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집안에 카펫을

by yangTV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항상 밝게 웃던 아내에게 그런 비밀(?)이 있을 줄은...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서로에 대해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나도 그랬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도 즐거웠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세상이 무척 밝게 느껴졌다.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는 사실이 좋았고, 점점 가까워져 가는 느낌도 좋았다. 그녀와 이야기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들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참 신기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하루를 거의 대화로 시작해서 대화로 끝냈던 것 같다. 장소나 시간을 가리지도 않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거리를 산책하면서도, 거기가 어디든 우리는 서로 이야기했다. 모닝콜로 서로의 아침을 깨우고, 헤어지고 나서는 잠들 때까지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아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착각이라기보다 그때의 난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부족했었던 것 같다.


세상에 나처럼 눈치 없고 둔한 사람이 또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정작 나는 그녀의 비밀(?)을 알아 채질 못했다. 그렇게 많은 신호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속 사정까지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할 줄도 알아야 했는데, 나는 참 무신경했다. 그저 함께하는 그 순간이 마냥 좋기만 했다. 정말 속 편한 놈이었다.


사실, 그녀와 만나는 동안 이런 일들이 자주 있었다. 그녀는 같이 산책을 하다가도 자주 카페에 들러 커피 마시고 가자고 했고, 만나는 동안 자주 거리 한 귀퉁이에 주저앉아 쉬고는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고, 맑은 날이라도 간혹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고 이렇게 전화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전화 통화를 하다가도 아무런 이유 없이 급하게 전화를 끊은 적도 많았다.


나는 그때마다, '커피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여자들은 보통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 '그래, 때로는 나가기 귀찮을 때도 있지', '많이 피곤한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해하고 넘겼다. 내 욕심을 강요하기보다는, 상대를 배려하고 맞춰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나름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런 그녀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우리의 관계가 호감을 넘어 연인으로 발전할 무렵이었다. 그때 그녀는 지금 꼭 말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중학생 때 교실 바닥에 튀어나온 못에 찔린 사소한 사건이 있은 후부터, 원인 모를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당시 의사들도 무슨 병인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나마 병명이라도 알게 된 것은 발병하고 몇 년이 지난 스무 살 무렵. 아내가 앓고 있는 병은, 자가 면역 질환의 일종으로 자기 몸을 스스로 공격하는 질병이라 했다. 이로 인해, 깨어 있을 때도, 잠자고 있을 때도, 언제나 머리부터 발 끝까지 뼈를 긁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고 있고,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단지 통증을 참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통증이 덜할 때와 심할 때가 있을 뿐이고, 때로는 너무나 아픈 나머지 기절해 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병에는 치료약이 없다고 했다. 평생을 이 통증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진통제를 처방해 주고 진행상황을 확인해 주는 것뿐.


이때가 되어서야 난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고, 지금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좋아한다면서 그런 줄도 몰랐던 내가 참 바보 같았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면 내가 큰 충격을 받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어렵게 털어놓은 것을 보면.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난 의외로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난 단지 이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아픔을 내색하지 않고, 나를 향해 그렇게 환하게 웃어 주었구나'라고 말이다.


“결혼하면, 온 집안에 카펫을 깔아 줄게.”


내가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하기로 약속한 후, 내 아내에게 한말이다.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을 참아야 하는 아내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나의 자그마한 마음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너의 고통을 내가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내가 도울 수 있다면,

그것만큼 나에게 기쁜 일도 없을 거야.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