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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잡담 Nov 14. 2022

생존근육을 키워라

나는 프랑스라는 미지의 섬에 간다. 그곳에는 아는 장소도 아는 사람도 없다. 소리도 냄새도 분명 낯섦 그 자체일 것이다. 그 생소한 곳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 역시 만무할 것이다. 그녀와 그녀를 따라가는(?) 나는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 미지의 섬에서 살아남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살아남기 위해, 생존을 위해 지금부터 뭘 해야 할까?


평소에 심리 테스트에서 ‘무인도에 간다면 당신은 무엇을 챙겨 갈 건가요?’ 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뭘 가져가야 하지?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난 뭘 준비해야 하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식주라는 단어가 30년 만에 떠 올랐다. 중학교 때 배운 인간 생활의 최소 3가지 요소 의.식.주.(衣 옷 의, 食 먹을 식, 住 살 주)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단순히 옷가지는 챙겨 가거나 거기서 사 입으면 된다.. 먹을 것도 사 먹으면 된다? 집도 비싸지만, 월세로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다? 응? 이렇게 쉽게 다 해결? 근데 먹거나 사거나 계약하거나 다 샬라샬라 불어로 해야 한다는 게 함정이다. 불어는 올림픽이나 세계적인 공식 석상에서 영어와 더불어 공용어라고 한다. (여태 이걸 몰랐다 왜?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래서인지 프랑스인들은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영어를 알아도 영어로 이야기하지 않고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한다는 썰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잘한다는 말은 아니다. 어쨌듯 영어도 잘하지 못하니 불어라도 기본 회화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불어 배우기.


@ 그녀의 불어 노트


언젠가 방송에서 유학생들에게 ‘외국에서 가장 그리운 게 무엇인가?’라는 설문을 한 게 있다. 나는 당연히 부모님이나 여자친구일 거라 예상했는데. 1위는 양념치킨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배달문화가 너무 잘 되어있어서 먹고 싶은 거는 거의 모든 메뉴가 30분 안에 해결된다. 심지어 요리가 아닌 과일도 30분 안에 이쁘게 깎아서 문 앞에 놓인다. 하지만 프랑스는 다르다. 배달의 민족도 아닐뿐더러 한식 또한 쉽게 접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먹던 바게트를 던져 버리고 된장찌개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된장찌개 내가 끓일 수 있나? 간단한 한국요리 정도는 해야 삼시세끼를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다. 20년 자취 생활에 조리는 자신이 있어도 할 줄 아는 요리나 반찬은 전무후무한 거 같다. 아 한식 요리를 배워야겠다. 두 번째 요리 배우기.


@ 깻잎 김치와 오뎅 볶음


의식주만 해결하면 거기서 생존할 수 있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 안에서 어울리며 살아간다. 프랑스에서 그나마 정보를 얻고 비빌 구석이 있다면 한인회 정도 떠오른다. 분명 프랑스에도 한인회가 있을 것이며 거기 사람들이랑도 친해지면 프랑스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프랑스 혹은 외국에 살다 온 지인들에게 현지 교민들이랑 친해지는 방법을 물었더니 두 가지를 추천해 주었다. 하나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다. 교회라. 부모님은 불교지만 나는 특별히 종교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교회 일단 썩 내키지는 않지만 고려해 보기로 했다. 다른 하나는 골프 라운딩을 하는 것이라 한다. 유럽은 한국만큼 골프 가격이 비싸지 않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아저씨들 친목 도모에 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벌써 몇 년 전부터 골프 등록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열심히 배우지 않은 게 후회된다. 이건 미리 할 수도 있었는데. 젠장 지금이라도 골프 다시 배워야겠다. 세 번째 골프 레슨 받기.


파리도 서울만큼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한다. 더불어 주차는 한국보다 훨씬 힘들다고, 주차된 차들 사이에 간격은 10cm 정도고 한번 주차하거나 나오려면 핸들을 수십번 꺾었다 풀었다 한다고 하다. 또 주차하다 가볍게 범퍼를 박는 것은 사고가 아닌 일상이라고. 그렇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면 되는 듯 한데 파리의 지하철은 파리를 잘 모르는 나도 그 악명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한국의 지하철보다 아주 좁고 냄새 또한 심하다고. 파리를 갔다 온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상상 그 이상으로 더러울 것이라고 말한다. 오마이갓. 그럼 대안으로 자전거나 바이크가 떠올랐다. 아 근데 자전거는 힘드니까 바로 패스. 검색해 보니 파리도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니는 것 같고 무엇보다도 이 기회에 평소 미뤄 놓았던 바이크 면허를 따고 싶었다. 그녀에게 파리 교통에 대한 그럴듯한 핑계(위와 같이)를 대고 바이크 면허도 도전. 네 번째 바이크 배우기.


@ 빠라빠라빠라밤~



그리고 몇 가지 더 배우고 싶은 게 생각났다. 20년을 가까이 미디어 쪽 일을 하면서 영상으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기에 장문에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는 않다. 내가 여태 쓴 글들은 프로그램 기획안이나 방송 사고 났을 때 쓴 시말서 정도가 전부다. 나의 이야기를 이처럼 글로 쓴 것은 강산이 두어 번 바뀌기 전 이야기다. 더불어 강산이 두어 번 바뀌기 전에는 글과 사진으로 먹고살 걱정도 한 거 같은 기억이 있다. 너무 오래전이고 손 놓고 있었고 자신도 없었기에 기억조차 희미하다. 하지만 강산을 뒤로하고 프랑스에 간다니 다시 기록 하고 싶어졌다.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그래서 글쓰기랑 사진도 추가요.


인간의 몸은 600여 개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근육들을 생존 근육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먹어야 에너지를 만들고 살아갈 수 있기에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입, 턱, 혀 등에 있는 근육들 일명 삼킨 근육. 심장이 온 몸에 피를 공급 하는데 피를 아래로 내렸다 다가 다시 심장으로 올릴 수 있게  또 걸을 수 있게 도와주는 종아리 근육 등이 있다. 이러한 근육들이 있기에 우리의 몸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삶을 이어 갈 수 있다. 나 역시도 프랑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생존 근육을 절대적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6개의 학원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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