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수수료'보다 '가장 쉬운 투자 경험'
은행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옵니다.
“증권사는 또 다를 것 같은데...”
은행이 예금과 대출을 통해 고객과 긴 시간을 함께하는 산업이라면, 증권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고객와 만납니다.
증권업권의 사업 구조 중, 대고객 마케팅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영역은 소매금융(Retail)이에요.
소매금융은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주식·채권·펀드 등 투자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역으로, 브로커리지(위탁매매)와 이를 통해 파생되는 부수 거래, 그리고 이자 수익 등이 주요 수익원이 되지요.
간단히 말해서,
증권사의 소매금융은 고객이 위탁매매 계좌를 통해 얼마나 거래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수익이 달라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쪼개어 보면 구조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개인 고객이 주식이나 채권을 매매하면 그 거래를 중개한 대가로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신규 계좌를 유치하고,
그 계좌에서 실제 거래가 일어나도록 만드는 일이 증권사 마케팅의 가장 직접적인 성과 지점이죠.
여기에 펀드나 ELS 같은 금융상품을 판매하면 추가적인 수익이 발생하고, 고객 예탁금이나 신용거래 자금을 운용하며 이자 수익도 함께 쌓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증권사 마케팅의 질문은 비교적 단순했어요.
“어떻게 하면 거래를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스마트폰 앱을 통한 모바일 트레이딩이 확산되고, 수수료 경쟁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단순한 거래만으로 수익을 늘리는 방식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계좌는 늘었지만 거래는 늘지 않고, 거래가 늘어도 남는 수익은 줄어드는 상황이 반복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지점에서 증권사 마케터들은 또 하나의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거래 외에 또 무엇에 신경써야 하는 거지?”
증권사는 오래전부터 단순한 ‘주식 거래 중개업’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습니다.
리서치와 투자 자문, 금융상품 설계와 운용, 그리고 자본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 서비스 산업으로 조금씩 진화해 왔지요.
특히 거래 중심 수익 모델의 마진율이 낮아지면서, 증권사는 단기 수수료에 의존하기보다 관계 기반의 수수료형 모델을 고민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았다는 점이예요.
거래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할수록, 증권사 마케팅에서는 자연스럽게 ‘업에 대한 이해’라는 질문이 다시 떠오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도 대부분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증권사의 소매금융이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고객의 거래가 어떤 경로를 거쳐 수익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마케팅 전략은 금세 표류하게 됩니다.
주식이 거래되는 한국거래소(KRX)는 기본적으로 회원제 기관이예요.
개인은 직접 거래소에 접근할 수 없고,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를 통해서만 매매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개인 고객의 거래는 항상 ‘위탁’의 형태를 띠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탁매매 계좌, 예탁금, 예탁금 이용료 같은 개념들이 이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이 기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마케팅 성과를 설명하기도, 전략의 방향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마케팅 역량을 갖추고 있더라도, 자신이 속한 업이 어떻게 돈을 벌고, 그 과정에서 고객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모른다면 결국 메시지는 힘을 잃게 됩니다.
최근 증권사들은 모바일 트레이딩과 수수료 인하 경쟁 속에서 단순 거래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사례가 토스증권입니다.
토스증권은 ‘최저 수수료’보다 '가장 쉬운 투자 경험’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종목 이름 대신 로고 기반 검색, 길고 복잡한 설명 대신 핵심만 정리된 정보, 1주 단위가 아닌 금액 단위로 투자할 수 있는 소수점 거래.
토스증권이 바꾼 것은 상품 자체라기보다 투자에 접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금융상품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UX 중심의 마케팅이었습니다.
그 결과 토스증권은 젊은 세대에게 ‘첫 투자 계좌’로 선택되는 비율을 빠르게 높였고, 특히 해외주식 거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증권사 마케팅의 질문은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거래를 일으켰는가보다, 고객이 투자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설계했는가.
단기 수수료 중심의 사고에서 투자 여정을 관리하는 서비스 마케팅으로의 이동입니다.
은행이 관계의 시간을 설계한다면, 증권사는 '투자 경험의 흐름'을 설계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 미묘한 차이가 금융 마케팅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