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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대겸 Jul 13. 2017

파노라마와 가상현실

VR의 개념적 기원인 19세기의 파노라마에 대하여

가상현실의 공간적 개념의 기원은 19세기 유럽의 파노라마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노라마와 VR의 개념적 관련성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로버트 바커의 최초의 파노라마 단면도

군사정찰용 파노라마

파노라마 그림은 평균 2000 평방미터 넓이에 15미터 의 높이를 가진 거대 건축물로 원통형의 옆면에 거대한 풍경이미지가 파노라마로 그려져 있습니다. 최초의 파노라마 그림은 산업혁명 직후 스코틀랜드 영지에 주둔중인 영국군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로버트 파커 라는 화가가 1792년에 특허를 등록을 했기 때문에 에딘버러의 작업은 파노라마 그림 협회로 부터 최초의 파노라로서 인정 받고 있습니다. 당시 파노라마는 엘코 경 Lord Elcho 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영국군의 주요 점령지의 지정학적, 지질학적 정보들을 파악하고 군에 정찰에 필요한 정보들을 현실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 되었습니다. 위 그림은 그 단면도인데 관람자는 계단을 통해 원통형의 거대 이미지 가운데로 오를 수 있었으며 원형의 망루는 이미지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 시켜주었습니다. 외부의 자연광이 벽면을 통과하여 이미지의 조도를 높여주었으며 보다 파노라마를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였습니다. 마치 교회 내부에서 지붕을 통해 빛이 내비치는 효과에 어떤 종교적인 신비로움이 있는것과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런던의 파노라마 건축물 외관, 19세기

프로파간다 이미지로서 파노라마

애초에 병사들을 위한 군사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파노라마 그림은 이 후 런던으로 옮겨 본국 군대의 활약상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전시 되었습니다. 파노라마가 지닌 탁월한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서 가능성을 알아본 당시 근대 유럽 국가에서는 다수의 파노라마가 만들어 지게 됩니다. 19세기에 유럽전역에 건설 된 파노라마의 수는 200-300개로 추정되며 1억 2천만명 이상의 관객이 파노라마를 관람 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파노라마가 건설되던 국가들- 대영제국, 독일제국,프랑스 식민 제국, 홀랜드 왕국 -은 대부분 근대화와 식민지 사업으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고 있던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18세기 말에 이미 산업혁명을 이루었고 파노라마도 가장 빨리 만들어졌던 나라 입니다. 나머지 유럽 제국국가들이19세기에 파노라마를 도입한시기는 산업혁명이 각 국가에서 일어난 이후 이므로 산업화 이 후 제국들의 굳건한 체제하에서 건설되었다고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당시 역사상 가장 비싼 이미지 기계였던 파노라마는 단순한 대중적 볼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가 아닌 그림입니다. 

산업혁명 이후에 파노라마 그림들이 만들어졌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본가 계급이 발생했었는데 오늘로 치면 신흥 재벌쯤 되는 이들은 파노라마 건축물에 대한 엄청난 기금을 때로는 투자의 형태로 혹은 국가로부터 특혜를 받기 위한 명목으로 재정적인 기여를 했었습니다. 아무튼 이 엄청나게 비싼 이미지(19세기 말 하나의 파노라마를 건설하는데만 100만 마르크정도가 들었다고 합니다.)는 단순히 오락거리는 아니었고 이미지가 가진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통해 왕권과 체제가 지닌 힘을 암시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Raclawice Panorama in Wroclaw, Poland

파노라마 그림들은 대부분 제국의 현대사 (당시의 왕조의 업적을 드러낼수 있는)에서 역사적으로 주로 중요한 전투를 묘사하였습니다. 올리버 그라우는 밀폐형 구조를 갖고 있으며 360도로 둘러싸인 이미지 공간에 관람자를 빠져들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파노라마 건축물들이  VR의 개념적 기원이라고 보았습니다. 대표적인 파노라마 중 하나인 19세기 후반 만들어진 세단 전투의 파노라마는 1870년 9월1일 벌어졌던 프로이센 군과 프랑스 군의 전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프랑스 기병대는 프로이센 보병의 사격에 혼란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 프로이센 군대는 잘 정돈되어 있으며 프랑스 군을 맹렬히 추격하는 장면 입니다. 


