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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Jul 17. 2021

하루키에 도전하다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

어제 제 책이 예약판매에 들어갔습니다. 달리기 에세이 제목이 자극적입니다.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날 편집장님과 이런저런 내용으로 카톡을 주고받다가 글을 하나 보냈습니다. "제가 달리기는 하루키보다 낫거든요"

이때 저의 심리는 뭐였을까요? 이 앞에는 어떤 문장이 들어가야 자연스러울까요? 짐작한 바대로입니다. '글은 못하지만'이겠지요? 이제 고작 두 번째 책을 출간하는 사람이 세계적인 작가 하루키보다 잘 쓴다고 하면 말이 안 되겠지요?


시간이 흘러 편집장님이 하루키가 들어간 책 제목을 말했습니다. "작가님,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 어때요?"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머슨 129 했거든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편집장님이 정하는 대로 따를 생각이었거든요. 책 만드는 데는 저보다 훨씬 전문가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제목이 괜찮더라고요. 제목빨도 있겠다 싶었고요. 한 사람의 독자라도 더 만나고 싶은 건 모든 작가의 바람입니다. 지금은 영광스럽습니다. 감히 하루키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니까요. 하루키가 알면 기분 상할까요?


하루키를 좋아합니다. 그의 글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글로 치면 우리나라의 대작가 조정래 선생님이나 박경리 선생님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하루키를 더 좋아하냐? 저는 러너를 편애하는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누군가 달리기를 한다고 하면 이유 없이 호감을 느낍니다. 하루키가 달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무작정 좋아졌습니다. 하루키는 이런 말도 했지요. "한국인이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 얼마나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인가요?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다시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를 봅시다. 제 내면에는 어떤 심리가 있었을까요?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잘 써지는 날도 있지만 지독히도 안 써지는 날도 있습니다. 하루키를 좋아하니 가끔 하루키도 글이 안 써지는 날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를 따라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리기는 내가 잘하는데... 사실입니다. 하루키가 한 달에 300km를 달리는 사람이지만 달리기는 제가 좀 더 잘합니다. ㅎㅎㅎ


글로 치면 하루키는 넘을 수 없는 벽입니다. 그래도 달리기 하나는 그보다 낫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그보다 잘하는 것이 하나는 있더란 말이지요. 어쩌면 달리기는 글이 정말 안 써질 때 버티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글로 세계 최강 하루키보다 잘하는 게 하나는 있는데 우리 주위에 보통 사람에 비하면 어떨까요? '말해 뭐해?' 아닐까요?


주위에는 저보다 잘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아무리 잘 나도 하루키보다는 못하겠지요? 달리기를 잘하는 하루키보다 제가 더 잘 달리니 일반인은 어떨까요? 비교 대상도 아니겠지요? 이렇게 달리기는 거친 세상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이 하나는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위 사람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은 게 없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어린 시절 돌이켜보면 저는 딱 왕따 당하기 좋은 집안 환경이었습니다. 다행히 왕따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순하기도 했지만 잘하는 것이 하나 있었던 덕분입니다. 그것은 운동이었습니다. 거기서 자신감이 나왔습니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세상을 향해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힘은 아주 사소했습니다.


여러분이 잘하는 건 무엇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남보다 잘하는 게 없다? 정말? 정말 그렇다면 지금부터 달리기를 추천합니다. 6개월에서 1년만 하면 당신은 주위 그룹에서 제일 잘 달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힘으로 세상에 큰소리칠 수 있습니다. 달리기는 내가 잘한다고!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이왕 이렇게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를 냈으니 누적으로는 어려울지라도 한 달만이라도 하루키의 달리기 에세이를 넘기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달리기는 제가 나으니까요. 달리기에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한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 건방지다고요? 그럼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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