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봐왔나 보다. 영화나 드라마 속 직장인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떤 환상이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회사에 입사하면 그들 주인공처럼 멋지게 임원들 앞에서 기획안을 프레젠테이션 하고, 뭔가 큰 계약을 따내고,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그런 모습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처음 입사를 하면 생각과는 다른 회사의 모습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우선,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는다. 그저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기만 한다. 사무실 내 다른 직원들은 부산하게 뭔가를 하고 있는데, 혼자만 덩그러니 앉아만 있으니 좀이 쑤신다. 나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원래 회사란 이런 곳인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나?’하는 회의감도 든다. 그러다 선배라는 사람이 간혹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뭔가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고맙다. 하지만, 그 역시 잔 심부름 같은 것뿐이다. 어디에 쓰는 것인지 모를 복잡한 서류를 지시대로 철해 놓거나, 부탁받은 서류를 복사하는 것 말이다.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업무를 담당하게 돼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그다지 큰 비중도 없는 하찮은 업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승진을 해도 마찬가지다. 마치 나까지 하찮아지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나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 다르다. 마음을 다잡아 보려 해도 자꾸만 회사 생활에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겨우 이런 일이나 하려고 입사한 것이 아닌데…”
이런 생각이 절로 난다.
한 번 이런 생각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다. 점점 회의감이 들고, 자신도 없어지고, 스스로가 하찮게 느껴지게 된다. 처음에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 업무도 점차 익숙해져 가니 하찮게만 느껴진다. 왠지 옆 동료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다. 나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싶어서 상사와 상담을 해봐도,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나마 갖고 있던 업무에 대한 흥미도 점점 사라져만 간다. 상사도 특별히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 같지 않다. 여전히 그저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예전보다 일이 더 하기 싫다. 그렇게 자꾸만 악순환이 반복되어 간다. 부푼 희망을 안고 입사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나와는 달리, 옆 동료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자꾸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진다.
하지만, 우리 눈에 대단해 보이는 그 사람들도 항상 중요한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남들이 봤을 때 하찮다 여기는 일을 한다. 단지 그 비중이 적어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처음부터 대단했고, 처음부터 중요하다 여겨지는 일만 했을까? 처음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았을까? 당연하게도 그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그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일을 맡겨 주기만을 하릴없이 기다렸을 것이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복잡한 서류를 철하고, 복사를 했을 것이다. 나와 다를 것 하나 없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그는 분명 우리와 한 가지가 달랐을 것이다.
바로, 일을 대하는 태도다.
처음 상사는 분명 누구에게나 같은 일을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응은 아마도 사람마다 달랐을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에게 똑같이 복사를 시켰다고 해보자. 그때 A라는 사람은 귀찮은 기색 없이 스테이플러의 심을 뽑고 최대한 원본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복사했고, B라는 사람은 하찮은 일을 시킨다며 약간의 싫은 기색을 띄며 대충 했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물은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상사는 두 사람이 일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봤을 것이고, 그 결과물의 미세한 차이 또한 봤을 것이다. 스스로는 본심을 잘 감췄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경력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의 태도가 지금은 비록 약간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이 차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앞으로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만약, 당신이 상사라면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저 복사를 시켜서 미안하다 생각할까? 아니다.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복사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B에게 다른 일을 맡길 수 있을까?”
반면, A에 대해서는 어떨까? 당신이 상사라면, 작은 일 조차도 싫은 기색 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더 일을 맡기고 싶지 않을까? 적어도 B보다는 더 믿음직스럽지 않을까?
회사에서 하찮은 일은 사실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정해진 절차에 따라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단지, 역할에 따라 단계가 존재할 뿐이다. 그 단계를 아래부터 하나씩 밟아가는 것이 조직으로 일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능력에 맞는 일은 따로 있다며, 처음부터 뛰어넘을 생각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작은 일부터 하나씩 밟아 가며 조금씩 믿음을 주어야 한다. 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일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다.
다시 한번, 작은 일부터 최선을 다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