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 내현성 나르시시즘
아빠는 자기애적인 성격이다.
글쎄다, 굳이 라벨을 붙여보자면 말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까지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나에게 아빠라는 사람은 비정상적인 어떤 것과 정상범위 스펙트럼의 경계 정도에 걸쳐있는 것 같았다.
아빠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기까지 사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에 대해 궁금해하고 분석하고 풀어내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의 모든 것이 나의 가장 뿌리 깊은 미해결과제였고, 그와 동시에 가장 외면하고 싶은 나의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NPD)
: DSM-5 기준으로 다음 9가지 중 최소 5개 이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 진단됩니다
과도한 자존심과 과대자기상
끝없는 성공/권력/아름다움에 대한 환상
자신이 특별하며 오직 특별한 사람들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과도한 칭찬 요구
타인을 착취함 (타인을 수단으로 여김)
공감능력 결여
자주 타인을 시기하거나, 자신이 시기받는다고 믿음
오만하거나 거만한 태도
타인의 경계,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음
자세히 들여다보니 6개 정도는 얼추 해당되는 것도 같다. 진짜 성격장애가 맞는가 싶지만, 내가 주치의도 아닌데 정신장애로 낙인찍을 자격은 없으니까 그냥 그렇다 치자.
내가 꽤나 삶의 경험을 해본 이후의 어른 입장에서 봤을 때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의 어떤 부분들을 나의 깊은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어 '언어'라는 가시적인 결과물로 예쁘고 깔끔하게 정리해 내는 것은 한마디로 마음 한구석에 평생 카페트로 덮어놓았던 쓰레기와 오물들을 하나하나 들어내어 쓰레기 봉투에 깔끔하게 정리해 내다 버리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예쁜 쓰레기들을 밖에 내어 놓는다.
내가 바라본 아빠의 그림자.
1. 아무리 근거 없는 비논리적인 말이라도 본인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내지 않으면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옳지 않은 것을 강요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감정이 폭발한다. 누가 들어도 비논리적인 이야기, 예를 들어 집에서 동물을 키우면 그 털이 폐에 쌓여서 나중에 심장까지 들어간다는 말 같은 것들을 심지어 의사인 내 앞에서 당당하게 주장하곤 한다. 그래도 내가 가오가 있지 과학적으로 반박은 해야겠지만, 그 뒷감당은 또 나의 몫이지. 순간 쏟아져내리는 분노의 폭포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2. 주변의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대해주면서 그 사람의 지위와 권력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는 재주가 있다. 나는 아빠 주변에 아주 잘 나가는 정치인과 의사, 판검사, 기업인들을 약 100명 정도쯤은 알고 있지만, 실상 아빠가 그만큼 잘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쓸데없는 전화는 하루 종일 왜 그리 해대시는지 반경 10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우리 아빠의 신상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될 것 같아 자주 쪽이 팔린다.
3. 타인의 자율성을 목격할 때 자신을 부정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타인에게 시혜를 내릴 때의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노, 모욕감, 우월감, 공격성, 자기 방어, 취약감, 수치심에 기반한 그의 자기애적 방어는 타인을 억압하거나 조종하려는 태도로 굳어졌다. 내가 그를 취약성 자기애, 내현 나르시시스트로 의심했던 것도 그닥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4. 자식들에게 조건부 사랑을 내비치는 것은 특히나 나를 병들게 만들었던 일이다. 아빠는 평소에 칭찬이나 애정표현을 잘하지 않았고, 뭔가를 '잘'했을 때라야만 조심스럽게 칭찬 비스무리한 말을 건네주었다. 마치 할머니가 손녀 주려고 속곳 깊은 곳에 감춰둔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을 꺼내어 주듯 아끼고 아끼다가 나오는 칭찬. 거기에 항상 굶주려 있었던 나는 사랑받기 위해 늘 그가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조건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나마 사춘기 반항이라도 할 수 있었던 오빠와 언니랑은 다르게 어릴 때부터 세뇌 수준으로 각인되었던 '착한 아이' 컴플렉스는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완벽주의, 자기 억압, 범불안장애에 이어 호구와트를 완성시킨 것은 9할이 아빠의 역할이다.
타인을 장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가 선택했던 길이 의존성이 강하거나 심한 결핍이 있는 사람들에게 시혜를 제공하고 나서 되돌려받는 관심과 존경, 보답이었다면, 가족들을 장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강요와 조건부 사랑을 이용한 정서적 폭력을 선택했다. 친척들과 친구들을 포함해 우리 가족에 대해 알고있는 어느 누구도 아빠가 가정 내에서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위선적인 행동의 양면성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때마다 소위 '현타'를 느꼈다.
