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없는사람에대하여

눈치는 보지만 눈치가 없다는 것

by TOONY

'모든 사람은 눈치를 본다. 사람은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기본 전제 하에서 말이다.

( 단, 소시오패스나 자폐 스펙트럼을 제외한 일반적인 경우에 )

눈치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 자신을 포함한 사람의 감정 상태에 대해 무지하다. (감정적 무지상태)

2.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조망수용능력 부족)

3.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인식능력 자체가 없다. (공감능력제로)

4.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다. (사회성 부족)

5.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다. (자기중심성)

->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결론적으로는 눈치가 없다는 건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를 말한다. 양육자에게 충분히 공감받지 못했거나, 성격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충분히 맺어보지 못한 경우, 아니면 기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경우이다.

기질적이든 선천적이든 환경적인 영향이든지 간에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이기적이라는 개념과는 약간 다르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순간에 그 사람의 감각은 타인의 감정이나 의견에 안테나를 세우지 않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에 안테나를 세운다. '나'라는 존재에 온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에 타인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대화를 하다가 뭔가 잘 안 맞거나 삐그덕거리는 경우에 보통의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이 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가 기분이 나쁜지,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는지를 살피지만, 눈치 없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를 좋게 평가할지 나쁘게 평가할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 행동했을 때 상대방이 받을 상처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나를 나쁘게 평가하는 결괏값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경향성이 없지는 않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눈치 없음을 웃으며 넘기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씩은 임계점에 도달한다. 아무리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도 육체적으로 약해지거나 다른 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아파 물렁물렁해진 어느 날에는 예기치 못하게 상처를 받는다. 특히나 타인에게 유독 많이 공감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그들을 필연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 박탈감이나 피해의식이 생기기도 한다. 간혹 상대가 무심결에 선을 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아픈 말을 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언어를 내뱉곤 한다. 나는 그토록 고르고 골라 조심스럽게 토해내는 말들을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날카로운 무기처럼 뱉어낼 때마다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구토감이 든다.

그래서 나의 고민은 돌고 돌아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이르렀다.


"어떻게 대할까."

그게 요즘 들어 나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항상 눈치를 보고 상대와 잘 관계 맺고 싶은 의지가 있는데도 눈치가 없는 사람이 있다. 공감에 대한 학습이 안된 경우, 관계를 깊이 맺을 기회가 없었던 경우라면 천천히 조심스럽게 인내심을 가지고 알려주기도 한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대할 때 내가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말과 행동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 특히 오랫동안 함께 가야 하는 사람이거나 나이가 아직 어린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해서 힘든 관계들을 어찌어찌 굽이굽이 넘어왔다.

캐럴 길리건의 도덕성 발달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중심단게, 상호의존성단계를 거쳐 자아실현의 단계에 이른다. 눈치 없는 사람은 자기중심단계에 머물러 있다. 미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타인의 감정이나 의도를 가르쳐 주지 않고 훈육의 부재상태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특히나 더 심각하게 자기중심적이다. 때로는 주변에 타인의 감정을 읽고 반응하는 성인이나 롤모델이 부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다.

나는 스스로 변화했고 참 많이도 애쓰고 노력했다. 그래서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기도 안타깝기도 하고 도와주고 싶다. 나에게 그런 걸 가르쳐주고 친절하게 알려줄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심리학을 공부하고 타인에게 나누어 주는 행위는 나를 위해서 중요하다. 어쩌면 그게 나의 미해결과제일지도 모르겠다.


간혹 이런 노력이 허망하게 무너질 때도 있었다. 나이가 아주 많거나 이미 생활상이 굳어져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전혀 듣지 않는 사람들은 상대하는 건 너무 힘들다. 물론 일회성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은 피하고 도망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이런 경우라면 도망가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손발이 묶인 채로 간지럽힘을 당하는 상황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려나.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닌 일일 수 있는데, 나는 돌아버릴 것만 같은 그런 상황.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 이 화상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사실 가족들이라고 하더라도 생활반경을 다르게 만들거나 최대한 접점을 없애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긴 하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내 밥줄이 걸려있는 직장에서다. 항상 부딪히는 함께 일하는 직원은 회피가 불가능하다.


조언하거나 비난하지 않기? 안전한 관계 만들기? 비폭력 대화? 심리적 거리두기? 제3자를 이용하기? 신뢰형성? 간접적인 경험 유도? 감정 되돌려주기? 칭찬과 피드백 활용하기?

그렇다.

그동안 수많은 방법론이 있었다.

“그때 네가 그런 말을 했을 때, 그 친구가 좀 불편해하더라. 너는 어떻게 느꼈어?”

“네가 그 말을 왜 했는지 나도 이해해. 다만 듣는 입장에서 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더라고.”

"너를 비난하려는 말이 아니야. 그냥 내 느낌을 얘기하는 거야."

“오늘 네가 노력한 덕분에 분위기가 훨씬 좋았어.”

그냥 무작정 대화를 피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제3자(상사, 전문가, 존경하는 인물)의 말을 더 잘 듣는 경우도 있어 그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집단 활동과 피드백 시스템이 있는 워크숍 등을 기획해 보기도 했다.

방어기제며, 자존감이며, 자기 인식이며, 학습된 무기력이며,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 험난하고 길고 긴 여정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책임과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그 변화는 외부의 강요가 아닌 내부의 준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준비가 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응원해 주고 기다려 주는 일뿐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지 한동안 의문스러웠고, 내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공감을 바라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왔다. 하지만, 내가 인간관계에서 배려 있는 소통을 원한다는 욕구를 바라봤을 때 그 자체는 정당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

다만 상대가 그 기대에 미치지 않을 때, 기대와 현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관계의 경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사람과는 깊은 감정 교류보다 실용적 관계로 두는 게 더 건강하겠다.”라고 마음먹는 것, 그리고 그 경계를 잘 지켜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사람과의 사이에서 가져야 할 태도는 허용이 아니라 수용이다. 허용(enabling)을 한다는 건 문제 있는 행동을 무비판적으로 방치하거나, 그로 인해 나 스스로가 계속 상처받는 상태를 말한다. "그 사람이 계속 무례해도 어쩔 수 없지. 그냥 다 참자."라는 태도. 그리고 수용(acceptance)을 한다는 건 상대의 현재 상태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것이 나의 존재나 가치를 위협하지 않도록 감정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 사람은 눈치가 영 부족한 편이라서 그게 나에게는 불편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도 있지. 게다가 꼭 내가 나서서 고쳐야 할 문제는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는 것.


별개의 문제로 내가 이러한 관계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패턴은 다른 사람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통제 욕구. 그건 내가 가진 잔잔하고도 길게 이어져 왔던 불안과 관련이 있다. 이제 다음 쳅터로 넘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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