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겨울은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특히 날 선 찬바람이 부는 날은 더욱 좋다. 여행하는 동안 내내 어디를 가든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머무는 장소와 보내는 시간이 허투루 지 않다. 여기에 우연과 실수가 뜻밖에 여행 선물을 안겨주기도 한다. 첫째 날의 '월지'에서 그랬고 마지막 날 '황룡사 유적터'가 그러했다.
'동궁과 월지'에 예정 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낮과 밤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월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 경주의 서쪽으로 검붉은 노을이 해와 함께 땅 속으로 내려앉을 즈음 노을색을 닮은 조명이 동궁을 둘러쌌다. 50명 남짓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한 곳에 몰려들었다. 나는 그들이 연출한 광경에서 열 걸음 물러난 언덕에서 월지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만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구한 세월을 머금은 인간의 건축물에서도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연은 규모와 비례가 주는 압도적인 감정이고, 오랜 건축물은 시간과 기억이 겹겹이 쌓아 올려 전하는 감정이다.
나는 숭고함에 매료된 채 월지를 뒤로 하고 호텔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마음에 온기가 스며들고 온몸에 안온함이 차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나의 등을 토닥이며 조용히 오랫동안 안아주는 듯한 따뜻함이었다. 그곳에 머무는 내내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나는 계속해서 '위안'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토록 편안하고, 그토록 따뜻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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