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허술하게 사는 것 같지만 충분히 단단한 사람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사람들 입에 많이 붙어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믿음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강력한 샤머니즘적 주술에 가까운 느낌이다. 대표적으로, 질풍노도의 사춘기나 입시 스트레스를 쏟아내는 자녀에게 화풀이 당하는 부모들의 하소연에서 자주 나온다. 복리로 치를 수도 있는 훗날의 더 큰 지랄을 낮은 원금 이자로 미리 퉁 치고 끝내고 싶다는 일종의 희망금융같은 것 아닐까.
그런데, 30년 이상 직장생활과 오십 중반을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요즘엔 달리 드는 생각이 있다.
《완벽 총량의 법칙》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근거도 논리도 없는 단순히 내 마음이긴 하다.
'사람이 일생 살면서 쓸 수 있는 완벽의 총량 또한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 합리화에 가까운 내 생각정리일 수 있다. 그저 나 편하자고 궁리한 내 생각일 뿐이지만.
돌이켜 봤을 때 일상이나 직장생활에서 공통분모가 몇 가지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중 하나가 많은 이들의 '완벽 증후군'이다. '실제의 나 또는 내 능력보다 더 잘하고 싶고 잘 나 보이고 싶은 욕망'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실수나 흠 없이 뭔가를 이뤄냈음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있을 거다.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구는 인지상정 아닐까? 실제의 나보다 더 못나 보이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아도 상관없다고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그리 많을까.
다만 그게 과해지면 꼭 탈이 난다.
지시받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 내야 한다는 강박, 예상이나 기대감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자존감, 실수나 흠결로 상대방에게 내 민낯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등등... 나도 그랬던 적이 종종 있었다. 성향과 능력은 헐렁하고 허당인데, 주어진 일의 환경 때문에 혹은 만나는 사람들 특성 때문에 더 철저해야 한다는 강박이 많았다. 긴장의 연속이었고 가랑이가 찢어지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결국엔 나도 몇 번 탈이 났다.
그런데 요즘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좀 달라진다. '사소한 허물의 상호 교감, 작은 실수가 일의 진행이나 인간관계의 윤활유가 더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졌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헐렁하고 허당 기질이 많은 사람이다.
게다가 대인배와는 전혀 거리가 먼 소심한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불의를 보면 용맹하게 대항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소심하게 반항하는 편이었다. 대학교 때 집회 참여할 때가 있었다. 전경들의 최루탄 발사 때까지는 어찌어찌 맞서다가 백골단이 몰려오면 겁나서 늘 가장 먼저 꽁무니를 빼고 줄행랑을 치기 바빴다. 대충 내 스타일이 짐작이 되려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고문받으면 가장 먼저 불어버릴 스타일이다.
내가 소심 허당형의 반항끼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려서는 '완벽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다.
그런데 소심하다 보니 그 거부감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마음속에서 투덜대는 일이 많았다. 딱 하나 예만 들라면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다. 어려서부터 충무공에 관한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칭송의 글들은 대부분 천편일률적이었다. 하나의 흠결도 허용치 않는 박제된 半人半神 구국의 영웅!!! 초등학교 때, 매년 4월 28일이 되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서 이순신 장군 탄신 기념일 행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장군님을 기리는 노래도 항상 제창했는데 지금도 2절까지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보라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 / 거북선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의 위풍 / 일생을 오직 한 길 정의에 살던 그이시다. / (중략) 충무공 오 충무공 민족의 태양이여 (후략)』
당시엔 '이순신 장군 칭송이 꼭 김일성 찬양 같으다'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마음속으로 불만이었다. 돌이켜 보니 민족의 영웅 앞에 너무나 삐딱했고 오만불손했던 거다.
그러다가 대학교를 사학과에 진학하고 『난중일기』를 접했던 날이 있었다. 그 후부터 생각이 완전 달라졌다. 난중일기가 지금은 여러 형태로 편역 되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교과서에 수록된 난중일기에는 오직 이순신 장군의 구국일념만 실렸다. 그런데 사학과 진학 후 난중일기 전편 원문을 보고 난 후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라와 백성에 대한 장군의 마음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절절했다.
