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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Oct 03. 2016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1. 하고 싶었다


철학과 심리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불안을 떨치고 안정을 찾아갔으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면 가끔씩 마음이 힘들곤 했다. 예를 들어, 타인과의 교류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타인의 부정적인 반응과 맞닥뜨리면, 마음의 찻잔이 요동을 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훈습을 통해 찻잔의 동요를 잠재웠으나, 가끔씩 쉽게 휘둘리는 나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자주가 아닌 가끔이었고, "뭐, 그럴 수도 있지"하며 사건을 단순화하고 이해하며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열등감에 사로잡힌 직장상사를 만나면서 나의 한계는 바닥을 드러냈다. 그의 이해할 수 없는 강압, 불공정한 처사, 비인간적인 언행 등을 꼬박 3년을 그대로 당했다. 나는 금이 간 나의 찻잔을 깨버려야 했다. 다시 나의 그릇을 빚고 유약에 온 몸을 담그고 뜨거운 가마솥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했다. 그리고 새로운 나의 찻잔에 물을 부어야 했다. 그 물은 심리학이었다. 내게 심리학에 대한 진지한 학업적 욕구와 필요가 생겨난 것이었다. 문제는 방법을 몰랐다. 심리학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어디서/누구에게/무엇을/얼마나 배워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생각난 방법이라고는 '다시 대학을 가야 하나'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한 며칠 초록색 검색창에 이것저것을 묻다가 『꼭 알고 싶은 심리학의 모든 것(강현식 저/소울메이트 2010년)』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심리학의 주요 개념과 용어를 150개 키워드 형식으로 정리한 대중서적이었다. 『철학 대 철학(강신주 저)』처럼 동서양을 구분하고 연대 서사 방식으로 주요 철학자들의 사유를 논하는 방식과는 달라서 신선했다.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그가 오랫동안 일반인을 대상으로 심리학 교육과정 및 진로상담을 하고 있다기에, 그의 강의를 신청했다. 원활한 강의 진행을 위해 그의 대학원 동영상 강의도 들었다. 나와 같이 수업을 신청한 사람들은 대부분 젊었다. 그들은 졸업을 앞두거나 졸업을 한 심리학 학부생이거나 사회복지 계열의 직장인들이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다. 그의 강의는 흥미롭고 즐거웠다. 그의 온화한 미소와 열정적인 목소리가 강의실을 항상 가득 채웠다. 그러나, 계속되는 강의와 함께 그가 말하는 심리전문가의 길을 알게 되면서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그리고 그 무거움을 나뿐만 느끼는 것은 아닌 듯했다.


Self-portrait, 1922 / Zinaida Serebriakova - 나는 자상화가 화가의 드러나 내면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수필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2. 하고 싶다면


심리전문가의 길은 엄청난 노력, 막대한 고충, 꾸준한 인내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수용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고 싶다고 도전했으나 내가 마주한 벽의 숫자 만큼이나 벽의 높이와 두께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당한 입시 공부량

심리대학원은 크게 임상심리대학원과 상담심리대학원으로 나뉘며 주간대학원과 야간대학원이 있다. 각 학교별 입시전형과 절차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류, 구술, 시험, 면접 등으로 진행되며, 임상심리대학원은 영어시험을 본다. 나의 능력과 물리적 거리/시간을 고려했을 때(직장인 이므로), 내가 지원 가능한 곳은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상담학과뿐이었다. 가대 상담심리대학원은 상담학과/영성상담학과/아동상담학과/조직상담학과가 있고, 입학전형은 1차 필답고사와 2차 면접 및 서류심사로 나뉜다. 필답고사는 심리학 개론 객관식 40문항(40분)과 상담심리학 주관식 5문항(50분)을 본다. 필답고사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정원에 따른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합격하기 매우 어렵다. 필답에서만 수차례 미끄러지신 분도 봤다. 1차를 합격하면 2차에서 면접과 서류심사를 하는데 제출서류 중에 자기소개서와 수학계획서를 근거로 날카로운 질문이 오기 때문에 이 또한 만만치 않다. 결국, 대학원 입학시험은 높은 변별력 유지를 위해 떨어뜨리는 시험이 될 수밖에 없으며, 매년 어디서 어떤 문제가 출제될지 모른다. 그래서 폭넓게 공부를 해야 하고, 이 때문에 입시 공부량은 상당하다.



