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느딜망, 그녀에게 물질성이란

<잔느딜망>(샹탈 애커만, 1975) 감상평

by 브로콜리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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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노동과 성 노동에 봉해져 침묵으로 닫혀진 잔느는 아들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문을 연다. 그녀는 아들을 제외하고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먼저 말을 시작하지 않는다. 잔느는 아들과 있을 때만 먼저 말을 한다. 아들은 그녀에게 삶의 이유, 노동의 원동력인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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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구두를 닦을 때 조차도 부엌에서 행한다. 그녀에게 부엌은 뗼 수 없는 존재이다. 부엌에서 행해지는 그녀의 노동은 비록 돈이라는 물질성을 불러오지 못하지만, 아들에게 주는 음식, 아들에게 주는 구두, 자신이 마시려는 커피 등 끊임없이 생산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잔느딜망에서 시간은 리얼타임 형식과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음식을 마드는 시간, 커피를 내리는 시간 등등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초반에 그녀가 부엌에서 행했던 행동과 계속해서 반복되는 부엌씬은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 초반의 부엌씬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지만 계속되는 부엌씬은 일종의 노동,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강제성의 느낌일 준다. 그녀의 집에서 그녀가 아니면 부엌이란 공간에서 생산물이 생산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있기에 부엌이 그리고 집이 생명을 갖고 유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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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집에서 안방 즉, 그녀의 방은 부엌과 다르게 돈이라는 물질성을 생산해 낸다. 그 돈은 아들을 위해 음식을 사는 행위로 부엌으로 돌아온다. 영화 전반부와 중반부에서 잔느가 남자 손님을 받을 때 프레임에서 그녀의 얼굴이 반쯤 잘려나간 채 나온다. 즉, 그녀조차 그녀의 돈벌이 방법이 내키지 않은 것이다. 영화 후반부가 되면 처음으로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정면으로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거울에 비친 모습지이, 그녀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남자와 시간을 갖고 난 뒤 옷을 추스르는 모습과 남자를 가위로 찔러 죽이는 모습 또한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그 뒤 거실 탁자에 앉은 잔느. 그 테이블 위에는 평소에 남자에게 돈을 받고 그 돈을 넣는 도자기가 놓여 있다. 영화에서 자발적으로 발화를 하는 잔느는 아들과 있을 때 뿐이다. 특히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말을 거는 장면이 많은데, 아들과 함께 이야기를 했던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은 돈. 그리고 사색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잔느.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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