하지만, 그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은 스스로의 부족과 흠결에 대한 장군의 인간적 고뇌였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 모친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잦은 상병에 대한 짜증, 자책과 원망, 실수와 잘못에 대한 후회 등등... 심지어는 장군의 무결함에 흠이 될까 봐 해석의 논란을 키우지 않는 구절이 지금도 있다. 완전무결하게 박제된 신화가 지극히 인간적인 영웅으로 냉동해제되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원균에 대한 질투, 원망, 뒷담화가 30번 이상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외려 마음의 큰 치유와 위로를 얻었다. 그 후부터 나는 장군님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안데르센 동화를 성인이 돼서도 좋아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인어 공주> <미운 오리 새끼> <백설 공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헨젤과 그레텔> 등 아름다운 그의 역작들도 좋지만 안데르센의 결핍이 나는 더 좋았다. 세계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준 안데르센의 삶은 그의 작품과는 정 반대였다. 그는 매우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가 수줍음이 많아서 짝사랑했던 세 여성들에게 차여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강박관념이 너무 심했다고 한다. 여행에서 기차를 놓칠까 봐 여권을 잊어버릴까 늘 안절부절못했다는 고백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숙박하는 호텔에 불이 날까 봐 가방에 항상 탈출용 밧줄을 넣어 다녔다고 할 정도란다. 그랬던 그가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에 내 마음이 끌렸다. 생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안데르센은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그는 결핍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느끼지 않았을까. 지상 최고로 아름다운 동화는 그의 결핍의 산물이었다.
최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모 대학교 교수님과 몇 번 만날 일이 있었다. 교수님의 부친께서도 꽤 이름난 분이시다. 부녀지간의 情도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 부친과 다퉈서 한 달 정도 토라져서 말도 안 했다는 얘기를 대화 중에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의 평소 부족한 점과 잦은 실수도 허물없이 털어놨다. 그 대화의 말미엔 아버지에 대한 진한 사랑과 연민을 울컥하면서 얘기하시는 교수님을 보면서 인간적인 존경심이 더 커졌다.
스스로의 결핍과 부족을 인간적으로 드러냈던 인물들을 이렇게 나는 좋아했다. 그런데 나의 삶과 직장생활은 '완벽한 인재 목표'를 위한 내달림이었으니 참 아이러닉하고 둔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서 평생 쓸 수 있는 '완벽쿠폰'이 한정판으로 발행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한 것 같다.
사람의 능력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고유한 특성과 잠재력의 한계치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완벽을 목표로 내달린다. '오타 없는 업무' '오점 없는 평판' '실수 없는 관계' 등을 위해서... 그러나, 완벽추구는 목표가 될 수 없고 소모성 자원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실수와 흠결은 치명적이지만 않으면 된다. 알고 반복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핍과 부족은 흠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자국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부족하기에 누군가의 곁에 머물 수도 있고, 내가 다 알지 못하기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들을 수도 있다.
만약 내 인생의 완벽 쿠폰이 한정판으로 발행되어 있다면,
쓸데없는 것에,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없을 것들에, 곧 후회를 하게 될 일들에 너무 쿠폰을 남발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불완전의 틈'이 숨을 쉬는 통로가 되고 사람 사는 향기를 느끼게 해 주기도 하니까. 부족과 실수를 품을 수 있어야 인생이 덜 미끄럽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완벽을 애쓸 필요 없는 수많은 일들에'에 내 완벽쿠폰을 족족 발행하지 말고 정말로 꼭 필요한 결정적 발행을 위해 아껴 쓰자.
그래서 나의 결핍이나 후배 직원들의 실수 실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음이라도 생기는 날이 오면,
"오늘은 완벽쿠폰 절약 Day야. 옥에 티인데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