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면지 Sep 03. 2024

왼손잡이

왼손잡이








얘짠의 첫 학부모 참여수업 날이었다.
수학 덧셈식을 쓰는 시간이었는데 멀찌감치 서 바라보니 얘짠의 행동이 뭔가 이상했다.
얘짠이 덧셈식을 완성하는 데는 학급의 다른 친구들보다 곱절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글씨를 쓰는 속도가 많이 느린 편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가만히 관찰을 해보니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얘짠은 왼손 오른손을 계속 바꿔가며 글씨를 쓰고 있던 것이었고 ‘대체 왜일까..?’ 라는 질문의 답을 도출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차 싶었던 순간이었다.

왼손잡이인 얘짠에게 난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써야 한다고 연습을 시켜왔었다. 한글을 쓰는 데는 왼손이 불편할 것이라는 독단적인 추측과 결론으로 줄곧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연습을 시켰는데 얘짠은 밥 먹을 때, 놀이할 때, 그림을 그릴 때.. 모든 일상에서 당연하게 왼손을 쓰지만 글씨를 써야 할 때면 불편한 오른손으로 삐뚤삐뚤 글씨를 써 내려가곤 했다.
그런 얘짠에게 수학 기호는 그림이며 숫자는 글씨였고 결국 기호는 왼손, 숫자는 오른손으로 써야 한다고 스스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별의별  감정이 다 들었다. 사랑스러움, 귀여움, 애틋함, 기특함.. 또 그만큼의 미안함과 안쓰러움.

집에 돌아오는데 머릿속이 온통 양손을 번갈아가며 덧셈식을 쓰던 얘짠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내가 완벽히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 나는 나름 올바른 해법을 제시했고 그 과정일 뿐이니 괜찮을 거라는 생각.
뭐 별것도 아닌 일에 혼자 진지해지지 말고 큰 의미를 두지 말자는 생각.
머리가 복잡해졌다.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내가 완벽히 틀린 것이 아니기만 바랄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난 왼손으로 펜을 잡았다.
평소 쓰지 않는 왼손으로 펜을 꽉 움켜잡고 흰 종이에 낙서를 시작했다.
다시 한번 얘짠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전 08화 반박 불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