그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순간은 아마도 그가 쥔 권위의 힘을 이용해 가족들이 그의 방식대로 행동하게 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였을 거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건강이 어떤지,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학교를 잘 다니는지, 장래 희망이 뭔지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아빠는 내가 생전 처음 전교1등이라는 성적표를 가져다 주었을 때 그나마 '할 수 있으면서 그동안 안했네, 다음에도 이렇게 잘 해라'는 칭찬인지 주문인지 모를 말을 남겼다. 아빠의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학교에서부터 종일 들떠있었던 나는 어찌나 실망했던지 여전히 그 날의 좌절이 생생하게 마음 한켠에 깔려있다. 며칠인가 지나서 아빠가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닌 다는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던 나는 그 날 강렬하게 깨우쳤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만한 업적을 이루지 않으면 결코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거짓된 진실을 말이다. 이게 나의 왜곡된 인지도식의 탄생 배경이다.
이래저래 정리하다 보니, 그를 괴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내가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그나마 '눈치'라는 걸 보기도 했고 '사과'라는 걸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기주장을 굽히지는 않지만 자신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거나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는 그나마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수그러드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못나고 약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강약약강이긴 하지만 가족들을 제외한 타인들에게는 좋은 사람의 가면을 잘 쓰고 있어서 제법 파탄적인 인생살이는 아니었던 거다. 자기 비하나 자책도 종종 하는 것 같고.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헷갈리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아빠는 '다 내가 잘못 살아서 그런가 보다' 라며 한숨을 내쉬곤 했고, 아주 중대한 잘못을 했을 때는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나를 베란다 바닥에 두고 온몸에 피멍이 들 때까지 걸레자루로 때렸던 날이라거나 엄마가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고 유리컵을 던져 엄마 발에 피가 났던 날이라거나. 그러나 시속 60km의 속도로 지나가다가 봐도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정도로 잘못했다고 느껴지는 행동을 했을 경우를 제외하면, 정식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법이 없긴 했다.
그런 아빠를 내가 끝까지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날 그가 불쌍하고 하찮아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열심히 내면의 어린아이를 성장시켜 그보다 키가 커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단지 미성숙하고 어리석고 자기 인생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고통받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 나이가 되도록 부모를 원망만 하고 앉아있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더 이상 그를 미워하지 않지만, 전적으로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다. 나의 피해와 상처가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고, 그가 그때 진심으로 잘못을 빌고 반성했다면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현재 방식만 바뀌었지 타인을 깔아뭉개야만 세워지는 그의 습자지처럼 팔랑거리는 자기애는 여전히 그대로이며, 가끔씩 폭발하는 그 자기애성 방어의 향연도 진행 중이라서 가끔씩 마음 깊은 곳에 저장해 두었던 상처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이가 먹고 힘이 약해지고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을 때, 어쩌면 그는 후회하거나 변하려고 맘먹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관성은 그를 어찌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전략을 약간 틀었던 것 같다. 불쌍해 보이기로. 그는 자신에게 어떤 병이 있고 어디가 아픈지 늘어놓는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술을 마신다. (그는 대장암으로 항문을 제외한 전절제술을 받았다.) 나는 그런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대체 왜 자신을 돌보지 않는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지 궁금했다. 나도 모르게 간만에 효녀 코스프레를 시전해 보았지만, 돌려받은 건 수치심을 가려내기 위한 분노의 폭발과 자신에게 그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당위성 따위를 늘어놓는 변명뿐.
음 그렇군. 육체와 정신의 흐트러짐에 의해 강제적으로 유발된 그의 변화를 나는 왜 안타깝고 짠한 마음으로 보고 말았을까. 그래서 나는 그냥 그를 그대로 놓아두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나는 그를 돕지도 위로하지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상태로 놓아두려고 한다.
그는 그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산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대방에게는 어떤 도움이나 조언도 간섭과 비난으로 둔갑하고 만다는 사실을 나는 가끔 잊어버린다. 우리는 서로가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우리의 인생에서 함께 해야 하는 일이 있거나 접점이 생기면 그날의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나는, 내가 가족 내에서 기능할 수 있는 어떠한 역할이 있으며, 그가 나를 굶기지 않고 유기하지 않고 이만큼 잘 자랄 때까지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보호해 준 만큼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만큼만 그에게 보답하기로 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만큼만. 그게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이제 깨달았다.
그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그의 공격이나 비난을 받아 들고 뜨거운 감자처럼 어쩔 줄 몰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를 비난하거나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겠다. 그게 우리의 경계선을 지키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