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대마진을 넘어 생애가치로

고객은 한 번 오고, 관계는 오래 남는다

by 김무건

가장 친숙한 금융기관, 은행이라는 곳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은행이 동네마다 영업점을 두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이체를 하거나 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해 한 달에도 몇 번씩 은행을 찾곤 했었죠.


수작업 업무가 많다 보니 영업점의 규모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됐다고 합니다.

명동이나 강남 같은 곳에서는 한 지점의 직원 수가 백 명을 훌쩍 넘기도 했다니까요, 요즘 기준으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죠.


업무를 기다리며 마시던 믹스커피 한 잔, 그 옆에서 자연스럽게 오가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

은행원 누님들은 어느새 이웃들의 안부를 서로 전해 주는 지역 커뮤니티의 사회적 접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은행 마케팅팀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는데요.

지난 연말, 오랜만의 송년회에서 만난 영업점 출신 왕누님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예전 내 00지점 고객들, 아직 몇 분이랑은 계속 연락하고 지내.”


한참 전 본사부서로 옮겼고, 거래 관계도 이미 끝난지가 오래인데.... 사람 사이의 인연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이었죠.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마 은행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금융기관 중 하나일 겁니다.

월급이 들어오고, 카드 대금이 빠져나가고, 대출과 적금 같은 금융 거래가 여전히 일상처럼 오가는 곳이니까요.

그 공간이 영업점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옮겨갔을 뿐죠.


하지만 이렇게 자주, 오래 거래하면서도

우리는 은행의 마케팅은 어떤 구조로 진행되는지까지는 잘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금융 마케팅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은행부터 살펴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대마진이라는 단순한 구조의 함정


은행의 수익 구조는 얼핏 보면 단순합니다.

예금을 받아 자금을 조달하고, 그 돈을 대출로 운용해 금리 차이만큼의 이익을 남깁니다.


이른바 예대마진이죠.

여기에 송금, 외환, 펀드나 보험 판매에서 나오는 각종 수수료 수익이 더해집니다.


구조만 놓고 보면 “예금을 늘리고 대출을 많이 하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마케팅을 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금 금리를 조금만 높여도 마케팅 성과는 단기간에 좋게 변합니다.

계좌는 늘고, 유입은 늘어나죠.


하지만 동시에 은행의 비용도 함께 늘어납니다.

고객이 맡긴 돈은 은행 입장에서는 장사의 재료인 셈인데, 재료를 너무 비싸게 사와서는 나중에 이문이 남지가 않는거죠.


그래서 은행 마케팅은 단기 성과만 보고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방향을 잘못 잡아도, 성과는 늘었는데 손익은 나빠지는 상황이 금세 만들어지거든요.


그래서 은행 마케터의 질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바뀌어 갑니다.
“이 고객은, 얼마나 오래 머무르면서 다른 금융 상품들까지 구매할 사람일까?”


그래서 은행은 ‘생애가치(LTV)’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은행에서의 마케팅은 한 번의 상품 판매로 끝나지 않습니다.


급여이체로 시작한 고객이

적금을 들고,
대출을 받고,
카드를 만들고,
자산관리를 고민하는

이 과정들은 대개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에 걸쳐 이어집니다.


그래서 은행은 고객을 ‘상품별’로 보기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관계’로 바라보게 됩니다.


신혼부부에게는

주택자금 마련을 위한 적금과 대출이,

아이를 키우는 시기에는

생활비 관리와 교육 자금이,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연금과 자산관리가

중요해지고, 해당 상품에 대한 니즈도 커집니다.


이 모든 흐름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그저 개별 상품일 뿐이지만, 연결해서 보면 하나의 금융 여정이 됩니다.


은행 마케팅이 고객 생애가치(LTV)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은행 마케팅이 관리하는 것은 ‘판매’가 아니다


이쯤 되면 은행 마케팅의 목표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많이 팔았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어떤 관계로 남아 있는가.


그래서 은행의 마케팅 성과는 신규 계좌 수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활성 고객의 비중, 주거래 고객의 유지율, 앱 안에서 이어지는 거래의 깊이 같은 지표들이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모바일 앱에서 제공하는 자산 리포트나 목표 관리, 생활 밀착형 금융 서비스들도 단기 판매를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에 가깝습니다.


은행의 마케팅은 상품을 파는 일이 아니라, 신뢰가 유지되는 시간을 설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을 이해하다 보면 금융 마케팅에서 ‘성과’라는 말이 왜 이렇게 쉽게 정의되지 않는지도 조금은 보이기 시작합니다.



관계를 관리하는 은행의 방식 – KB국민은행의 LIIV 사례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KB국민은행의 모바일 플랫폼 'LIIV(리브)'입니다.

LIIV는 처음부터 “금리가 높은 상품을 모바일을 통해 많이 팔아보자”는 목적보다는, 고객이 은행과 맺는 일상의 접점을 모바일 안으로 옮기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송금이나 조회 같은 기본 기능을 넘어 소비 패턴을 보여주고, 자산을 한눈에 정리해주고, 신용 상태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였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특정 상품의 판매 성과 아닙니다.

고객이 얼마나 자주 앱을 열고, 얼마나 오래 머무르며, 다른 금융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였습니다.


은행이 플랫폼을 고민하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은행의 마케팅이란, 예금과 대출을 얼마나 잘 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고객의 금융 생활 속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느냐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LIIV는 은행이 예대마진 중심의 사고에서 고객 생애가치 중심의 사고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에 가깝습니다.


고객 생애가치를 관리하지 않으면, 은행의 마케팅은 구조적으로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은행을 이렇게 바라보고 나면,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융회사가 이처럼 생애가치 중심의 마케팅을 중시하는 걸까?"


다음 글에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증권사의 특성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