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에서 오는 소통과 관계의 오류를 고치는 방법들
나는 스무 살에 서울로 귀화한 오십 대의 경상도 출신 아재다.
이십 대가 된 두 딸들보다 훨씬 서울에 오래 살았으니 완전한 서울 사람이다. 서울 강북에서 30년 이상을 살았고 지하철로 30분 내에 강남도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는 학실한 서울특별시민이다. 마음 먹으면 서울 표준어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귀화한 변방 출신이라는 것을 남들은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얘기를 위해서 이미 철 지난 경상도 사투리 아재 개그부터 꺼내 본다.
할머니 : 왔데이 (버스가 도착했다는 말인데 영어 What's day와 발음이 비슷함)라고 말하자,
외국인 : 먼데이 (Monday인데 '뭔데?'로 들림)
할머니 : 버스데이 ('버스다'라고 알려 준 건데 birthday로 듣기 쉽다.)
외국인 : 해피 버스데이 (Happy birthay)라고 축하,
할머니 : "시내 버스데이"라고 친절히 갈쳐 주심.
하나 더 투척하자면,
서울 지하철에서 경상도 아재들이 시끄럽게 떠들자,
사람들이 "좀 조용히 얘기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경상도 아저씨가 "이 칸이 마 다 니 칸이가?" (이 지하철 칸이 다 너희들 거냐?)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서울 사람들이 "그 봐. 저 사람들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고 했잖아!"라고 했단다. 쓰고 보니 좀 썰렁한 아재 개그다. 그래도 지우진 않고 Go해 본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대학교 친구들 중에는 유독 지방 출신들이 많았다.
친했던 충청도 친구는 "겨" "안 겨"라는 말을 자주 썼다. '잉!" "잉~" "잉?"이라는 외마디 말은 장단고저에 따라 오만가지 문장을 품고 있었다. 전라도 친구가 입에 달고 살았던 '거시기하다'라는 말은 온 우주가 담겨 있어서 의미 파악에 애를 먹곤 했다. 옛날 일들이긴 하다. 요즘엔 갈라파고스형 사투리는 줄었다.
직장살이 30년쯤 하다 보니 사투리 억양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들이 있었다.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마음 온도의 사투리'이다. 지금도 나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성격유형진단, 대화 코칭기법도 상당히 많이 배웠다. 그러나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또 현실이었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이 수 없이 쏟아내는 말과 글들을 접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말과 글의 외피는 같더라도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서 그 해석과 미치는 영향은 엄청 다르다.
똑같은 말도 누가 말하면 칭찬으로 듣고 누가 말하면 비아냥으로 들리기도 한다. 어제까지 수용했던 말도 오늘 다시 들으면 서운해질 때도 있다. 줄 때도 있고 받을 때도 많다. 그래서 말이 제일 어렵다고 느낀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은 부표 없이 바다에 떠 다니는 빙산과도 같다. 그래서 '딱 이거다.'라고 알려 주기도 어렵고 매뉴얼로 정할 수도 없다는 점이 큰 고민이다. 사실은 경청, 배려, 친절이 답이긴 한데 늘 어렵다.
"@%$^*#& 블라블라~ 내 말이 뭔 말인지 알지?" ⇒ '뭐래? 뭔 횡설수설...'
"(사원) 제가요?" ⇒ '하기 싫다는 거야? 수행할 사람이 본인인 지 재확인하는 거야? '
"(팀장) 김대리가 이거 적당히 좀 알아서 잘해줘~" ⇒ '대충 해도 된다는 거야? 꼼꼼히 하라는 거야?'
"(부장) 음~ 이번에는 잘했네" ⇒ '그러면 평소에는 개판이었다는 거야?'
"(팀장) 정과장이 그거 신경 좀 써" ⇒ '관심 가져달라는 거야? 나더러 직접 하라는 거야?'
"(선배) 어머! 안 됐다. 속상하겠다." ⇒ '위로야? 비꼬는 거야?'
"(임원) 어려워하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 다 해 보게" ⇒ '말했다가 골로 갈 수 있는데 뭘 믿고?'
"(동료) 내가 분명히 그럴 거라고 얘기했지?" ⇒ '남 일처럼 팔짱 끼고 있었으면서...'
이런 말폭탄을 해결하는 것은 정답도 없고 내 글이 딱히 모범 길라잡이가 될 수 없음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충우돌했던 나의 직장생활에서 깨달은 몇 가지를 공유해 본다. 가벼운 참고 수준이 되면 좋겠다.
