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파란만장하니?
세상은 온통 연둣빛으로 새로움을 시작한다는데,
내 안의 전구는 자꾸 깜빡거린다.
손톱만큼 작던 잎들이 눈 깜짝할 새 손바닥만큼 자라나는
그 무자비한 생명력을 보고 있으면,
문득 내가 갈구하던 ‘새로움’이 사실은 지독한 갈증이었음을 깨닫는다.
사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아이를 낳고...
"그 가족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를 만들기 위해
나는 사실 겁나 빡쎄다.
그 동화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내 인생은,
그래서 내내 빡세기만 하다.
길을 잃고 비틀거릴 때마다 나는 습관적으로 내 탓을 찾는다.
그 눅눅한 자책이 아이들에게 옮겨 붙을까 봐,
나는 오늘도 따스한 볕을 쥐어짜 평온한 척 껍데기를 세운다.
그렇게 억지로 기운을 모으다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강남의 유명한 무당이었던 그 학부모는
과외가 끝날 때마다 산해진미를 차려냈다.
어릴 때부터 내 손으로 밥을 차려 먹으며 컸던 나에게,
남이 해준 뜨거운 집밥은 생전 처음 맛보는 보살핌이었다.
그녀는 내 인생의 굽이길마다 전화를 걸어와 나의 삶을 붙들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내가 결혼을 했을 때도
수화기 너머로 그녀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던졌다.
“선생님은 잘 살 수밖에 없어!”
그 목소리가 들리면 참으려 애써도 눈물을 쏟아냈다.
내 안의 소리 없는 외침을 그녀만은 듣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예언 같은 한마디에 기대어 나는 또 한 번 빛나는 인생을 기대했다.
하지만 인생은 기어코 더 잔인한 굽이길을 내어놓았다.
아이가 장애라는 이름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을 때,
내 삶의 모든 박자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삶을 통째로 모아 어디론가 내던져버리고 싶던 그 지독한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전화는 어김없었다.
“밥은 먹었어? 혹시 또 울고 있는 건 아니니.”
또, 울고 있었지!!!
내가 울먹이며 전화를 받으면 그녀는 짐작했다는 듯 덧붙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전화를 하지.
선생님이 행복하게 잘 살아야 내가 전화를 안 할 거 아니야.”
그 말은 죽고 싶던 나를 다시 식탁 앞으로 불러 앉혔다.
자기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을 그녀가 내민 그 투박한 위로를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나는 내가 살아내야 할 이유를 실감하곤 했다.
“그냥 살아! 살아내!! 아무 생각 말고 살다 보면 다 이뤄낼 거야.”
아니, 무당이라면서 매번 그럴싸한 점괘를 봐주지도 않고
이런 무책임하고 허상 같은 말로 나를 위로하다니.
납득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난 주문에 걸린 듯 그 후로 쭉, 그냥 살아냈다.
행복의 주문을 동아줄 삼아 하루를 버티고,
또 다음 하루를 끌어당기며.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전화를 하지 않을 만큼 행복해진 걸까.
걱정스럽지 않을 만큼 잘 살아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요즘처럼 신선한 공기마저 새로움에 설레는 날씨에,
나는 순간순간 나의 아득함에 주춤한다.
모두가 시작을 말하는 이 찬란한 봄이,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나의 고단함과는 너무나 멀리 있어서.
그 밝은 햇살이 오히려 나의 막막함을 선명하게 비추는 것 같아
나는 자꾸 아득해지는 것이다.
“그래!!!! 눈물 몇 방울 질질 짜고
별일 아닌 듯 손등으로 툭툭 닦아내고 다시 살아내자!!”
인생은 더럽게 힘든 거 맞고!
내가 아니면 또 누가 잘 살겠어!!
나는 꼭 내가 잘 살아내는 걸 증명해야겠다.
누가 뭐래도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
나는 다시 빡센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