파노라마의 나레티브 전략 : 원경과 근경 나누기

세단전투에서는 파노라마 이미지로서 몰입감을 주는 것 이외에 몰입감을 주는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존재했습니다. 그림은 구조적으로 원경과 근경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원경에는 전장으로 달려가고있는 보병 연대를 보여주고 근경에는 용맹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싸우는 프로이센 병사의 전투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림에 몰입감을 주는 핵심적 요소는 과거 이벤트에 대한 사실적 묘사 보다는 근경에서 세밀하게 묘사되는 전투장면에서 그려진 병사들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가상이미지의 비사실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거두게 만들고 몰입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360도 이미지인 파노라마의 이러한 나레티브 전략은 VR 콘텐츠를 제작하시는 분들이 참고하시면 좋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전경과 후경을 분리 시켜서 스토리 텔링의 요소들을 전경에 집어 넣는것이지요. 역사를 단일시각으로 묘사하고 관람자에게 생각할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점이 역사 기념비 공간으로서 파노라마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 유럽전역에 200-300 동이 넘게 제작되었던 파노라마 건축물은 두번의 세계전쟁을 경험하고 대부분 파괴되어서 현재 20여개만이 남아있습니다.


 쇠락의 원인

 19세기의 대표적인 이미지 기계로서 파노라마 건축물이 지금은 잊혀진 유산이 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파노라마 건축물이 군사적 힘에 기반한 정치 주체들의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사용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반감 때문입니다. 독일사람인 VR 학자 올리버 그라우는 독일의 파노라마가 당시 관람자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방식이 매우 일방적이었으며 독일에서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 생겨나는데 있어서 어느정도 관련성이 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실패 한 이데올로기에 봉사한 이미지 기계에 대한 반감과 이후의 사회변화는 자연스럽게 이 거대 이미지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었죠. 두번째 이유는 20세기의 가장 강력한 이미지 기계인 영화의 발명 때문입니다. 산업혁명 직후 예술과 과학이 융합된 발명품인 파노라마가 쇠락한 시기와, 영화가 대중화된 시기가 교차 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 합니다. 


공간의 개념적인 면에서 VR과 파노라마는 관련성을 갖고 있으며, VR의 대중화가 어느정도는 파노라마의 부활을 의미한다면 파노라마의 특징들을 이해는하되 이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몰입형 이미지가 가진 스펙타클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지닌 암시적 힘과 관계해 왔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파노라마가 가진 가장 큰 개념적 문제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고 또 관람객이 이를 수용하는 과정이 민주적 사고를 통해서가 아니라 환영적 이미지가 가진 힘에 의존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세단 전투는 프로이센 군이 프랑스 양민을 학살한것이 문제가 되는 역사적 이벤트임에도 파노라마에서는 승리주의자의 관점으로만 묘사되어 있죠. 하지만 지금이야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미지 기계를 비판할수 있지만 19세기 당시 파노라마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이미지의 일방적인 역사 관점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 VR

다시 말하자면 파노라마를 통해서 볼수 있는 문제는 스펙타클이 지닌 압도적 힘을 통해 하나의 환영적 사실을 만들어서 창작자의 비전을 반영하고 이를 통해 실제 사실을 은폐 할수 있다는 점 이었습니다. 실제와 환영이 구분하기 힘들다는점에서 특정주체의 의도를 반영 할수 있다는 점은 VR도 마찬가지 입니다. 과거 VR은 전부CGI로만 만들어졌습니다. 실사를 촬영한 영상을 사실적으로 구현 할만큼의 컴퓨터 처리 속도가 나오지 않았던 탓이지요. 실제 사람과 공간을 촬영해서 VR 영상을 만들게 된것은 불과 최근 10년 동안에만 일어난 일입니다. CGI를 통한 VR영상은 기본적으로 가상의 이미지 이기 때문에 이미지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서 생각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실사를 촬영한 VR영상의 화질이 우리가 사물을 눈을 통해 보는 수준으로 발전되는것은 앞으로 불과 몇년 안에 이루어질 일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CGI는 CGI 이미지만 편집 가능한것이 아니라 실사 촬영본도 다른 영상과 합성하여 실제 처럼 보이게 하는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었을때 VR로 보게 되는 현실의 이미지가 어디까지 사실이고 또 어느 부분이 가짜인지 분간하기는 힘들어 질것입니다. VR은 3차원의 공간을 인지했을때 두뇌에서 내생적으로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원리를 활용한것이기에 영화의 CGI가 뛰어난 상황과는 완전히 패러다임이 다릅니다. (후자는 문학적경험에 더 가깝습니다.) 가상현실이 지배하는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문학비평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VR을 다루는 주체의 의도에 따라서 사실이 은페되거나 조작 될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몰입이미지에 대한 생리심리학적 반응의 결과로서 보는이가 설령 자신이 보는 실사 VR이 어느정도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보더라도 우리의 뇌가 사실을 보았을때와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은 권력을 가진자가 사고와 감정의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 입니다.


VR의 현실적 환영성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상황은 이런거지요. 관람자에게 선택권을 주는것입니다. 


(모든것은 가짜다. 하지만 안볼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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