자격증과 수련(임상/상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임상심리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하면 임상심리사의 길을 걷고,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하면 상담심리사의 길을 걷는다. 임상심리와 상담심리 간의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는 이 길에 제대로 들어서지 않아 자세히는 모른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임상심리와 상담심리는 내담자에 대한 접근과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내담자들에 대한 심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더 좋고 나쁘거나를 논할 것이 못된다. 그보다는 두 심리사 모두 각자의 전문자격을 갖추려면 널리 공인된 자격시험을 치러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심리학회에서 첫 번째 분과와 두 번째 분과가 임상심리와 상담심리이다. 그래서 한국임상심리학회의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증과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상담심리사 자격증이 가장 오래 시행되었고 널리 인정받는다. 그 이외에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은 임상심리에서는 정신보건 임상심리사와 임상심리사가 있고, 상담심리에서는 청소년상담사가 있다.


 자격증 시험은 단순히 응시원서를 제출하고 응시 당일에 시험을 보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응시 자격을 위해 수련을 우선 쌓아야 한다. 일단, 내가 정한 상담심리사 2급 자격을 내 상황에 비추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비 상담학과 학사 졸업을 했고, 졸업 후 3년 이상 상담 관련 경력이 없다. 따라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빠르고 정확한 길은 상담심리대학원을 입학하여 석사 과정(5학기, 약 3년)을 이수하면서 1년 이상 상담 수련 경력을 쌓아서 2급 응시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상담수련 경력이란 석사생이 공인된 기관(병원, 교도소, 봉사단체 등)에 방문하여 무료 실습을 하는 것을 말한다. 자격을 갖추면 그제야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시험은 필답, 서류 및 면접으로 진행된다. 쉽게 말하면, 대학원 입학 후 3년 동안 공부하고 1년 이상 수련을 해야 겨우 응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그보다 나를 더 좌절시킨 것은 지금까지 배출된 상담심리사들의 수이다. 2015년 9월 기준 배출된 상담심리사는 1급이 1,117명이고 2급은 3,814명이다.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1급 상담심리사 자격시험을 도입한 것은 1973년이다. 즉, 현재까지 1급 상담심리사 자격 배출 연평균은 26.5명인 셈이다. 내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생각이 이때 처음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심리학 용어사전 『임상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을 참고하세요)



졸업 후 진로

심리학사를 졸업하고 심리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은 졸업생들은 일반적으로 기업체의 광고/마케팅, 인사/노무, 리서치/통게, 교육개발 등의 분야로 진출한다. 기업체의 인사팀에 일하는 지인 두 명도 심리학사이다. 나는 이 둘에게 왜 상담심리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각각이 고려하는 기준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대답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공통된 이야기가 있었다.


   - 일자리가 부족하고 연봉이 타 직종에 비해 현저히 낮다.

     (타 직종의 친구들과의 연봉의 차이는 연차가 쌓일수록 더 벌어진다)

   - 계약직이 많다. (만족스러운 정규직도 별로 없다)

   - 수련과 자격유지를 위한 훈련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무급 봉사, 유급 수련, 본인 상담료, 세미나, 워크숍, 슈퍼비전 등을 돈을 주고받는다)

   - 투자 대비 환수가 불확실하다. (최소 10년 이상 해야 전문가. 10년 후 나아진다는 보장 없다)

   - 심리치료에 대한 국내 인식 부족 (대중은 누구나 쉽게 상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상담심리 관련 자격의 정비 및 공인 부족.

