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글 깨워드립니다
일어나자마자 꺼내 놓은 계란 2개를 작은 편수 냄비에 조심스레 넣고서 양조식초와 소금을 넣는다. 하이라이트 5로 타이머를 23분으로 했다가 22분으로 맞춘다. 왜 한 번은 더 누를게 될까. 띵띵띵. 정신없는 월요일 오전 안에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단백질이 필요한 재택근무자는 삶은 계란 껍질을 깐다. 촤라락 부채 펴지듯 껍질이 까진다. 식초를 많이 넣은 보람이 있다. 당 떨어지면 기분이 떨어진다. 단백질이 떨어지면 머리가 떨어진다. 월요일은 확실히 당보단 단백질이다. 입안에 아기 엉덩이 같은 계란 흰 자가 미끄러지듯이 굴러다닌다. 밖이 칠흑같이 어둡다. 블라인드를 걷으러 나가니 흙냄새가 올라온다. 비가 온다.
라이언 포스트잇에 우산 갖다 주기라고 쓴다.
신발장에 가서 민트색 우산도 미리 꺼내 놓는다. 재택근무자는 멈춰버린 일상의 뇌도 꺼내놓는다. 다행히 점심시간에 아들의 하교 시간이 들어간다.
채팅창에 점심 다녀올게요라고 쓴다.
뇌를 초과해서 쓴 재택근무자의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요동이 친다. 점심을 먹고 학교를 가면 아들을 놓칠 것 같다. 실내화 가방을 들고 걸어오는 작은 아이가 눈에 어른거린다.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찐 분홍 조끼까지 챙긴다.
방문객 명단에 이름을 쓴다.
빼꼼히 창틈 사이로 아들을 찾는데 교실이 텅 비어있다. 5번 신발장을 열어봤는데 신발주머니가 없다. 에고. 벌써 종례를 했나 보다. 그 순간에 옆 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마음이 바쁘다.
학교 앞 삼거리 신호등 앞에서 우산을 쓴다.
아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없다. 더 아래로 보이거나 더 위로 보인다. 그래도 더 기다려 보고 싶다.
여섯 번의 신호등이 바뀌고 옆에 서있는 엄마의 통화 내용을 다 듣고 다시 학교로 들어간다.
아이와 우산을 쓴다.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다시 오길 잘했지. 그렇지.
남은 점심시간을 쓴다.
락앤락 통에 소분해 놓은 치토스와 뿌셔뿌셔를 아빠가 다 먹은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을 달래기 위해 하나로마트에 간다. 엄마의 점심시간은 이제 15분 남았네. 빠삐코 2개를 실내화 가방 앞에 꽂아놓은 아이의 재빠른 몸짓에 웃음이 난다.
EASY CUT
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이지컴 이지고. 라이프 이즈 이지컴 이지고.
비비드 한 귤 색깔이 눈에 띄는 슈프림 골드를 뒤집으면 커피 11.85% 중량: 13,5ㅎ(60 kcal)가 보인다. 김연아 믹스보다 진하다. 점심시간에 텀블러에 지음 사장님이 내려주신 드립 커피를 가져오리라는 계획은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다. 이래서 글을 써야 한다. 놓친 커피를 잡으러 다녀야 하기에 오늘도 타이머를 맞춰 놓고 글을 쓴다. 그리고 내일 잊지 말고 야채호빵을 산다라고 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