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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민감한 그래서 더 행복한
By Topmage . Aug 23. 2016

당신 그리고 나, 우리는 참으로 고귀한 존재

여덟 번째 이야기

1.

『이 세상에 진실로 저를 아는 사람 하나를 만났다 하더라도 한이 없었을 것이다. 아아, 인정은 대체 제 몸을 알고자 하되 이를 알지 못하면, 때로는 커다란 바보가 또는 미치광이처럼 되어서, 』

- 열하일기, 관내정사, 4일 경술(庚戌) 中 / 한문학자 이가원 譯, 올재 클래식스 -


『천하에 단 한 사람의 지기를 얻는다면 족히 여한이 없으리라. 아 사람의 정리가 스스로 살펴보아 지기를 얻을 수 없게 되면 때때로 큰 바보나 미치광이가 되고 만다.

- 열하일기, 관내정사, 1780년 8월 4일 중에서 /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문학박사 정민 著, 문학동네-


 내 나이 서른. 너울거리는 삶의 격랑에 신체는 피폐해지고, 치달리는 감정의 격동에 정신은 혼미하던 시기였다. 내가 머무르는 모든 곳에서 참을 수 없는 고립감에 외로웠으며,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적 불신은 저녁 땅거미에 늘어지는 검붉게 그림자와 같았다. 나는 이미 밤의 질척한 어둠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내딛지 못한 채 잠식당하고 있었으며, 그 밤의 수렁에 꼴사나운 모습으로 허우적거리고 발버둥을 쳤었다. 이윽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닌, 그저 미미한 존재의 티끌만도 못하다는 자괴감이 불현듯 찾아왔다. 끝이 없는 불안과 공포에 식은땀마저도 증발하여 내게 남은 것이 없었을 때, 그제야 온몸에 힘을 빼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대상들에게 기대하는 모든 바람(욕심)을 놔버렸었다.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떼어낼 수 있는 힘을 얻었는데, 그건 우연이 손에 잡힌 한 여성작가의 에세이 책의 한 구절 덕분이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항상 자중자애해라"

어린 마음에는 그 말을 또 하나의 잔소리쯤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중자애의 진정한 의미가 곧 자기애와 자기 존중이었다.』- 사람풍경, 김형경 저, 예담출판 2006년


His Grandmother Had Told Him - Edmund Dulac


 "자중자애해라"를 읽고 난 후 잠시 책을 덮어야 했다. 한 번도 닿아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나의 가슴속의 밑바닥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묵직한 숨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길고도 긴 쓰라린 한 숨이 끝나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책을 다시 펴기까지 한 참의 시간을 흘러 보내야 했다. 그리고는 나는 느꼈다. 나 자신과 피하지 않고 대면할 때가 왔다고. 사실, 나는 서른 살이 되도록 나의 맨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수 겹의 가면을 쓴 얼굴이 나의 맨 살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을 뿐이었다. 가면은 타인의 기대와 욕망을 나의 것으로 몰이해한 기만적인 삶의 상징이었다. 그러한 상징에 위태롭게 매달린 삶에서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찾는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렇게 위태로운 삶을 꾸역꾸역 버텨내 가던 중에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오직 단 한 사람이 내게 질려 떠나가버렸었다. 나는 곧바로 삶의 가장 밑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배우자와의 이별이 가장 큰 스트레스이다. - 현대 심리학 이해, 권혁만 공저, 학지사, 2006) 나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의식적으로 깨달았을 때, 이미 나는 망신창이가 된 직후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누군이지 의문을 가졌다. 적어도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 증명의 과정 중에 손에 잡힌 책이 "사람풍경"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책을 정복하려 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뜻하지 않게 그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큰 위로를 받고 말았다. 책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너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너를 위해 노력하거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단다. 그리고 항상 자중자애하거라"



2.