     (민간자격증이 너무 많아 대중이 구별 못한다. 국가 공인 자격은 청소년상담사 한 개뿐이다)


나는 다시 물었다. 진학하지 않은 이유 들 중에 가장 컸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것은 돈, 즉 경제력이었다. 그들은 삶과 복지는 고사하고 경제적 능력에서 상담심리사는 타 직종에 비해 너무 경쟁력이 없다고 했다. 철저한 소명의식을 갖고 상담심리사를 천직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누가 이 험난한 길을 가려고 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과연 이 길을 당당히 갈 수 있겠는가 라는 자기 의구심이 들었다.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웃으면서 쓸씁하게 말했다.


"상담심리 석사나 박사과정은요.
돈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돈 없는 사람은 하기 어려워요."

 


상담에 대한 오해

심리학은 인간과 동물의 마음과 행동을 생리적 과정(인간의 생물학적 신체기능), 심리적 과정(인간의 내재적 과정; 지는, 성격, 감정, 사고 등), 사회적 과정(개인 간 관계, 사회적 환경 등)을 과학적으로(객관적인 실험과 통계 등) 연구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에도 당연히 역사가 있고 선구자(스키너, 로저스, 반두라 등)들이 있다. 대충 만들어서 그럭저럭 하는 학문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지만, 한국에서는 임상심리와 상담심리가 인간의 심리적 문제를 연구하고 치료하기 위해 오랫동안 공부와 임상수련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인데 대충할 수 없지 않은가? 당연히 옥석을 가리고 또 가려야 하는 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이 나의 주변 사람들은 심리학을 고민상담을 하거나 사람의 심리를 알아맞히는 학문으로 잘못 알고 있다. 또한, 일반 사회 및 산업 전반에서는 상담이란 용어를 주저 없이 쉽게 사용한다. 이미 전화상담, 방문상담, 인터넷 상담, 카카오톡 상담은 익숙한 용어이다. 심리학을 가까이한 나로서는 상담이라는 단어 자체를 대중들이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심리적 상처를 안고 찾아온 내담자에게 심리상담이란 내담자에게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행복할 수 있는 도구이며, 상담심리사는 그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가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미국과 비교해서 한국에서의 심리상담에 대한 인식은 차이가 현격하고, 그만큼 한국에서 심리상담가의 길은 너무 멀고 험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verything goes, Everything passes, 1950, Kateryna Bilokur
 우크라이나의 여 화가 카테리나 비로쿠르(우크라이나)와 커버 페인팅 화가의 헨리 레이먼(스코틀랜드)에게는 세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둘 다 미술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않았다는 것. 둘째, 그림에 대한 열정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셋째, 마지막에 마침내 자기 꿈을 실현하였다. 비로쿠르는 우크라이나 동전에 자신의 그림과 모습이 새겨지며, 레이먼은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다.

#3. 할 수 있을까?


전이와 역전이

나는 작년에 봉사활동을 했었다. 6개월 동안, 한 달에 한번, 탈북 어린이를 위한 1:1 놀이 봉사였다. 서울 소재의 어느 복지관에서 나를 포함한 6명의 어른들과 6명의 어린이들이 만났다. 나는 10살 여자아이의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보람이 가득하고 좋은 관계를 맺을 거라는 생각에 적잖이 흥분도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생각에만 머물러야 했다. 첫 만남부터 아이는 나를 거부했다. 같은 책상에 앉고 같은 그림을 그리고 같은 간식을 서로 먹었지만, 아이는 내게 제대로 된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아이의 여자 선생님에게 매달리거나 그 사이를 파고 들어서 같이 어울렸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복지관 선생님은 당황하는 내게 아이에 대한 이러저러한 사정을 말해주었고, 나는 그럴 수 있거니 했다. 하지만, 계속된 만남에서 아이는 나를 거부했다. 아이에 다가가려고 약간의 선물(어린이날)도 준비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나도 점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하루 종일, 나에 대한 아이의 거부 행동을 겪고 집으로 돌아가는 2시간 동안 머리가 복잡했다. 어느 한 번은 선생님과 아이가 함께 도자기를 만들고 서로 선물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아이한테 선물을 받았다. 나는 선물을 받아 들고 복잡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에게 고맙다며 미소 지었지만, 얼굴은 경직되었다. 내가 선물 받은 도자기에는 알 수 없는 그림이 전부였고, 도자기 바닥에 새겨져야 할 내 이름은 없고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돌아오는 길에 선물로 받은 도자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도저히 그 도자기를 들고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전이 (Transference)

