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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외출-속초

by 신지승

2015년 4월 27일 월요일

딸 하늬 가 욕조에 가득 물을 받아놓고 첨벙첨벙거린다

목욕탕 물소리가 좀 작았으면 좋겠다 제발

아이들이. 어젯밤 목욕하고 또 일어나자마자

또 목욕이다 사실은 물장난이다

욕조가 없는 우리 집에서 누리지 못하는 걸 막을 염치는 없다

모텔주인인 할머니에게는 그 물소리가 얼마나 쓰린 공포의 소리일까 싶어

욕실의 문이라도 닫는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네팔에서 대지진이 났다는 뉴스를 본다

“세계의 지붕이 무너졌다 ”

수천 명의 사람이 죽어간 재난을 겨우 세계의 지붕이 무너졌다는

추상적이면서 문학적일 수 있는 문구로 헤드라인을 뽑다니...

“8,942명의 사망자 그중 여성과 어린이 사망자가 약 70% ”

재난은 어느 날 예고 없이 다가오고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신문, 영화, 책으로 듣는 사람의 재난이야기는 꼭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의 모습 같다

방송은 표준렌즈 책은 접안렌즈라고 표현한 이도 있지만 나에겐 책도 망원렌즈 정도 같다

사람의 고통도 그냥 작은 점이 되고 개미 같은 처지가 된다


“8,942명 여성, 아이들 , 사라졌다..


내 아이들 내 아내 같은 8942명이 죽었다고 밖에는 못하겠다

어떤 비극이 뉴스와 책, 방송으로 다가올 때에는 우리는 귀와 눈으로만 듣는다


항상 우리는 열외다 우리는 아직은 열외다라며 안도한다


어젯밤 3만 원짜리 모텔 찾아 속초에서 젤 허름한 동네로 왔다

5살짜리. 애들 둘 하고 어른 두 명 얼마죠?

주인인지 대리인인지 모를 70대 중반은 넘었을 할머니다

5만 원인데 그냥 4만 원 하고 자요

와이프에게 물어보고 올게요

아내에게 물어보니 3만 원짜리로 찾아가잖다

차를 돌리고 있는데 그 할머니 나와서 기다린다

“온 손님을 어찌 돌려보내나.. 그럼 3만 5천 원 해.. 평일이니 방도 비어있으니 주는 거야”

그 와중에 아들은 캠핑은 차에서 자야 한다며 계속 떼쓴다

주차하고 올라가니 주인 할머니랑 아내가 옥신각신하고 있다

카드는 3천 원은 더 받아야 한다는 할머니와 다른 데 가겠다고 어깃장 놓는 아내

“제발 그냥 자자 너무 피곤하다 아내의 눈을 보고 한 구절 더 얹는다..

애들이 힘들어해 “

돈 없는 것도 재난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부모는 대책 없이 귀가 얇아진다

pm 2.5 초미세먼지는 소리 없는 살인자라며 거슬러지지 않고 폐 속으로 직접 축적되어

조기사망자는 2015년 현재 연간 최대 1,600명에 달합니다.

더구나 정부가 2021년까지 계획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증설하면

조기사망자는 최대 2,8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매번 마스크를 씌우지만 어느 사이 던져버리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다가

마음껏 숨 쉬며 뛰어다니게 하는 편이 내가 더 편할 것 같아 속초로 달려왔던 것이다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PM 2.5 관련 다큐 Under the Dome

CCTV 전 아나운서 차이징은 자신의 딸이 베이징에서 태어나자마자

양성종양에 걸린 것을 보고 대기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기 위해 만든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보고 바짝 얼었기도 했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를 피해 피난 다니는 우리 가족의 다큐도 함 만들어 볼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와서 네팔의 지진 소식을 듣다니....


약한 심장 가진 나를 옴싹 달짝 못하게 한다

네팔의 지진은 특히 올해 초부터 네팔 터라 지역, 그중에서도 네팔에서

최빈곤 지역인 극서부 꺼이날리에서 살아가는 ‘타루족’ 마을에서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지인과 여러 곳에 지원제안서를 내놓고 있었던 때였기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 아침 마을을 둘러보던 나는 또 경악한다

우리가 잠을 청했던 이 마을은 오래전 해일로 인해 급조된 임시정착 마을이었다


1968년 속초에서는 강력한 해일이 발생해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그 하룻밤 새 50여 명이 죽었다

급히 임시 마을을 만들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름하여 속초 새마을이다


눈을 가린 채 기둥에 묶어 놓고 수많은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듯한 공포를 혼자

도맡아 느끼며 걷는 것도 힘겨웠다

아이들은 벌써 마을의 또래 아이랑 친구 되어 놀고 있었다

난 빨리 바다 근처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자고 조르고 있었다

핑곗거리 하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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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는데

2005년 바다마을의 아이들과 영화를 만들었던 주문진 함 가보자

내가 유일하게 마을영화를 만들었던 바닷가마을

한 달 동안 트럭을 세워두었던 공터는 이제 공용주차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집 쫓겨나 온 아이들이 지겨운 고기반찬 좀 안 먹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던 아들 바위

그때는 해안선 따라 군초소들이 드문 드문 있었고

무시무시한 철조망이 쳐져있었는데 말끔히 없어져 버렸다

어디선가 하모니카소리가 들린다



어르신 하모니카죠? 라며 하나마나한 호감을 표시하고 옆에 앉는다

주문진 아들 바위 앞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사는 올해 80살 할아버지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운 하모니카를 들고 나와 시간을 보낸다

바로 옆 아들바위 관광안내 표지판에 적힌 500원 글자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500원 동전을 할아버지에게 놓고 간다 어이없을 법도 한데 이미 그걸 즐기고 기쁘게 초월한듯하다

그것으로 소주 한잔 하면 그만이다 란다


아이들을 보고 좋아한다

석탄노조 위원장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해보고 살았지만

이제 할 일은 여기서 하모니카 부르는 일뿐이란다

내가 오랫동안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닌 이유 중의 하나는 늙음이 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큰 재난이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저하고 영화나 찍으시지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인사다

"좋습니다'란다


늙음 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재난인 건가?

우리 생의 에너지가 너무 덧없이 낭비되는 것 아닌가?

내가 이제 쓸모없어진 듯 보이는 이들과 찍어가는 영화가 새파랗게 오만한 이들에게 삶의 허무와 더불어 사는 희망 가르치는 영화가 될 수 만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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