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팔아서 달걀을 사먹는 꿈

「코모레비(木漏れ日)」 3.

by 하얀


살아남은 보람도 없이 올해 7월은 정말 힘들었다. 죽을 뻔했다.


꿈이 많은 건 때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나를 참 불안하게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것보다 쓰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고 소리치고 다니는 게 특기였지만, 책은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책을 읽어야겠다고 의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글을 잘 쓰고 어휘가 풍부한 친구들이 무지막지하게 많아서 교내 글쓰기 상을 계속해서 놓치고 있었다. 쓰기만 해서는 길게 쓸 수는 있지만 잘 쓸 수는 없구나. 나 책 읽을래! 책 사줘! 라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엄마는 무척이나 놀라워하며, 책이라면 몇 권이든 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제발 그만 좀 사라고 하지만.


책을 읽겠다고 선언한 내게 독서광이던 이모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슬픈 예감’을 추천하고야 만다. 그것이 지금 내 생활에 이르기까지의 7~8년을 계속해서 불 지펴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책을 읽어서 발현될 수 있는 초능력들을 좋아했다. 교수님께 정중한 사과 메일을 보내는 법이나 나조차 언어화할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정의하는 법, 더 나아가서는 누구를 잘 사랑하고 잘 미워하는 법, 어쩌면 그로 인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까지(적중률이 높지는 않다)! 문학은 마법 포션 같은 것이었다. 맛은 없어도 마시면 어제와는 다른 초능력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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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익힌 초능력 중 가장 대단했던 것은 아무래도 일본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점점 요시모토 바나나를 읽으면 읽을수록 왜 한국 문학이랑 이렇게까지 다른 건지에 대한 의문으로 발전했고, 일본으로 가서 왜 그런지 배워야겠다는 의지까지 쭉쭉 뻗어나갔다.


당시에 나는 문예 창작 수업에서 단편 소설을 합평 받고 있었다. 그 소설에는 화자의 죽은 친구가 부패한 고래 사체가 되어 하루 종일 화자를 못살게 구는 장면이 많았는데 당시 나는 그것을 꿈과 현실로 구분하여 전개했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소설이라는 것이 이미 허구이기 때문에 현실로 써도 무관한 것을 꼭 굳이 꿈이라는 허구로 재등장시킬 필요가 없다, 그러면 허구 속의 허구가 되어 불필요하게 답답해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피드백은 그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님들께도 공통으로 받았다. 나는 꿈으로 썼던 장면을 모두 현실 속의 비현실적인 전개로 바꾸었다.


흠, 소설에 꿈 이야기는 되도록 쓰지 않는 게 좋은 거군, 하고 단순히 생각하던 나날에 요시모토 바나나가 나타나서는 심심할 차에 자신의 소설에 ‘꿈을 꿨다’며 꿈 이야기를 와장창 써냈다. 지금이야 그녀를 연구하고 있기에 그 환상적이고 운명적인 전개와 단순한 문장 구조, 리얼리즘에 기반하지 않는 꿈 이야기의 근간을 조금은 안다. 순정 만화와의 접목이나 스피릿츄얼한 것에 대한 그녀 자신의 관심, 이유 없는 고독과 상실에 빠져있던 거품 경제 후의 젊은이들 등등. 그러나 그때는 반발심 그 자체였다.


뭐야! 요시모토 바나나는 꿈 이야기 잘만 쓰잖아! 나도 쓰고 싶어!


여전히 소설 속의 꿈에 대한 정확한 정답은 모른다. 어쩌면 정확한 정답이 없어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한국 단편 소설에도 꿈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으니, 예전과는 인식이 그새 변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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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에, 또는 일본 문학사에 이바지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는 없었고 더 엄청난 초능력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만 있었다. 그 마음이 나를 대학원에 보냈다. 대학원에 가면 자연히 더 많이 읽게 되니까.


