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먹고공부하는이유

"이런 거 가르쳐줄 어른 하나 없었니?"

by TOONY

'나의 아저씨' 이선균이 읊었던 이 한마디가 왜 그렇게 내 마음을 후벼 팠을까.

나는 여전히 그 말에 심장이 파르르 떨린다.

그랬다, 없었다.

내 주변엔 이런 거 가르쳐 주는 어른이.




아이는, 아니 사람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삶의 지혜라던가 꼼수라던가 지름길이던가 융통성 같은 걸 자연스럽게 배워나간다.

아니, 굳이 그렇게 거창한 단어는 차치하고라도. 하다못해 귀 뒤를 씻는 법이라던가, 자기 전에 양치를 꼭 하는 습관이라던가, 생리대를 쓸리지 않게 자주 갈아줘야 한다는 사실, 몸이 아플 때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손가락이 베였을 때나 상처가 났을 때 반창고를 붙여야 덜 아프다는 것 등등 스스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방법들.

혹은 길을 잃어버렸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 친구와 마음이 안 맞을 때 서로 조율하는 방법이라던가, 누군가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힐 때 대처하는 능력, 사람들 간의 적절한 거리와 경계선을 지키는 법, 친하지 않은 남자가 술에 취해 내 몸을 더듬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거절하는 방식 같은 것들, 내가 돈이 없을 때 타인에게 굳이 빚을 내서라도 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마음이 우울하거나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방법 같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꼭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또 어떤가.

너무 당연하게 알아야 하지만 어떤 교과서나 정규과목에서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수많은 질문들.


우리는 보통 이런 것들을 경험적으로 배워나간다. 부모님이 어떻게 감정을 처리하는지, 사이를 조율하는지, 어떻게 대화하는지 관찰하면서, 친구들이 어떻게 우정을 쌓아가는지, 서운함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사랑받고 인정받는지, 어떤 행동이 타인을 화나게 하는지, 어떤 말이 친구에게 상처를 주는지, 누군가 좋아할 때 어떻게 표현하고, 싫은 사람은 어떻게 멀어지는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주로 어떤 것들인지,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뭐가 있는지 수도 없이 많은 상황을 처리해 나가며 우리는 경험적 지식과 대처법을 획득한다.

사실 아이들만 배우는 건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은퇴를 하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도 다들 마찬가지다. 살면서 해결이 필요한 문제들은 그때그때 생애주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생겨나 삶을 덮치고 우리는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하는데 보통은 주위 사람들에게서 힌트를 얻고 도움을 받아가며 나만의 고유한 생활방식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혼자서 헤쳐 나오는 사람을 나는 결코 보지 못했다. 누구라도 타인의 가르침을 받는다. 다른 말로 하면, 어른들에게 삶을 배운다는 것은 나보다 조금 먼저 생을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동일한 경험을 하거나 학습을 한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자. 1차적으로는 양육자, 나를 낳거나 키워주거나 보호해 주는 역할을 맡은 이에게서 배우고, 2차적으론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3차적으로는 할머니나 삼촌, 고모 같은 가까운 친척들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 가끔 운이 좋은 누군가는 옆집아저씨라던가, 친구의 부모님, 사촌언니나 동네슈퍼 사장님, 학교 앞 분식집의 이모님이나, 학교 선배 등 나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던 타인에게 배움을 얻기도 하더라.

부러웠다.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런 배움이 거의 없었다. 물론 가정을 벗어나 학교 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관계적 스킬 같은 것들을 배웠다. 좋은 선생님과 친구를 만난 적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도움으로도 가정환경의 힘은 벗어날 수 없다. 너무 약한 존재였던 아이는 수없이 이용당하고 무시당하고 억압당하고 유기당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살아가고, 관계를 맺고, 나를 돌보는 일이 익숙지 않았다.

하고 또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유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배우기를 선택했다.


지금 내가 새롭게 삶을 배우는 방식은 이렇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예민하고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 인생의 선배들(수세기 전의 사람들도 포함하여)과 깊고 충만한 대화를 하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하의 무의식 세계까지 분석하고 파헤치는 것. 그렇게 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해가 되는 것,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 해야 하는 일과 안 해도 되는 일들을 구분해 내는 것이다. 나를 잘 알고 나면 내가 있어야 할 공간과 상황을 쉽게 구별해 내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다가설지 멀어질지를 결정하는 일이 빠르고 수월해진다. 물론 그게 다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는 않아 중간중간 좌절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일의 결과에 대해 후회하거나 억울해지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그렇게 아낀 나의 에너지와 열정과 시간을 나에게 도움 되는 일과 사람들에게 투자하면 삶의 충실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운동과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심리학을 공부하는 이들을 독심술사 혹은 점술가처럼 어림짐작에 능한 사람처럼 치부하기도 하고, '그래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맞혀 보세요'를 시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장 모르는 게 있다.

사실 나에게 심리학은 철저하게 나를 위한 학문이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죽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타인을 보는 안목과 아량이 조금은 넓어진다. 심지어는 이렇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실수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나 나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쳤던 인간들의 작동원리를 알고 나면 분노와 경멸의 마음이 수그러들기도 한다. 그런 작업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그들에게 붙잡혀있던 마음의 폭풍을 멈추고 평정심을 찾기 쉽게 해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를 이해하는 마음'은 또 어떠한가.

'지금 내 마음이 어떠한지 알아맞혀 보세요'는 사실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에야 알아가고 있다는 게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어른들에게 나를 정확히 알고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옛 현인들이 이런 능력을 제3의 눈 차크라인 아즈나로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싶은 게 요새 나에겐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건 마치 2차원의 세계에서 높이가 있는 3차원의 세계로 진입한 것처럼 다른 모습의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얻은 가장 좋은 능력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거다.

타인을 배려할 정도로 마음과 에너지에서 여유를 가지는, 도움을 주는 방법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표현방식에 대한 지식까지 갖춘, 힘겹게 쌓아 올린 삶의 경험과 주변인들의 감정적 지지에 기반한 진짜 어른 말이다. 내가 가장 필요로 했던 시절에 결핍되었던 무언가를 내가 스스로 장착할 수 있다는 건 살면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능력 중 가장 큰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네가 살면서 가질 수 있는 초능력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항상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고 얘기했었지만, 지금의 나는 내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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