저 아닌 남이 되어 저를 보아야만 저도 비로소 다른 물건과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인은 이 방법을 지녔으므로 세상을 버리고도 아무런 고민이 없으며, 외로이 서 있어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 열하일기, 관내정사, 4일 경술(庚戌) 中 / 한문학자 이가원 譯, 올재 클래식스 -


이제 나 아닌 다른 무엇으로 나를 살펴 마침내 내가 사물과 다름이 없어야만 몸을 노닐 때 툭 터져 시원스러워 여유로움이 있게 된다. 성인께서는 이 방법을 쓴 까닭에 세상을 피해 물러나 지내는 근심이 없었고, 홀로 서서도 두렵지 않았다.』

- 열하일기, 관내정사, 1780년 8월 4일 중에서 /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문학박사 정민 著, 문학동네-


 진정한 나와 마주하기 위해, 나는 과감히 나의 세계 밖을 벗어나 나의 과거를 찬찬이 관조했다. 마치 3인칭 시점의 소설을 읽듯이. 참으로 길래 지난한 작업이었다. 인출 가능한 기억들 중에서 감정적으로 중요한 사건들 중심으로 마인드 맵을 하기도 했고,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과거의 사건들을 그래프에 점으로 나열하고 이어가면서 담담히 때로는 격정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또는 소크라테스 문답법을 차용하여 내가 시인할 수밖에 없는 답이 나올 때까지 끝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의 몰이해를 걷어줄 심리학 교양서적 등을 찾아가며 읽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 등을 통해서 나의 세계의 일부가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사건에서 나의 뒤틀린 감정을 분리하고 숙고해 나가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진정한 감정을 시나브로 안다미로 이해할 수 있었고, 그때의 '내'가 이어진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 대한 지적 수용(인지적 통찰)은 수 십 걸을을 나아갈 수 있었으나, 감정적 수용(정서적 통찰)은 반 발짝도 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니까. 게다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 가장 먼 길이니까. (사랑이 머리에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 년 걸렸다.-김수환추기경)

 

 나 또한 내 과거에 대한 원망을 쉽사리 거둘 수 없었다. 불쑥 느닷없이 울컥하고 올라오는 분노를 의식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훈습(Working Through)을 시작했다. 훈습을 통해 내 감정의 발현과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와 대화 중에 뭔가 불편함을 느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 감정을 기록했다. 기록한 감정을 당장에 들여다볼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면, 혼자서 묵묵히 들여다봤다. 가끔, 도저히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을 때는 일부러 한 참이란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 한참은 대중없었다. 한 시간, 하루 또는 한 달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훈습을 하다 보니 나는 나의 감정 표현에 점점 자연스러워져 갔다. 모든 사람 또는 대상과의 관계가 완벽히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회복의 길에 접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아마도, 그제야 자기존중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너무나 막연했던 두려움의 장막을 거둬낼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 후 모슬포항, 2016.8.23 - 직접촬영


『나사니엘 브랜든은 자기 존중감이 천부적으로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습득해서 터득해야 하는 삶의 기능이라고 설명한다.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 삶에 책임을 지며,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고득을 참아내며, 성실성과 정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한다. 자기 존중감은 또한 자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긍정적인 속성을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 없이 인정하며, 자신의 부정적인 속성을 열등감이나 자기 비하감 없이 시인하는 마음, 그것이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의 본질을 형성하는 토대이다.』- 사람풍경, 김형경 저, 예담출판 2006년



3.

