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작은 음악회 준비 이야기
지난 금요일 출석하는 교회의 문화모임에서
"해설이 있는 사순절 음악회"라는
행사를 했습니다.
그냥 좋았던 기억만 묻고 가기에 아쉬움이 남아
준비했던 이야기 마치고 못다 한 이야기 등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적었습니다.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거나
불편하시면
건너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실명이나 개인적인 사진들도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음악회라 이름 지었지만
개인소장 홈 오디오 장비를 옮겨와서
옛날 음악감상실처럼
곡들을 소개하고 함께 듣고
또 실연도 몇 곡하는 정도의 작은 모임으로 생각하며 준비했습니다.
렉쳐의 해설과 함께 음악을 듣는 음악회.
마침 렉쳐는 클라리넷을 전공하시는
교우 한분께서 흔쾌히 맡아주시며
본인의 개인오디오까지
통째로 옮겨와 음악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제자들까지 함께한
클라리넷 4중주 연주회장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교회 증개축을 기념하며 제작했던 유튜브 콘텐츠 랜선콘서트'가 있었습니다.
하늘정원에서 두 분 집사님의 클라리넷 영상을 제작하고 난 후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음악회나 모임들을
교회 안에서 많이 만들었으며 좋겠다
의견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때 함께 영상 제작에 함께 해 주신 많은 분들 역시
같은 의견을 주시며
언제든지 흔쾌히 연주에 나서 주시겠다며
이런 류의 작은 음악회
음악을 통해 소통하고
삶을 나누는 모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그 후 잊지 않고 만날 때마다 다음을 기약하며
'카페에셀에서도 음악회를 하면 좋겠다.'
'로비도 좋을 것 같아요'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 음악회 해설을 맡아주신 교우님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치고 연습을 하는 그 공간 한쪽 벽면에서
진공관 오디오와 엘피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업실 LP로 재클린의 눈물을 들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치 80년대로 타임리프한 듯
우리는 교회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난 금요일 카페에셀에서
청음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각들이 모여 보이는 행사가 되는 시간
그 시간이 행복한 교회가 되고 싶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몇몇 분들이 음악회 후기를 나눠 주셨습니다.
바쁜 일주일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등 떠밀려 참석한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노라
이야기해 주신 분도 있었고
옛 생각이 나서 너무 좋았노라
다음 모임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으신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긍정적인 후기를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채워가야 할 점
보탤 점들이 더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이번 음악회를 통해 나를 만져주시는
그분의 손길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 건물 맞은편에 카페에셀이 있는 것이
참 좋은 일 같습니다.
부담 없이 차 한잔 나누며
일상에서 만나는 하나님
음악에서 미술에서 문학에서 만나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지역과 교회가 연결되는
항구와 같은 곳이 우리에게 이미 있습니다.
카페 에셀이 참 소중합니다.
작은딸이 서빙을 도와주고
함께 집으로 가던 중
뜬금없는 질문을 합니다.
" 왜 연주도 아닌데 모든 분들이 비어 있는
무대를 향해 집중을 하고 있지?
원래 청음회는 그렇게 하는 건가?
함께 모여 듣는 청음회라는 것이 옛날에는 흔한 일이었던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스피커가 앞쪽에 있기에 당연히 우리는 그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돌아보면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듣던 그 시절
DJ박스를 향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의자가 놓여있고
시각자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중하며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도 파주 헤이리에 가면
황인용음악실이 있습니다.
대구에도 녹향음악실이 자리를 옮겨 대구문학관 지하에서
영업을 준비 중입니다.
하이마트 역시 음악을 내 보내고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음원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LP 한 장을 소유한다는 것, 그리고 외국에서
제작된 음반의 내용을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지금과
비교하면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팝송도 태블릿 책자나 이종환의 밤의 음악실에서 들려주던 정보
그리고 음악감상실과 친구들의 정보가 모두였습니다.
LP는 너무 비싸 빽판이라 불리는 복제판을 구하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으며
라디오에서 한번 듣고 좋았던 곡의 제목을 알고 싶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를 복사하고 복사해서
늘어져서 더 이상 듣지 못하던 기억
LP클래식 전집을 할부로 팔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함께 모여 음악을 듣는 것은
이런 시절 참 소중하고 귀한 커뮤니티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음악을 듣고 싶어
자연스레 함께 듣는 방법을 택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형성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감상실을 모르는 세대는 단지
디지털 세대여서 감성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음원의 소유 정보의 독점의 문제 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언제 어느 때 든 지 핸드폰만 있으면
고음질의 시청각 자료에 무한히 접근이 가능하고
그에 대한 감상 역시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끝나는 시대입니다.
좋아하는 음악 새롭게 알게 된 음악을 실시간으로 에어팟을 통해
온전히 혼자서 고음질로 들을 수 있는 시대.
하지만 아날로그 음원을 듣던 그 시절은
음악감상실을 드나들고 시장 뒤편에서 빽판을 고르고
카세트테이프롤 복사하고 선물하고
LP를 구경하러 다니는 것으로도 행복했던 시절
라디오에 엽서를 보내고
기대에 차 귀 기울이던 시절이었습니다.
플랫폼이 달라졌습니다.
일방적인 정보를 향해 집중하던 시절이 아니라
개인이 음원을 소유하고 언제든지
링크를 통해 공유하는 시대
감정과 정서의 공유의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공기와 습도를 느끼며
음악을 공유하던 시대에서
링크 하나로 각자의 공간에서 음악을 접하는 시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렇게 세대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취향 소그룹이 교회 내에 있어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발견했습니다.
정서와 감정을 같이 나눌 새로운 우리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인 것도 같습니다.
다른 세대가 문화와 예술, 음악과 미술
을 통해 정서적으로 소통하고 이어지는 경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공동체에 다름 아닌 것 같습니다.
세대별 생애주기에 따른 공동체도 소중하지만
취향별 공동체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도 소중합니다.
이 두 개의 중, 소그룹이 직조의 날줄과 씨줄처럼
잘 얽혀 있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 확신이 듭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교회공간은
실용성이 우선시 되며 거기에다
종교적인 미가 중요시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배와 용도에 맞는 더 많은 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웅장하고 장엄한 공간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정서와 공감 소통이 이루어지는
교회 공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거의 모든 교회가 커뮤니티를 위한 카페와
로비공간들을 확보하고 있지만
보다 정서적이고 복합적인 커뮤니티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도
커뮤니티공간 즉, 차와 음악과 사람들의 교류, 세대가 흘러가고
다양한 취향이 이어지는 만남 와 이해가
이루어지는 정서적으로 더 여유로운 플랫폼 같은 공간이
그리고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긍국적으로 교회는 커뮤니티센터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다음 모임을 아직 기약하지 않았습니다.
"도슨트와 함께 하는 미술전람회"
"시가 있는 풍경" 등등 이리저리 많은 생각과 그림들이 그려집니다.
이날 함께 관람객으로 참여했던 분들과
채팅방을 열었습니다.
어렵지만 이들과 다음 모임의 콘텐츠와 방향을 잡아갈까 합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주인이 되는 사랑방 같은
문화예술공동체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문화와 예술을 통해
지역으로 흘러가는 작은 모임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