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마케팅은 왜 어려울까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요.
현업에서 금융 마케팅을 담당하며 한 번쯤은 답답함을 느껴본 마케터일까요?
혹은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시는 취업준비생이실수도, 이직을 준비하는 예비 금융인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20년째 금융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지만, 금융권을 목표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에서는 광고홍보학을 전공했고, 졸업하면서는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며 다양한 경쟁 PT에서 연전연승하는 멋진 AE를 꿈꿨었죠.
하지만 뜻밖의 기회로 은행의 마케팅 부서에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카드사와 증권사를 거치며 금융권에서만 오랜동안 마케팅 업무를 이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한 가지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게 되었습니다.
“마케팅 자체에 대해 막히는 건 별로 없는데, 금융회사에서의 마케팅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답답함이었습니다.
유명한 마케팅 구루들의 책을 찾아 읽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원론적인 인사이트는 많았지만, 막상 현장에서 마주한 상황들에 명확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은행에서 근무할 때엔 예금과 카드 상품들의 마케팅을 주로 담당했었고, 현재는 증권사에서 주식, 채권, 펀드같은 투자상품들의 마케팅을 맡아 진행하고 있는데요.
어찌 된 게 갈수록 경험과 지식은 분명 쌓여가는데, 더 쉬워지지는 않고 오히려 알수록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 자꾸 드는거예요.
특히 정해진 금리나 혜택을 주는 예금과 카드보다는, 여러가지 변수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펀드나 채권, 주식과 같은 투자관련 상품들의 마케팅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웠습니다.
생각해보니 이게 단순히 상품의 장점만 잘 알리면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고객의 라이프 스테이지에 따라 적합한 투자상품도 달라지고, 고객별로 투자성향이나 자산규모도 차이가 있으며, 시장 금리나 환율이 어떻게 흘러갈지 등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은 거예요.
몇 만원 정도에 불과한 일반적인 상품에 비해, 금융상품은 한번에도 몇 천만원 이상씩 투자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마케팅의 무게도 더 무거워야 함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케터라면 이런 질문들로 회의를 시작해본 경험이 많으실 겁니다.
- 이 캠페인은 왜 해야 하지?
- 이 메시지는 정말 맞는 방향일까?
- 타깃 고객은 명확하게 설정되었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금융 마케터라면 그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던졌어야 할 질문이 있었습니다.
"나는 과연 이 ‘업(業)’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한 상태에서 마케팅을 시작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 부분이 답답함의 중심에 있었던 갈증이었던 것 같아요.
금융권에서 마케팅을 한다는게, 광고회사에서 PT를 준비할때와는 다른 애로사항들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품
일반 마케팅과 금융 마케팅의 가장 큰 차이는 ‘상품’에 있습니다.
'상품'이라는 건 대개는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하는게 일반적이죠.
소비자는 화장품을, 패딩 재킷을, 자동차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본 후 구매 여부를 결정합니다.
마케터는 멋진 제품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상품의 특성을 어떻게 강조하면 기억에 남을지를 고민하면 되겠죠.
반면, 금융 상품은 ‘비물리적’이며, 소비자는 상품을 직접 ‘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은행의 예금 상품이나 대출 상품은 종이로 된 계약서나 계좌 통장 정도만 보게 될 뿐, 실제로 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이자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아요.
맞습니다. 금융 마케팅에서는 보이지도, 그리고 만져지지도 않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 숙제가 있는 셈입니다.
복잡한 가격 구조
일반적인 상품의 가격은 ‘원가’ 또는 제품의 ‘유통방식’에 따라 결정되죠.
그러나 금융 상품은 그 마진 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대출 등 많은 상품들은 신용등급에 따라서 '고객별'로도 가격이 다릅니다.
또한 ‘시장의 이자율’에 따라 수시로 가격이 변동하기 때문에, 이건 뭐 설명도 이해도 영 쉽지 않습니다.
금융 상품 하나 가입하려면 심지어 가입서류 몇 장씩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해했음'이라는 서명을 써야 했던 기억이 다들 한번쯤은 있으실 거예요.
오죽 복잡하면 타 산업에는 없는 '공학'이란 단어가 붙어서, 금융상품에는 '금융공학'이라는 전문적인 학문의 영역까지 있을까요.
장기적인 관계맺기
일반적인 마케팅에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소비자와의 관계가 비교적 간단해요.
보통 한 번의 구매로 관계가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금융 마케팅은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대출을 한 번 받아도 '20년 상환' 혹은 '30년 상환'이 일반적이고, 보험을 들어도 십여년 이상씩 계약을 유지하며 보험급을 납부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죠.
단골 제과회사, 주사용 화장품, 주력 자동차 브랜드, 이런 단어들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는 않아요.
일반적으로 개별 제품의 특성이 해당 브랜드와의 장기적인 관계보다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주거래 은행, 주거래 증권사, 주사용 카드, 이런 말들은 귀에 익숙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규제와 법적 환경
금융 마케팅은 훨씬 더 복잡한 규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금융회사는 일반 기업처럼 공정거래법과 표시광고법 등 일반적인 제약을 준수해야 함은 물론, 금융 당국이 마련한 별도의 규제도 따라야 하며, 광고나 프로모션을 할 때도 금융 상품의 종류별로 금융투자협회, 여신금융협회, 보험협회 등에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자율을 광고할 때는 명확한 고지사항을 제공해야 하고, 대출 상품을 홍보할 때는 ‘불완전판매’를 피하기 위해 상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금융소비자 보호법’등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항상 준수여부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금융 마케터를 답답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다음 글에서부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살펴보아야 하는지를 함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금융 마케팅의 ‘정답’을 제시하려는 글은 아닙니다.
대신, 제가 현장에서 수없이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며 노하우를 정리해 둔 업무노트에 가깝습니다.
- 금융회사는 어떻게 돈을 벌고
- 마케팅은 그 구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성과는 왜 항상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지
- 그리고 현업 마케터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덜 흔들릴 수 있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최대한 현장의 언어로 풀어보려 합니다.
금융 마케팅을 처음 맡아 막막함을 느끼는 주니어에게는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이미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마케터에게는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현장에서의 답을 찾는 금융 마케터들에게, 이 글이 작은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