『내담자가 상담 상황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에 대한 감정을 상담자에게 투사(Projection) 하는 것. 이때, 일반적으로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 반응을 인식하지 못한다. 주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감정이 분석가에 전이되어 현재 어려움의 원인이 되는 갈등을 정서적으로 재경험하게 된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사전, 심리학 용어사전, 역전이 -
역전이 (Counter-transference)

『내담자의 전이에 의해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일으키는 반응. 역전이는 내담자를 싫어하는 감정이나 내담자에 대한 과도한 애착 또는 내담자의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역전이는 상담자의 갈등에 의한 왜곡된 관념이 내담자에 의해 발달해 내담자에게 투사되는 것이다. 상담자는 자신의 신념과 욕구, 태도가 상담 관계의 형성은 물론 상담 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자각하고 역전이를 객관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사전, 심리학 용어사전, 역전이 -


 내 나름의 정리를 하자면, 아이와 나는 전이와 역전이를 서로 주고받은 것 같다. 나에 대한 아이의 부정적인 전이 반응이 어떤 이유로 촉발되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나의 외형(신장, 얼굴, 스타일 등)때문인지 아니면 내면(말투, 행동, 태도 등) 때문이지 나는 모른다. 아마도 내가 가진 무언가가 아이의 부정적인 전이 반응을 유도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아이는 나와의 만남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아이의 잘못도 아니었고 나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이의 전이에 고스란히 반응한 나의 역전이가 문제였다. 나는 아이의 전이 때문에 나의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렸고, 아이를 왜곡되게 바라봤다. 아이와 내가 상담 관계는 아니지만, 상담심리 입시공부를 했던 나로서는 "내가 상담자가 될 만한 그릇인가"라는 의구심에 빠지게 충분했다.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의 출산과 딸의 육아를 핑계로 공부를 보류했다.


상담심리사들은 내담자의 전이에 그대로 노출된다. 그 전이에 대한 상담자 자신의 역반응을 객관적으로 다루기란 정말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도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취합이나 조정역할을 하는데, 그때마다 통제부서의 지적사항을 운영부서에 전달할 때마다 듣는 불만사항에 울컥할 때가 있다. 일반인들도 참기 어려운 감정을 객관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담자들의 고충은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간다. 상담심리사는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키워야 한다. 그래서 지속적인 자기 수련과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가끔 이런 면에서는 이들이 종교 성직자들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과연 나는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답을 못하고 있다.



경계

앞서 언급했던 저자는 우리에게 말하길, 상담자는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내담자와 상담계약서를 쓰라고 말했다. 상담계약서는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합리적인 상담활동을 위한 일종의 계약서로써 상담자의 자격/경력, 내담자에게 기대하는 태도/의지,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 정의, 상담 의뢰, 상담 기록 및 내담자의 비밀보장(예외사항 포함), 상담 회기, 상담 비용 등이 담겨 있다. 이 계약서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 정의이다.


