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정치가 아니라 메타정치

by 신지승

정치의 시간이 다가온다.

양당 메가정치는 단순한 정치세계관의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완성된 하나의 시스템이다. 선거제도, 미디어 구조, 정당 조직, 감정 동원의 방식이 촘촘히 결합된 이 시스템은 정치를 ‘이길 수 있는 말’을 찾는 과정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 안에서 3 지대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 그것은 곧 기존 정논쟁의 부속품이 될 운명이 크다. 양당은 주도적 이슈를 만든 당사자들이기에 한편으론 서로 적대적 공생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적 화두는 허용되지 않고, 이미 정해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라는 압박만이 남는다. 그렇게 3 지대는 ‘제3의 길’에 대한 견인력 자체가 구조적으로 봉쇄된다.


이제 3 지대는 메가 정쟁의 논쟁을 벗어나 근본적인 시대 통찰을 제시해야 한다. 누구 편과 세계관이 가까운가를 저울질하게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왜 선택지는 늘 이 둘 뿐인가를 묻는 자리. 새로운 공동체 비전을 다시 설정하는 능력과 태도. 이것이 바로 메타정치다.


메타정치는 메가정치가 아니다. 더 큰 세력, 더 많은 동원, 더 강한 구호를 뜻하지 않는다. 메타정치는 정치를 한 단계 위에서 바라보며, 정치가 작동하는 전제와 언어,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태도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이것들만 선택지로 존재하는가”를 묻는 정치. 입장을 하나 더 보태는 것이 아니라, 입장이 강요되는 방식을 해체하는 정치다.


이런 이유로 3 지대는 오히려 선거에 지는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이것은 패배주의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다른 감각과 해석을 안겨야 한다. 선거는 짧은 주기로 결과를 요구하지만, 운동은 세대에 걸친 축적을 필요로 한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언어가 단순해져야 하고, 불편한 질문은 유보되며, 삶의 복잡성은 삭제된다. 반면 메타정치는 표가 되지 않는 말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들 세계적으로 평균 집단지성이 만민치 않은 국민이다.


역사의 3 지대는 모두 처음에는 선거에서나 정치에서나 졌다. 그러나 그 패배들이 누적되며 정치의 지형 자체를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무엇이 남았는가였다.


메타정치는 논쟁에 뛰어들지 않는다. 대신 논쟁의 조건을 드러낸다. 이 갈등이 왜 항상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지, 누가 구조적으로 발언권을 박탈당하는지, 왜 다수의 삶은 늘 선택지 밖에 머무는지를 설명한다. 이 순간, 기존의 정치 논쟁은 힘을 잃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서 있던 무대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메타정치는 느릴 수 있다. 선거와 잘 맞지 않고, 지지율로 측정되지 않으며, 즉각적인 환호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늘 “애매하다”, “현실을 모른다”는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정확히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메타정치는 중립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을 개인이나 진영이 아니라 구조로 끌어올리는 가장 비타협적인 정치다.


결국 정치적 3 지대의 정체성은 타협의 공간이 아니라 재사유의 공간을 시민들에게 전할 수 있는 철학 역사적 해석력이 있어야 한다. 캐스팅보드가 아니라 '역사 해석의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 이기는 정당이 아니라, 패배를 감당할 줄 아는 배포가 있어야 한다.

정치는 선거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세계가 온통 개 싸움판이다. 개싸움에서는 싸우지 말라는 소리는 개싸움의 스펙터클한 흥분과 긴장을 이길 수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하는 토론과 숙고의 과정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동체의 미래를 멀리 보는, 깊게 보는 메타정치가의 등장을 기대한다.

18121508_1500838146615821_4204450689977232991_o.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윗집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