나는 초능력을 주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어떨 때는 그림을 내킬 때까지 그리고 그걸 다 걸어두고 싶었고, 어떨 때는 아는 사람만 아는 유튜버가 되고 싶었고, 어떨 때는 복권에 당첨되어 일본 영주권을 받아 놀고먹고만 싶었다. 가장 바란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사주기로 마음까지 먹지 않아도 누구한테든 밥 한 끼 정도 사줄 수 있는 여유, 친분이 없다시피 한 사람에게까지 생일 선물을 보내고 싶어지는 풍족한 마음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꿈들은 하나같이 먹고 사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리고 대학원도 사실 먹고 사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꿈을 이뤄도, 대학원을 열심히 다녀도 먹고 살지는 못하다니! 나는 항상 꿈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는데, 이제는 석사를 졸업하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순문학’이 순수한 문학, 문학을 위한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나는 태초부터 ‘순문학’을 하기엔 글러 먹은 사람이다. 나는 뭘 하든 그걸로 먹고 살고 싶었다. 다자이 오사무도 작품을 판 돈으로 술을 사 마셨다고 한다. 나는 술이 아니라 화장지나 달걀, 집세 등에 쓰겠지만 아무튼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 근데 문제는 내 글이 집세만큼의 가치를 가지는 게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7월은 그래서 불안이가 되어 있었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지금 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일단 연구 발표가 두 개 있었고 기말 리포트가 다섯, 여섯 개 있었다. 교토(라 쓰고 거의 나라현에 있는)의 국립 국회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인쇄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원하는 만큼 읽었는데 초능력은 무슨, 나의 이해력 부족과 빈약한 창의력만 깨닫는 기분이었다. 연구는 남들도 다 아는 것을 새로운 것이랍시고 쓰고 있는 기분이었고 심지어는 가설로 세웠던 게 실제 조사해 보니 완전히 틀리기도 했었다! 마지막쯤에는 참고문헌과 인용을 쓰면서 평소 정리 습관이 없던 나 자신을 원망했다. 인용을 쓰는 것보다 인용을 써야 하는 논문을 찾는 것이 더 오래 걸렸다. 집에 책꽂이가 없어서 거의 모든 논문이나 책을 벽장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7월은 하루 종일 그 벽장에 들어가 작년부터 읽었던 자료를 뒤지고 또 뒤지는 것의 반복이었다. 분명 노트에는 이 논문을 2024년 9월에 읽었다고 써놨는데 왜 나한테 없냐고!! 울면서 또 왕복 3,000엔을 내고 교토의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냥 나는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누군가 보증을 서주고 참고문헌 없이도 내가 하는 말을 믿어줬으면 싶은 심정이었다. 제가 정말 이런 내용을 어딘가에서 봤다니까요. 제 눈을 똑바로 봐주십시오. 리얼 트루, 이 논문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있습니다. 없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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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로 이사 오고 나서 원래 친하던 친구들과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한국인 유학생이 주변에 많았던지라 곧잘 동질감을 가지고 친해지고는 했는데 대학원은 어른의 세계였다!


한국인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우린 외국인 노동자가 되는 것이네, 과제가 너무 많네, 이 동기가 저랬고 저 교수가 이랬고, 수업이 어렵고, 일본어 모르겠고, 미래가 없고, 같은 무가치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만큼 재미있고 알찬 순간이 없었건만. 이제는 그렇게 어리광 피울 수 없었다. 생산적이어야 했다.


생산이라는 게 세상에서 제일 복잡한 것 같았다. 모든 어른이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회에 필요한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일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니. 우리 엄마, 아빠는 심지어 사람을 두 명이나(나랑 오빠) 만들어 냈다. 어마어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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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마음은 어느 선생님의 한 마디로 편해졌다.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지 보다, 지금 하고 있는 걸 미래에 어떻게 쓸 지를 고민하는 게 더 좋다는 말.


그 덕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심은 덜 하게 되었다. 먹고 사는 거랑 관련도 없는데 지금의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 말이다. 원하는 미래를 좇는 데에 지금 하는 일의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불안보다는 지금 하는 일을 똑바로 파악하여 어떻게든 원하는 미래로 잇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중구난방인 인생을 어떻게든 짜맞추어 한 갈래의 지원동기서를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드디어 새로운 꿈(이라기보단 갖고 싶은 물건)을 찾았다.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빨리 아무 알바든 회사든 지원해서 돈을 모으고 싶은 심정이다. 잘 되든 못 되든 해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많은 것을 차오르게 해줄 꿈. 심지어 이룰(살) 가능성도 아주 희박하진 않은 꿈. 논문을 쓰든, 돈을 벌든, 나의 모든 노력이 그걸 위해서였다고 스스로를 위로 할 수 있게 해줄 꿈!


바로 고민가(古民家)를 사서 게스트 하우스를 차리는 것이다!


앗싸-! 좋아, 좋아……. 마지막 글은 아마 ‘이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로 시작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