【첫 번째 오류 : 언어 착시의 효과 개선】
말은 착시효과나 굴절이 심하다. 이 미로에서 빠져나오려면 '구체성의 나침반'이 필요하다. '가능한 빨리' '좋은 퀄리티로'라는 말은 조급함만 안기고 서로 원하는 결과물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 처음부터 "지난달 A프로젝트 수준으로, 최소 2번 팀 피드백 거친 다음, 모레 3시까지"라고 미리 좌표를 찍어 주면 투입자원과 역량은 똑같아도 확실히 결과물은 더 선명해질 수 있다. 15년 이상 관리자 경험에서 실감했다.
【두 번째 오류 : 맥락의 증발 개선】
두루뭉술한 말은 대부분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의도다. 상대방이 상처받거나 오해할 수 있다는 지레짐작에서 대체로 출발한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상대방을 얼어붙게 하거나 마음속에 온갖 소설을 쓰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의 뇌는 애매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기에, 없는 정보를 상상으로 메꿔 버린다. 대부분은 부정적인 방향이다. 전하고자 하는 맥락의 증발을 막으려면 '감정의 온도계'를 함께 보내 주면 효과가 있었다. 업무 협조 메신저나 카톡을 보낼 때, '이 부분 다시 한번 꼭 확인 부탁합니다.'라는 문장 뒤에 '전혀 급한 건 아니고, 단순한 재확인 차원입니다♡♡♡'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반응과 협조가 달라진다.
【세 번째 오류 : 의도의 왜곡 개선】
아무리 좋은 말도 '의도'와 받아들여지는 '의미'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있고, 그 계곡에서 상대방의 열정이 추락할 수도 있다. 심지어 칭찬조차 왜곡될 수 있다.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가 아니라 관계를 정의하는 조각칼이 될 수도 있다. 의도의 왜곡을 막으려면 '투명한 속마음 공유'가 필요하다. '쭉 이렇게 해왔었잖아!!' 보다는 "다만 이번 플젝은 시간이 촉박하니 검증된 이 방식으로 하고, 다음 플젝은 창의력이 회사 최고인 김과장 안으로 해보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절도 존중의 언어로 포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네 번째 오류 : 장소와 환경의 오류 개선】
같은 말도 장소와 환경에 따라서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사내 블라인드를 알 것이다. 그 순기능은 공감하지만 분노 배설이 너무 많다. 일방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나는 블라인드를 삭제해 버렸다. 대신 익명의 순기능을 쌍방 방식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면 집단토론이나 회의시간에 패들릿을 자주 활용한다. 소위, 계급장 떼고 익명으로 특정된 주제에 대하여 가감 없이 입력하면 때론 거친 공방 속에서도 알토란 같은 결과물이 많이 나온다. 또 한 가지는 직원들을 웬만하면 관리자인 내 자리로 잘 부르지 않는다. 부르는 순간 괜히 쫄기 시작해서 하고 싶은 말 제대로 못한다. 대신 내가 직원 자리로 자주 간다. 옆에 의자 하나 당겨 앉아 얘기하면 같은 말을 나눠도 오는 것과 내가 가는 것의 결과가 다르다.
【다섯 번째 오류 : 기대감의 개선】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마음의 문제 이긴 하다. 사람관계에는 대개 본전 심리나 기대감이 있다. 내가 더 많이 일한 것 같고, 내가 더 손해 보는 것 같은 경우가 그것이다. 주고받음에 있어서의 심리적 간극이고 인식의 편향성이다. 심리적 균형추는 항상 나 중심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Give Give Give Give 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겨우 하나 Take 했다고 생각하는 정도라야 사실은 얼추 Give & Take 하는 수준이었다. 내가 더 주고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상대방한테 주겠다고 마음 먹어야 한다. 제3자의 시선에서는 그게 사실은 공평하다고 평가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늘 같은 언어를 쓴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모두가 약간씩 다른 '마음의 사투리'를 쓰고 있다. 경험이라는 사투리, 해석의 사투리, 기대감의 사투리다. 이 사투리를 고치는 것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연습으로 길러질 수 있다. 그래서 말과 마음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한 번에 한 문장씩.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소통의 다리를 놓아 서로의 화성語 금성語 섬에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