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pmage Feb 20. 2017

척(pretend)하면서 척(隻)을 지다.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회식을 하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서 노닥거리는 척을 하는 것이 나는 너무 힘들다. 상사가 늘어놓는 농담과 동료가 뿜어내는 만담에 솔직히 나는 웃음끼도 나지 않는다. 치아를 들어내고 웃어야 하지만 나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나는 그저 조용히 맨 끝자리에서 술잔만 만지작 거리다가 가끔 이야기에 호응하는 척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저것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지만 그저 듣는 것이 대부분이지 내가 먼저 꺼내는 편은 아니다. 어차피 이야기의 주도권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회식에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는 모습을 쉽게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대화에 끼어드려는 모습을 보거나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하여 그 대화 속에 빠져드는 모습을 볼 때, 한심한 나를 관찰한다. 도대체 내가 이런 인지부조화 상태를 왜 하고 있나?

취기에 속 이야기를 꺼내는 동료를 보며 나를 발견한다. 동료의 모습에서 나를 보고는 한심과 부끄러움이 일어난다. 귀가 빨갛고 목이 탄다. 나는 평소에 사무실에서 고매한 척 하지만 결국 지질한 인간이구나 싶다. 망할 놈의 동료 몇몇과 엮이는 것이 싫어도 막상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연민의 감정과 함께 나도 이들과 별수 없는 찌질이라고 알아채는 것이다. 이런 찌질이들끼리 회식에 빠진 다른 찌질이를 두고 안주삼아 험담을 한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푼다. 그간 드러내지 않았지만 미묘하게 줄다리기를 했던 서로의 감정들이 마구 분출하는 것이다. 억지스럽지만 이런 방식으로 서로에 대한 유대감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이 각박하고 마른 세상의 땅 밑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면 별도리가 없으니까.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으니까. 고매한 척을 해봤자 내 급여까지 고매 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사실, 전부 다 안다. 하지만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해야 한다. 심사가 뒤틀리지만 아닌 척을 해야 한다. 지질하지만 고매한 척을 해야 한다. 소비적인 관계이지만 발전적인 관계인 척해야 한다. 그런 척(pretend)들을 하면서 상대방과 척(隻)을 지었다가 다시 풀어야 한다. 어쩌면 도시의 직장생활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런 식으로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 나도 그들 속에 있고.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 글과 사진의 상업적인 용도 사용 또는 무단 편집 이후 게시를 하는 경우, 법적 처벌을 받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