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조각

by 간질간질

수제비는 지금 뷰티 기사를 쓰고 있다. 안티에이징 관련 제품을 소개하는 기사다. 여름이 가까우니 브라이트닝 기능이 강조되면서 자외선 차단이 더해진 제품을 많이 찾는다. 게다가 주름 개선 효과는 필수다. 구체적으로는 입가나 눈가 주변의 자글자글한 주름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을 빼먹으면 안 된다. 평소 대충 차리고 다니던 그래서 오히려 패션지 기자들의 화려한 매무새와 대비되어 눈에 띄던 수제비가 쓸 내용은 아니다. 사실, 수제비는 피쳐 기사를 주로 썼다. 하지만,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굳이 못 쓸 이유도 없지 않겠나며 받은 외고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도 아니고 화장품도 대충 바르고 다녔더니 안티에이징 제품으로 세월을 붙잡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안쓰러워 보인다. 마치 죽은 자식을 살려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헌금을 하는 사람들에게 '믿으라!' 외치는 사이비 종교지도자가 된 기분이다.


글이 나가지 않는다. 노트북을 열어 놓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흐르는 시간이 세월이고 세월이 쌓이면 나이가 된다. 쌓은 나이보다 쌓을 나이가 적어지면 늙은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한들 남의 시간이 나보다 빨리 흐를 순 있지만 나의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늙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우주의 법칙을 인간의 용어로 바꾸면 자연스러움이 된다. 자연스럽다는 말을 지구 수준으로 좁히면 강물이 흐르는 방향은 일정하다는 것과 같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돈을 많이 부어 현대 의술의 힘을 빌어도 늙었음을 감출 수는 없다. 피부에 주름이 잡히고, 주름은 깊어지고 풍성한 머리숱은 얇아지고 개수가 줄어든다. 검은색이라는 단어에 담을 수 없을 흑색의 머리카락에 은색이 섞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TV에서는 '동안'이라는 단어로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딱 거기까지다. 처음에야 신기해서 쳐다보지만 부러움보다 어딘가 불편함을 느껴 채널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늙지 않은 것을 자랑하는 나이 든 사람들의 모습은 강물이 멈춰있는 것처럼, 또는 강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신기할지 몰라도 부자유스러운 불편함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의 외모를 지키려는 욕심은 내려놓아야 한다. 돈의 힘으로 일부 늦출 수 있고, 일부 가릴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조금 아주 조금 늦추는 욕심일 뿐이다. 노화는 이 우주에 태어난 생명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나이 들어 보여야 할 필요도 없다.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랑스러워할 훈장도 아니다. 굳이 젊게 보이려 가꿀 필요가 없다고 해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아니다. 외모는 나이에 맞게 가꿔야 한다. 피부는 조작할 수 있지만 얼굴에 새겨지는 세월을 조작할 수는 없다. 외모를 가꾼다는 것은 세월이 만들어 내는 얼굴의 조각질을 정성스레 하는 일이다. 세월의 조각질은 주름을 만들고, 주름들이 모여 '인상'이 만들어진다. 내 삶의 모양이 얼굴에 담기고, 외모에 담기는 것이 인상이다.


수제비는 노트북 옆에 있는 거울을 쳐다봤다. 기가 세 보이는 사람이 보인다. 아마도 글을 쓰고 있을 때는 깊은 주름이 진 메기입의 고약한 중년으로 변할 것이다. 유난히 눈가와 입가에 잔 주름이 많고 깊어 보인다.


거울에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기곤 안티에이징 기사를 다시 시작한다.


기사는 끝나지 않았지만 기사에 소개하는 제품을 쇼핑몰에서 찾아본다. 차마 주문은 하지 못한다. '샘플이라도 달라고 해볼까?'라는 생각에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지만 자기 꼴이 우습다. '발라봤자 확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게 분명할거야!'라며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신포도가 달린 나무를 등진다. 아쉬운 입맛을 다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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