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36분 경찰서 청소년과에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토요일 밤에 친구와 싸워 신고가 들어왔고, 며칠 전에는 가출 의심 신고도 있었다고 했다. 나는 금시초문이었다. 함께 살지만 단 1분도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사춘기 아들, 그 침묵이 언제부터 이렇게 두꺼워졌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집에 혼자 앉아 있기가 불안했다.
오늘은 15년 만에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지원 사업을 냈고, 1차에 선정된 뒤 2차 피티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난뒤 지원사업으로 받는 묘한 모욕감과 무력감을 감당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겪는 일이라 긴장이 되었고, 오후 2시에 PT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오전 11시에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부산 00재단 근처 버스정류장 반대편 골목 입구에 있는 20년 가마솥 돼지국밥집이 보였다. 20년 동안 같은 메뉴를 이어왔다면, 무언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어쩌면 그것밖에 할 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가게는 더 확장되지도 않고 .
애초의 계획은 일찍 도착해서 감만시장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시장 구경은 나의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감만 시장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재개발이 될 것인지, 가게마다 사람의 흔적이 지워져 있었다. 떠난 자리만 남은 공간 한가운데 부산00재단 건물이 있었다. 이 마을은 어쩌면 쌍전벽해되어 다가올 시간을 기다리고 숨을 고르고 있는지 모른다 .
여튼 시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던 계획은 사라졌고, 식당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그곳애는 식당도 사람도 흔적이 없는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그 돼지국밥집을 떠올렸다. 길 건너편, 골목 입구에 있던 가게.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정거장쯤이라고 여겼던 거리가 세 정거장을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 오른쪽 골목 입구였는데, 같은 모양의 골목들만 반복되었다.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여기까지 온 선택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어려웠다, 식사를 하고 에너지를 보충해 PT발표와 심사를 받아야 한다.
오후 12시 30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도박에 가까워졌다.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되돌아가는 시간을 계산해야 했다 . 아직은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되돌아 갈 여유가 있다.다음 골목까지만 가보자, 거기에도 없으면 그만두자. 테무에서 신발 하나를 샀는데, 이 신발은 발바닥이 온전히 바닥에 닿지 않고 걸을때마다 오른쪽 발이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진다. 왜 하필 이 신발을 신고 나왔을깨 후회가 스친다. 그 사이 하늘은 곧 비가 올 것 같은 색으로 바뀌었다. 아직 보이지 않는, 20년 고수를 찾아, 테무 신발의 불편함을 감수한 채 발걸음만 앞으로 내 딛을 수 밖에 없었다.
부산 돼지국밥은 부산 어디서 먹어도 비슷하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집을 찾고 있었던 걸까. 걷다가 적당한 식당이 나오면 요기를 할 생각이었지만 다른 식당도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오히려 그렇기에 그 돼지국밥집을 찾아야 했다.
아들의 일도, 시장의 사라짐도, 오늘의 PT 발표도, 모두가 계획에서 어긋난 채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지난 인생이 지금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놓아야지 하면서도, 결국 그 어떤 판을 만들지도 못하고 정처없이 매달리기만 한 내 인생과 닮았다.그것은 어쩌면 지금 생각하면 가족을 놓고 벌인 도박에 가까웠다.
12시 49분 .결국 찾았다. 세 정거장을 걸어 골목 끝에서, 그 돼지국밥집은 나타났다. 나는 혼자 앉아 한 그릇을 주문했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미군 부대의 돼지 뼈로 끓여 먹었다는 음식, 버티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맛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몸도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 80대 할머니 한 분이 나를 1950년대 시간여행을 하게 만드는 듯 했다.
도시가 사람과 더불어 늙어가고 있었다.하지만 그건 누구에게는 지옥이기도 하겠지만 또 누구에게는 진시황도 꿈꾸지 못한 고령천국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주 몇 개의 지원 사업에 1차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서관이나 수많은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강의 하나 얻겠다고 다녔지만, 결국 2년 만에 겨우 시작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들뜸이 따라오지 않는다 . 내일도, 4일 뒤에도 PT가 있다.
아마 그 결과들은 다음 주에 한꺼번에 나에게 닥쳐올 것이다. 우수수 떨어지는 우박같은 절망감 혹은 얼굴로 간질그리며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가벼운 희망 일텐데도 . 사실 이건 비지니스가 아니라 여전히 생활비도 보장되지 않는 에너지발휘 기회에 불과하기도 하니깐 . 결과에 따라 허튼 시간만 낭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오래된 영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떠오라는 건 곧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때문일까 모두가 사라진 텅빈 마을 때문일까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천국을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지옥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