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_02. 손끝에서 스크린으로

산업화에서 정보화까지의 전환

by 토니샘
디자인은 산업화 시대의 미학에서 디지털 구조의 설계로 이동했다.
‘보이는 것’을 만드는 시대에서 ‘경험을 설계하는’ 시대로 전환되었다.
정보화는 디자인의 질문을 바꾸었다: “어떻게 보일까?”에서 “어떻게 작동할까?”로.


1987년, 실기실의 풍경

1987년 봄, 대학원 실기실의 책상 위에는 로트링 펜과 컴퍼스, 삼각자와 자, 그리고 트레이싱 페이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포스터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고, 레터링을 다듬고, 색 면을 칠하는 과정은 종종 며칠이 걸렸다. 손이 떨리면 선이 흔들렸고, 잉크가 번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디자인은 말 그대로 손끝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유일한 디자인 잡지였던 『월간 디자인』지에는 선배들의 작품이 종종 실리곤 했다. 정교한 타이포그래피, 균형 잡힌 레이아웃, 절제된 색채. 그 모든 것이 놀라운 완성도를 자랑했다. 나는 그 작품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이 분야에서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선배들은 이미 너무나 뛰어났고, 나는 그저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때까지 디자인은 명확했다.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고, 시각적 조화를 이루는 것. ‘시각전달 디자인’이라 불렸지만, 정작 얼마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는가를 따지지는 않았다. 아름다운 시각적 균형이 곧 훌륭한 전달로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실제로도 전달 빼고 '시각 디자인'으로만 불렸었다.


그렇다. 우리가 배운 것은 대량생산 시대의 미학이었다. 제품의 형태는 생산성과 내구성, 그리고 심미성의 균형 위에서 결정되었고, 디자이너는 그 균형점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디자인은 산업체제의 한 부분이었고, 우리는 그 체제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변화의 조짐

1989년 입대하여 군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업무용으로 접했다. 사단 행정실에서 근무했던 나는 비록 간단한 문서를 만드는 용도였지만 PC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당시 타자기를 대신해서 행정실마다 한 대씩 배치되어 있었다.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DOS를 부팅하는 컴퓨터였다. 매킨토시와는 운영체제 자체가 달랐는데, 그때는 운영체제가 다르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저 ‘새로운 기계’, ‘고급 가전제품’ 정도로 여겨졌다.


검은 화면에 흰 커서가 깜빡이는 그 낯선 풍경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무엇을 입력해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잘 다뤄야 하는 ‘도구’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987년 초, 형편이 좋았던 대학 동기 집에서 매킨토시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설렘과는 전혀 달랐다. 그때의 매킨토시는 세련된 창과 아이콘으로 미래를 보여줬지만, 부대의 PC는 그저 철저히 기능적인 산업 기계였다.

컴퓨터는 아직 우리의 삶과 일에 본질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DTP의 등장, 낯선 낙관

1992년 제대 후 서울로 돌아왔을 때, 디자인 업계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당시 충무로와 을지로는 제판소와 인쇄소 골목이었다. 어느새 매킨토시 컴퓨터를 들여놓은 사무실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었다.


인쇄 공정에 필요한 여러 전문 업체들이 밸류체인을 형성하며 골목을 이루고 있었다. 제판실을 중심으로 매킨토시 컴퓨터를 들여놓은 사무실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DTP(Desktop Publishing)라는 낯선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오갔다. 사진식자 오퍼레이터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디자인실 막내 디자이너들의 손에는 마우스가 쥐어졌다. 일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었다.


"이제 컴퓨터로 다 할 수 있어. 훨씬 빠르고 정확하지." 선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더 빠르고 정확했다. 그러나 그것은 '작업 효율을 높여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여전히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은 같았다. 로트링 펜 대신 마우스를 쥔 것뿐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포스터에서 조영제 교수의 횃불 그래픽이 컴퓨터로 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감탄했다. "이제 컴퓨터로 이런 것까지 할 수 있구나!"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첨단 제작 기법'의 차원이었다. 디자인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인식은 아직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도구를 얻었지만,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


변화는 이미 눈앞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아직 몰랐다.


정보의 바다가 열리다

1995년, 한국에서 상용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정보의 바다'라는 구호가 사회 전반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모뎀을 연결하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이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세상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나만의 영역을 발견했다. 홈페이지 디자인. 아직은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분야였다. 선배들이 쌓아놓은 완벽한 작품들도 여기서는 소용이 없었다. 인쇄물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다. 화면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사용자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였으며, 정보는 끊임없이 바뀌었다.


첫 번째 홈페이지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클라이언트는 "멋진 홈페이지를 만들어달라"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멋'이 아니었다. 사용자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페이지 로딩이 조금만 길어져도 떠나버렸다. 당시 업계에는 한 페이지 용량은 50kb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 정도의 용량도 전송에 시간이 걸리는 수준이었다. 메뉴 구조가 조금만 복잡해도 길을 잃었고, 정보가 흩어져 있으면 찾지 못했다. 아름다운 그래픽보다 명확한 구조가, 화려한 효과보다 빠른 속도가 훨씬 중요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디자인은 더 이상 ‘보이는 것’을 다루는 일이 아니었다. 이제 디자인은 정보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사용자를 어떻게 안내하며, 경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물리적 산출물에서 디지털 경험으로, 형태의 미학에서 상호작용의 설계로.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로

화면은 손안으로 들어왔고, 경험은 전략이 되었다.

이제 데이터와 AI가 만드는 동적 디자인의 시대다.



[독자들께 드리는 글]

내용이 너무 길어서 한번에 읽기 부담스럽다는 분들이 조언해 주셔서 내용을 2개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아 오셔서 혹시라고 혼동스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더 편하고 의미 있는 내용으로 진화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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