"비록 앞으로도 상담 회기가 정서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진행되겠지만 우리의 관계는 개인적인 관계이기보다는 전문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가 전문적 관계를 유지하고 또한 상담 회기를 통해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동안 당신은 저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보게 될 저의 모습은 단지 저의 전문적 역할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상담계약서가 상담자와 내담자의 분명한 경계를 지켜주는 중요한 도구이자 증거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치료한다는 소명의식을 갖은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상담계약서를 내밀며 경계를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계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담자는 심리적 문제를 안고 온 사람이기에 상담 활동 중에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전이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상담자에게 무리한 정서적 관계나 물리적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담시간이 종료된 이후에 추가로 무료상담을 요구한다든지, 외부에서 개인적인 만남을 갖기를 원한다든지, 상담 회기 중에 상담비를 깎아달라고 한다던지, 상담과 관련 없는 연락을 시도 때도 없이 할 수 있다. 만약, 상담자가 내담자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올바른 상담이 어려울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점점 부담스럽게 여길 것이고, 내담자는 상담자의 부담스러운 태도에 또 다른 상처를 받을지 모른다. 나는 과연 이런 부담과 거절을 극복하고 경계를 지킬 수 있는가 자문했다. 마찬가지로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Rainy midnight, 1890, Frederick Childe Hassam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밖에는 비가 오고 있다. 아침부터 내렸는데 지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려야 하는 이유는 공해와 먼지와 소음으로 찌든 세상을 원래의 색으로 되돌려 놓기 때문이다.

#4.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강의를 모두 마치고 입시공부를 약 1년 정도 혼자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노트 필기와 참고 자료를 겨우 정리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딸이 태어났다. 나는 딸의 육아를 이유로 점점 입시공부와 멀어져 갔다. 아이의 육아 이외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수도 없었지만, 입시공부를 해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시공부를 시작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실들을 빨리 알게 된 탓이었다. 또다시 1년이 지났을 때, 나의 책장 한편에 먼지로 덮여가는 입시강의 교재와 노트를 보고서 결정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다시, 시작할 것인가? 포기할 것 인가?   


수십 일을 고민했지만 결정을 내릴 수 없어 입시상담을 받았다. 입시상담은 내가 내리는 어떠한 결정에 상관없이 내 등을 떠밀어줄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이미 어느 정도 답을 내리고 입시상담을 받았는지 모른다. 입시상담을 해주던 선생님의 대답은 내가 이미 듣고 보고 확인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설사 다르다 한들 충분히 합리적인 추론과 답변이 오가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내게 상담심리의 길에는 절대 Shortcut(지름길)이 없다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본인이 말했다시피, 본인 자신이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상담가로서의 자신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오히려 본인이 이 문제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성공을 위한 철저한 계획이 때로는 실패를 낳기도 하며, 실행을 위한 완벽한 준비는 그것만을 고집하다가 끝날 수 있다. 그러한 계획과 준비를 위해 지식을 과도하게 습득하면 오히려 지식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함정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시도해보지 않고, 이미 그럴 것이라고 단정 짓게 한다. 만약, 우리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성공 가능성을 밀어붙이는 단순함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거나 도치시켜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상담심리 입시공부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담심리사로서의 불투명한 미래와 실패 가능성을 먼저 보았다.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는 왜 상담심리를 공부하는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렸다. 오히려, 심리대학원 합격에 연연해 편안한 길을 가고자 상담심리가 아닌 조직상담의 길을 기웃거리기까지 했다.


 내가 상담심리 입시를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나의 자아실현이었다. 얕은 지식과 좁은 경험을 깊고 넓게 확장시켜 나의 그릇을 키우고 싶었다. 그 누구와 만나도 떳떳한 주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즉, 객체의 삶이 아닌 온전한 주체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정해진 대상이나 그 대상이 추구하는 욕망과 명예 그리고 돈을 좇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의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평생을 자신의 꿈을 좇지 못하고 묵묵히 소처럼 일하는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먼길을 돌아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결정했다. 나는 상담심리대학원 입시공부를 다시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원 합격이나 상담심리사 자격 획득에 집착하여 조급하게 상담심리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과 함께 상담가로서의 나는 누구인지 상담을 받아볼 것이다.


즉,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The spring in evening, 1947, Grandma Moses - 왼쪽, The thunderstorm, 1947, Grandma Moese>    

미국의 대표적인 노년화가인 Anna Mary Robertson. 78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할머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화가.




※ Cover Painting : The Reverend Robert Walker, Oil Canvars, 1784 /  Henry Raeburn (←그림과 작가의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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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Painting : Wiki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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