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에 미끄러질까 두렵고
엄마가 더 편찮으실까 두렵고
내년 경기가 얼마나 더 나빠질까 두렵고
직원의 "드릴 말씀이 있어요"라는 말이 두려워.
"두려워하지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
라는 말은 삶을 모르고 하는 말이야.
삶에는 늘 두려움이 서려있어.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삶 곳곳에
대상에 대한 두려움부터
대상 없는 불안까지
각양각색의 두려움 조각들이 속속 스며있어.
사실 두려움이 나를 만들었어
내가 제일 두려운 것으로부터
내 정체성은 생겨났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구축해온 것들이
나의 각별한 실력이 되었지.
가치 없는거, 성장 없는거, 잊혀지는 거,
이거 두려워서 여지껏 여기까지 해왔잖아
두려움은 내 삶의 원천이야.
괄시하고 구박하고 은폐하면 안되..
쇠에게 녹이 자연스러운 부산물이듯이
삶에게 두려움은 불가피한거야.
쇠에게서 생겼으나
쇠를 먹어치울 수도 있는 녹처럼
삶에게서 생겼으나
삶을 집어삼킬 수도 있는 두려움…
잘 달래고 잘 보살필께
가난을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가난을 겨우 극복하고 다시는
가난하지 않기 위해 외면하는 사람보다,
가난을 극복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타인의 가난을 공감하고 보살피는 사람이고 싶어
실연을 아예 당해본 적 없는 사람보다,
실연 당해봐서 다시는 안 당하려고
사랑 안하는 사람보다,
실연 당했지만 딛고 서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이고 싶어
두려움을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두려움을 겪어봐서 두려울 일을
안 만드는 사람보다,
두렵지만 두려움과 사이좋게 동행하며
그 다음을 나아가는 사람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