이 딱 맞아서이다. 노래를 들어보면 여러분도 그리 말할 것이다.
'로라'로 추정되는 이미 마음이 돌아선 연인을 향한 곡이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곡이기도 하다. 여자 맴도 모르고 늦은 밤 집 근처에서 어슬렁 대는 조금은 찌질한 노래임에도 그가 부르면 진실되고 애절하며 심지어는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로라 나빠요.
코로나시기 그는 사랑하는 형을 잃는다. 형은 대학시절 그의 첫 노래를 녹음했으며, 그의 삶 동안 늘 함께 했던 피붙이이자 동료이자 친구였다. 이 노래를 만들 당시, 그레고리 포터는 실연의 상처에 힘들어했는데 함께 다리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형은 '인마, 이제 그만 그녀는 잊어버려'라고 말해 주었다고 한다. 이 노래는 그날 따뜻했던 형의 위로에 관한 노래다.
2017년 폴라뮤직프라이즈(Plar Music Prize)에서의 라이브는 실로 엄청나다. 원곡자 스팅 앞에서 여유롭다 못해 자애로운 표정으로 소울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 무대 위 가수라기보다, 성스러운 의식을 이끄는 성직자 같은 모습이다. 노래가 끝나고 마침내 박수를 치는 스팅의 눈시울엔 눈물이 맺힌다. 내 눈에도...
사랑하는 그레고리 포터의 수많은 명곡 중 3곡을 뽑는 건 어렵다 못해 고통스럽다. 곡들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며 귀에 대고 고문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