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수구 씨

콱 막힌 인생이 답답해도..

by 투지스맘


이사 온 지 10년,
이 집은 1년에 한 번씩 꼭 체한 듯 멈춰 선다.

새 아파트라는 번듯한 이름표가 무색하게,
10년 내내 내가 내지 않은 타인들의 삶의 흔적들이
우리 집 하수구에 고여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하수구가 막히는 거야 살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꼭 마음이 눅눅하고 몸이 바닥으로 꺼지는 날,
기다렸다는 듯이 사고가 터진다.

'고치면 되지'라는 이성적인 생각 따위,
애초에 들어설 틈이 없다.
꽉 막혀버린 구멍을 보고 있으면
목구멍 끝까지 뜨거운 것이 차오른다.

"와... 씨, 진짜 너마저."

관리소 사람들은 또 바뀌어 있다.

역시나 또 내가 문제란다. 1층인데??
매년 되풀이되는 이 고통을 처음 보는 이들에게 일일이 매번 증명해야 하는 일.


끓어오르는 언성을 누르고 친절을 가장한 목소리로
과거 영상과 사진을 보내고서야 겨우 대화가 통한다.

아니 반은 통했나??
수습하는 삶이란 늘 이토록 구걸하듯 피곤한 법인가.

그건 단순한 탄식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등져도 너만은 조용히 있어 줘야지,
너만은 그저 제 갈 길 가는 물줄기를
막지 말았어야지 하는 절박한 허탈함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을 배우는 대신,
나는 보일러가 터지고 천장에서 물이 새는 현실을
먼저 수습했다.

한겨울 보일러가 멈춰도 부모는 없었고,
어린 내가 주인집에 사정하며
낡은 수도꼭지를 붙들어야 했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집안에 뭔가 고장 나면 반사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게.
세상의 모든 망가진 것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향해 쏟아지는 기분.

언젠가 삶이 폭풍 속에 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하며 억지로 웃은 적이 있다.
차라리 감당 못 할 큰일이 터지느니
하수구가 막히는 게 낫겠다고.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그 모진 풍파는 용케 살아내놓고는,
이제는 이 하찮은 하수구 하나에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들을 수습하며 평생을 살았다.
IMF로 무너진 아빠와 과거의 화려함만 붙잡고 사는 엄마,
그리고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동생들까지.

내 몫도 아닌 짐들을 묵묵히 받아내며 꾸역꾸역 막혀가는 이 하수구 앞에서,
나는 내 안에 아직도 빠지지 않고 고여있는 그 시절의 앙금을 본다.

별일 없는 하루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데,
이 하찮은 구멍 하나가 내 감정의 스위치를
사정없이 눌러버린다.

이것은 과거를 치유받지 못한 어떠한 비명일까,
아니면 이제는 제발 나 좀 봐달라는
내 안의 허기진 갈구일까.

에라이, 모르겠다!
이럴 땐 크게 외쳐버리자.

"너희들도, 너희 삶도 한 번쯤은 크게 콱 막혀버려라!"


"투지스맘 매일, 행복의 순간을 수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