『그러므로 공자는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여운 뜻을 품지 않는 이라면 어찌 군자(君子)가 아니겠느냐"하였고, 노담(老:노자)도 역시,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면 나는 참으로 고귀한 존재이다"하였으니, 이렇듯이 남이 나를 몰라 보았으며 하여, 혹은 그의 의복을 바꾸기도 하려니와, 혹은 그 얼굴을 못 알아보게 하고, 혹은 그 성명을 갈아 버린다. 』

- 열하일기, 관내정사, 4일 경술(庚戌) 中 / 한문학자 이가원 譯, 올재 클래식스 -


『공자는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고, 노자는 '날 잘아주는 자가 드물어야 내가 귀하다'고 했다. 이들은 이처럼 남들이 나를 알게 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혹 그 의복을 바꾸고, 그 외모를 고치며, 그 이름을 바꾸기까지 했다. 』

- 열하일기, 관내정사, 1780년 8월 4일 중에서 /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문학박사 정민 著, 문학동네-


 훈습을 통해 깊게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인간은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는 존재이기에 타인에 대한 인정과 관심을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혹여 그럴 수 있다 한들 풍요 속의 빈곤만큼이나 다양한 관계 속에 고립감과 외로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둘은 상대적으로 다른 의미이나 궁극적으로 인간을 평생 갈팡질팡 불안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것을. 만약 양극단을 정해진 한계 없이 오가거나 한 곳에만 머문다면 연암의 말처럼 미치광이가 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인간이기에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성인의 경지는 그저 신기루같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인정 욕구만큼은 남들보다는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즉, 남들이 나를 주목하지 않아도,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남들이 나를 그냥 지나쳐도, 남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해도. 나는 남들이 나를 다루듯이 나를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능력에 대한 현실적인 한계를 알게 되어 너무 행복해했으며,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것처럼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욕망과 기대에 나를 재단하지 않고, 반대로 나의 진실된 꿈과 희망에 나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실개천이 모여 시냇물을 이루는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쫑 나버린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억지로 회복하려 애쓰지 않았다. 솔직히 마음은 한결 편안하고 시원했다.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든다면, 이른 아침에 나서는 등산, 퇴근 후 집으로 달리는 6km, 명상을 빙자한 멍 때리기, 스트레칭도 겸하는 108배, 여유가 생기가 보니 떠나는 홀로 가는 여행 등 그 시간을 나름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내적인 탐구만큼은 아니지만 외적인 모습에도 변화가 있었다. 옷장의 옷들을 전부 버렸다. 당연히 새 옷을 사야 했고, 사는 기준을 바꿨다. 저렴한 옷을 구입해 무작정 옷에 몸을 맞추지 않고, 내 몸에 딱 어울리는 옷을 샀다. 적절한 가격이면 고민 없이 샀던 것 같다. 화려하고 치장이 많은 것보다는 심플하고 깔끔한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던 순간 불현듯이 밀어닥치는 무언가가 떠오르면 메모를 했다. 예전의 나였던 절대 알아차릴 수 없었던 일상의 작은 변화나 인간의 감정에 미묘한 차이와 변화를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림자, 사려니 숲에서 / 2016.8.22 - 직접촬영



4.

『이러한 때에 천하에 혹시 한 사람만이라도 저를 아는 이가 있다면, 그의 자취는 드러나고 마는 것이 다. 그러나 그 실(實)에 있어서는, 천하에 단지 한 사람만이라도 그를 알아주는 이 가 없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 열하일기, 관내정사, 4일 경술(庚戌) 中 / 한문학자 이가원 譯, 올재 클래식스 -

『이런 때에 천하에 혹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아는 자가 있게 되면 그 자취는 어그러지고 만다. 하지만 그 속마음만큼은 천하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있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 열하일기, 관내정사, 1780년 8월 4일 중에서 /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문학박사 정민 著, 문학동네-


나는 이제 안다. 나를 알고 있는 모두가 응당 나를 인정해주어야만 내가 빛나는 것이 아니듯, 나를 모르는 모두가 나를 부정한다고 해서 내가 어둠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기에 나는 있는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나는 참으로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내가 그렇듯 나 아닌 당신도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우리는 참으로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fin-


※ Cover Painting : 에드바르의 뭉크의 성스런 어둔 밤(Night in St. Cloud-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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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Painting : Wikiart.org / - Picture :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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