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앰뷸런스' 리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전 군인이었던 윌(야히아 압둘 마틴 2세 분)은 아내의 암 수술비를 지원받기 위해 의료보험센터에 상담을 의뢰하지만, 보험비 지원은커녕 전화 연결조차 쉽지 않다. 어렵게 상담원과 통화에 성공하지만 상담사는 번호가 조회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윌은 그러나 걱정하는 아내를 오히려 안심시키며 자신을 믿으라고 이야기한다. 인물들 간 대화 내용은 물론 영화의 톤까지, 액션영화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는 오프닝이다. 이 영화가 ‘서사 없는 액션’으로 비판받던 마이클 베이의 작품이 맞나? 의문이 생기려는 찰나, ‘앰뷸런스’는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윌은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형 대니(제이크 질렌할 분)의 사업장을 찾아간다. 대니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외려 일을 제안한다. 대니가 말하는 ‘건수’는 LA 은행에 있는 거액의 현금을 훔치는 것. 윌은 거부하지만, 수술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는 데다 오랜만에 만난 형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대니 일당과 함께 은행으로 향한다.
윌은 대니의 부모가 어릴 적 입양한 둘째 아들이다. 백인 부모가 흑인 아이 윌을 입양하면서 피부색이 다른 두 사람이 형제가 된 것이다. 대니는 윌을 친동생처럼 아꼈고, 윌 역시 형을 믿고 따랐다. 두 형제는 돈독한 유년기를 보냈다.(이 영화의 원작인 동명의 덴마크 영화에서 형제는 둘 모두 백인이다. 감독이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백인’ 가정에 입양돼 도움을 받는 ‘흑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우애 좋은 두 사람이지만 가족들 사이의 관계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니와 윌의 아버지는 악명 높은 은행 강도였다. 대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10년간 37곳의 은행을 턴 범죄자가 되었고, 윌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싫어 집을 나왔다. 이후 자원 입대해 아프간으로 떠났다.
한편 캠(에이사 곤잘레스 분)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최고의 구급대원이다. 그런데 누구도 그와 파트너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유능하지만 부족한 인간미 탓에 친하게 지내는 동료도 없다. 도입부에서 그는 교통사고로 심각하게 다친 소녀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성공하지만, 정작 환자의 안위엔 관심이 없다. 환자들의 고통이 그에게는 그저 일일 뿐이다.
대니와 윌 일당은 순조롭게 은행에 진입하고, 현금 다발도 두둑하게 챙긴다. 하지만 탈출 직전, 도주를 위해 마련해둔 차량에 문제가 생기고, 이내 잠복 중이던 경찰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윌은 대니를 공격하는 경관과 실랑이하던 중 우발적으로 경관을 쏜다. 총에 맞은 경관을 구조하기 위해 캠의 앰뷸런스가 은행에 도착하고, 출구가 봉쇄된 상황에서 대니는 총에 맞은 경관과 캠을 인질로 잡은 뒤 앰뷸런스를 탈취해 가까스로 달아난다.
앰뷸런스를 쫓아가는 드론의 현란한 촬영 기법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인상적이지만,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탈출하고 도주하는 방식은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 감독이 설치해놓은 장애물에 경찰차가 전복되는 클리셰들의 연속일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새로울 것 없는 영화가 이토록 흥미진진할까?
아마도 감독은 익숙한 영화적 문법이 관객에게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기막히게 아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익숙한 문법에서 오는 예상 가능한 즐거움이 있다. 마이클 베이는 이 예상 가능한 재미를 자기식 템포로 조리할 줄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두 형제가 탈주 중에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음악을 들으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은 어떤가? 흡사 1990년대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장면인데도 관객은 도리 없이 너털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마이클 베이는 시대의 흐름을 의식한 듯 여배우에게도 조금 다른 태도를 취한다. 캠 역시 독립적이고 전문성 있는 충분히 입체적인 캐릭터지만, 돋보이는 것은 의외로 캠이 아니라 LAPD(LA경찰국)의 대원 자가다. 자가는 남성들의 성차별적 발언이나 나이에 대한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역으로 남성 캐릭터를 한 방 먹일 줄 아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성적인 농담을 적극적으로 던져 남성 동료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그가 과자 먹은 손으로 자기 장비를 만지지 말라며 동료에게 면박을 줄 때는 덩달아 속이 시원하다.)
그러나 상기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아쉬운 장면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마이클 베이 특유의 미국인으로서의 자의식(뜬금없이 등장하는 성조기 인서트), 미군의 역량을 대놓고 칭찬하는 민망한 대사들(추격 과정에서 경찰들은 ‘윌의 운전 솜씨가 훌륭한 것으로 보아 군 출신 같다’고 여러 번 반복해 말한다), 미국 경찰을 훌륭하며 인간미까지 넘치는 조직으로 묘사하기 위해 삽입한 장면들까지(캠은 납치된 경관을 살리기 위해 앰뷸런스 안에서 응급수술을 하는데, 경찰들도 이때만큼은 추격을 늦춘다). 의료보험 지원도 제대로 못 받는 ‘전쟁 영웅’ 윌이 국가가 자신에게 삶의 목적을 줬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얼굴이 찌푸려진다.
영화가 캠을 대하는 방식에도 당황스러운 측면이 있는데, 이제껏 프로 정신을 발휘해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구조해 온 캠이, 이 모든 역경을 겪고서야 마침내 ‘환자의 마음에까지 공감하는’ 진짜 구급대원이 됐다는 듯한 결론은 납득하기 어렵다.
다만 이 영화가 범죄자를 미화한다는 일부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영화는 형이 주도한 범죄에 가담하는 윌에겐 서사를 부여했지만,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있는 대니에게는 이렇다 할 서사를 주지 않았다. 영화는 대니를 그저 상업영화 속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적으로 대하며, 그가 은행에 침입해 거액을 훔치거나 추격하는 경찰들을 다치게 하는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은행털이와 그 이후의 탈주’라는 목적을 위해 활용할 뿐이다.(동생 윌은 다르다. 윌은 형의 도주를 막아서기 위해 앰뷸런스에 동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시종 윽박만 지르는 대니와는 달리,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경관에게 공혈을 해주기도 하고 겁에 질린 캠에게는 당신을 무사히 탈출시켜주겠노라 약속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론은?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엔터테인먼트로서 ‘앰뷸런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미를 좇아 달리는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이 영화의 리듬을 거부하기는 힘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